제목 페임(Fame)
제작국 미국
감독 케빈 탄차로엔
출연 애셔 북, 케이 파나베이커, 나투리 노튼, 케링턴 페인 외
장르 뮤지컬, 드라마
러닝타임 122분
재개봉 2020년 3월 25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10년도 넘었다. 정확히는 11년 전 영화다. 왜 이 영화가 다시 불려 나왔을까. 원래 보도자료를 잘 안 읽는데, 궁금해서 찾아봤다. 답이 없다. 16분가량의 스토리와 공연 장면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온라인으로 신청해 시사파일을 받아봤다. 코로나19 창궐 탓에 ‘온라인 시사’로 영화를 접했다.
<페임(fame)> 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이린 카라의 노래다. 알란 파커의 1980년 동명 영화 주제곡이기도 했다. TV에서도 여러 번 방영되었다.
뉴욕의 4년제 공연예술학교에 입학한 학생들. 아이린 카라가 연기한 코코 에르난데스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실은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남녀 학생들이 주인공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만큼 모두 춤과 노래, 연출과 연기 등 각자 분야에서 성공에 목말라 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며 자기 재능의 한계를 깨닫고 포기하는 이도 있고, 일찌감치 학교 밖 세상으로 나갔다가 사기를 당해 좌절하는 친구도 있다. 여기에 영원한 청춘의 주제, 사랑으로 불타오르지만 오해와 상처만 남기며 끝나는 커플도. 젊은 애들의 사랑이라는 거, 다 그런 과정을 겪기 마련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아련한.
영화의 절정부는 코코와 커플인 브루노가 만든 미완성 노래, <페임>을 브루노의 아버지가 확성기를 싣고 와 학교 앞 거리에서 트는 장면이다. 브루노의 아버지는 옐로캡, 그러니까 뉴욕의 택시운전사다. 학교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은 거리를 점거하며 각자의 끼를 살려 ‘퍼포먼스’를 한다. 브루노의 아버지는 길이 막힌다고 투덜거리는 트럭운전사와 한판 주먹다짐을 하고, 말을 탄 경관까지 출동한다. 어쩌면 그게 1980년판 영화 <페임>이 담고 있었던 시대정신일지 모른다.
1980년과 2009년 영화의 ‘시대정신’
2009년판 <페임>은 리메이크다. 프레임 바이 프레임으로 설정은 조응한다. 흑인소녀 드니스. 클래식 전공을 바랐던 부모의 뜻을 어기고 보컬로 나섰을 때, 우리는 그녀가 1980년판의 코코 에르난데스에 해당하는 인물임을 안다. 작곡가 지망생 빅터가 그녀를 위해 만든 노래는 랩이다. 29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당대의 인기장르도 업데이트된다.
물론 달라진 것은 많다. 춤은 기막히게 추지만, 글을 못 읽는 문맹 학생은 더 이상 없다. 1980년 버전에는 노골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던 인종 차별이나 외모 차별 문제를 2009년 버전의 주인공들은 꺼내놓고 이야기한다.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잘빠졌다. 감각적인 뮤지컬 내지는 장편 뮤직비디오를 본 느낌이다. 영화는 교훈적이며, 각자 주인공의 사연에 몰입해 함께 울고 웃으며 안타까워하도록 이끈다. 단 원작을 떠올리지만 않는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뭔가가 빠졌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무엇일까.
원작에서 도리스와 랄프 커플은 데이트하기 위해 영화 <로키 호러 픽쳐 쇼>(1975)를 보러간다. 당시 개봉 시점에 비춰보면 영화가 개봉한 지 5년밖에 안 되었는데, 그 영화는 이미 컬트화되어 있다. ‘마리화나’를 피우던 도리스는 흥에 겨워 겉옷을 벗고 슬립 차림으로 무대 위에 뛰어나가 ‘타임워프’ 춤을 함께 춘다. 2009년 버전에는 그 장면이 없다. 대신 무대 뒤 대기실에서 <로키 호러 픽쳐 쇼>의 프랭크 퍼터 분장을 한 친구가 장난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마리화나와 타임워프. 2009년 영화에서 빠진 것은 일탈과 해방이다. 앞의 1980년 버전 영화의 절정부-거리에 쏟아져 나온 학생들이 차선을 가로막고 택시 위에 올라가 춤을 추는 장면이라던가, 그걸 창문을 열고 지켜보는 사람들 같은 장면에서 연상되는 것은 일종의 폭동(uprising) 내지는 소요(riot)다. 계급이나 인종, 성차(性差)도 그 ‘해방’의 순간에는 구분의 의미가 없어진다. ‘분노’까지는 아니지만 아래로부터 치솟아 뚫고 올라오는 힘이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마리화나는 그 해방의 기획을 보조하는 도구로 믿어졌다.
일탈과 해방의 실종 그리고 순치
2009년의 하이라이트 무대는 거리가 아니다. 부모와 가족들, 학교 관계자들이 초청된 가운데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이뤄지는 졸업공연이다. 이건 학예회 같지 않는가. 성공을 노래하고, 유명해지고 싶지만, 그 욕망은 순치되었다. 거칠지만 날것의 욕망 대신 자리 잡은 신자유주의적 주체가 품는 성공 열망. 그들이 부르는 랩의 가사가 사회적·인종적 차별과 불평등을 담고 있는 것은 역설이다. 기사를 쓰면서 살펴보니 2009년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고(故) 로저 에버트를 비롯한 많은 평론가가 악담을 퍼부었다. 로저 에버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R등급(성인등급)의 심각한 사연을 지닌 아이들을 데리고 왜 PG등급(청소년관람등급)의 방과 후 특집 영화를 만들었을까. 1980년 영화가 왜 특별했는지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어떻게 영화를 리메이크할 생각을 했을까.” 그가 매긴 평점은 별 두 개. 16분이 늘어나면서 스토리를 보강했다지만 평가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다.
돌이켜 보면 시대적 분위기가 그랬다. <페임>은 알란 파커 감독의 대표작이지만, 그는 핑크 플로이드의 <어나더 브릭 인더 월>(획일적인 자본주의적 가치관의 타파를 선동하는 뮤직비디오로 더 유명한!)이 실려 있는 <더 월>(1982)이나 <버디>(1984) 같은 컬트영화를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1990년대 <더 월> 비디오는 상당히 ‘희귀템’이어서 청계천 같은 곳에서 5만~10만원의 고가로 거래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후기작 <로드 투 웰빌>(1994)이나 마돈나 주연의 <에비타>(1996), 그리고 현재까지 그의 마지막 작품인 <데이비드 게일(The Life of David Gale)>(2003) 같은 작품도 꽤 좋아했다. 1944년생이니 올해 만 나이로 76세가 되었는데, 벌써 근 20년 가까이 신작 소식이 없다. 요즘에는 영화제 심사위원장 같은 일을 맡으며 소일하는 모양이다.
오리지널 <페임>의 주인공인 아이린 카라는 1959년생, 환갑이 넘었다. <페임>으로 그녀는 스타덤에 올라섰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이 영화의 제작자인 데이비드
실버와 앨런 마셜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진짜 자전적인 이야기는 1983년 개봉한 <플래시 댄스>다. 그녀가 부른 영화 주제곡 <Flash Dance… What a Feeling>은 한국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2009년 리메이크판 주인공들은 무려 6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한 이들이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영화를 제대로 챙겨보지 않아서인지, 주연 배우들의 얼굴이 대부분 낯설다.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IMDB) 등 영화DB 사이트의 배우 정보를 살펴보면 대부분 2009년 영화 <페임>으로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그 뒤 TV드라마 단역 등으로 살아가고 있다. 영화에서 성공을 그렇게 갈망했건만 그들은 스스로 자기 삶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