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를 하면서 일본에도 사무소를 두게 됐다. 봄이 오면, 벚나무 아래 돗자리 깔고 삼삼오오 모여 노는 일본 사람들을 심심찮게 봤다. 그 광경을 보다가 뭉클했던 적이 있다. 감수성이 풍부한 편도 아닌데, 어쩌다 보게 된 <박치기>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라서였다.
재일조선인들이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벚꽃 나무 아래 놀러 나온 장면이었다. 그 짧은 장면에 나라 잃은 슬픔, 분단의 애환, 그 경계에서 살아가는 울분 등이 녹아 있었다. 그 안에서 서로에게 관심 있던 일본 청년과 조선 여성이 부른 노래가 <임진강>이다. 가락이 아름다우면서도 애달팠다. 검색해보니 팝페라 테너 임형주씨가 부른 <임진강>이 좋았다. 그 후 생각날 때마다 들었다.
우리는 ‘평화’와 ‘공생’을 주제로 여행을 한다.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에는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있다. 비가 오는 날, 교정은 고요했고 한국 아이들과 함께 그곳으로 여행 중이었다. 우리가 시비 앞에 도착하니, 한 노인이 서 계셨다. 허밍 중이셨는데, 나중에야 <임진강>이란 걸 깨달았다. 한 편에는 한반도기가 꽂혀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야 했다. 무언가 떠들고 나면, 아이들은 부산스러웠다. 제대로 설명 못 한 탓이었다.
종종 부끄러울 때가 있다. 정조문이라는 사람을 알았을 때도 그랬다. 그는 일본 땅에 있는 한반도의 미술품을 모아 1988년 ‘고려미술관’을 개관했다. 이때 쓴 ‘개관사’를 읽으며, 두고두고 부끄러웠다. “언젠가 조국에 돌아간다. 그렇게 결심하며 선물 하나를 하자고 그 집의 문을 연 것이 오늘의 시작입니다.” 정조문은 죽을 때까지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워한 한반도에 오질 못했다고 한다.
개관사로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더듬어 본다. 지금의 삶에만 골몰하면 보이지 않는, 뒤편으로 치우려 했던 진실이 보인다. ‘개관사’는 언젠가부터 우리 집 벽에 붙어 있는데, 정조문의 표정이 퍽 유쾌하다. 그게 참, 다행이다.
얼마 전, KBS스페셜에서 <어느 편이냐 묻는 당신에게>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일본의 재일조선인들이 다니는 ‘조선대학교’를 소개한 영상이었다. 남한 국적을 선택한 아이들은 기회가 많아졌으나 마음의 짐을 안아야 했고, 북한 국적을 선택한 아이들은 당당했으나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수심이 드리운 표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일본 땅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오갈 곳 없던 이들을 회색인으로 묶어둔 채, 자라는 아이마다 이런 걸 고민하고 살아야 하나 싶다. 그들도 우리의 일부인데, 우리는 무엇을 하나 자문해 본다.
최근 서울시 청년청으로부터 ‘통일/평화경제, 청년 교류사업 신규 분야 발굴을 위한 기초 실태 조사’라는 것을 위탁받아 진행 중이다. 남한의 청년들이 원하는 건, 어떻게든 북녘땅에 가보고 싶다는 것과 북한 청년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다.
하물며 임진강의 물새도 자유로이 남북을 넘나드는데, 통일은 대박이라는데, 가보고 만나고 싶은 바람 정도는 이뤄져야지 않나 싶다. 어느덧 어른 흉내를 내는 중이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임진강 하늘 높이 무지개 서는 날
옛 친구 들판에서 내 이름 부를 때
내 마음 고향모습 추억 속에 사라져도
임진강 흐름은 가르지는 못하리라
<고두환 사회적기업 공감만세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