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전성시대]나이트플라이어-우주선의 연쇄살인, 광기의 인공지능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떨쳐내려는 아들 로이드의 안간힘은 원한 사무친 인공지능이 시시각각 승무원들의 목줄을 조이는 숨 가쁜 호러물을 가슴 시린 성장통 이야기로 바꿔놓는다.

조지 R. R. 마틴의 <나이트플라이어> 한국어판 표지 / 은행나무

그로테스크하고 끔찍하면서도 가슴이 메이는 스페이스오페라. 언뜻 아귀가 맞지 않는 조합 같지만 조지 R. R. 마틴의 괴작(怪作) <나이트플라이어(Nightflyers)>(원래 1980년에 발표된 이 중편은 이듬해 편집자의 요구로 좀 더 긴 분량의 확장판이 나왔다)는 바로 이런 범주의 경계를 개척한다. 과학소설은 문명의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견하거나 우리 현실을 풍자·고발할 뿐 아니라 개인의 트라우마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이 중편이 바로 그런 예로, <나이트플라이어>는 인류의 거시적 운명과 개인들의 운명을 씨줄과 날줄로 함께 짜 나간다.

전설의 외계종족 볼크린의 우주선단과 접촉하고자 인류의 민간학술탐사대가 출발한다. 이들은 이내 공황에 빠진다. 빠듯한 예산 탓에 어느 개인의 무역우주선을 빌렸는데 목적지에 다다르기도 한참 전에 선내에서 수수께끼의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해서다. 당장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은 선주이자 선장 로이드 에리스. 그는 선내 공간의 반을 혼자 쓰지만 정작 탐사대원들 앞에 코빼기 한 번 비친 적 없다. 양측 거주공간 가운데에는 두꺼운 격벽이 가로막아 물리적 상호작용을 불허한다지만 선내 시설 전체를 제어하는 것은 엄연히 로이드 아닌가. 이질감을 누그러뜨린답시고 약방의 감초처럼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로이드의 홀로그램은 외려 대원들의 신경만 건드린다. 로이드는 자기 짓이 절대 아니라지만 CCTV 녹화영상을 공개하지도, 격벽 너머의 개인 선실을 오픈하지도 않는다.

이 소설이 <팬도럼>처럼 배경만 우주로 바뀐 B급 공포영화와 다른 것은 끔찍한 연쇄살인 이면에 자리한 증오와 광기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이드 우주선의 인공지능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 9000보다 더 미쳐 날뛴다. HAL은 논리회로 오류로 살인을 한 차례 저질렀지만 <나이트플라이어>의 선내 인공지능은 인간이 불어넣은 광기 탓에 그런 일을 연달아 벌인다.

한 여인이 염력을 발휘한다는 이유로 초능력자를 불온시하는 고향 행성에서 혹독한 고문과 정신세척을 받는다. 여인은 인간들을 죄다 증오하며 은둔생활을 고집하지만 아들(실은 그녀의 복제인간)은 인간들과의 사귐을 늘 동경한다. 여인은 죽기 전 자신의 인격을 선내 인공지능에 이식해 아들과의 긴장관계를 이어나간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떨쳐내려는 아들 로이드의 안간힘은 원한 사무친 인공지능이 시시각각 승무원들의 목줄을 조이는 숨가쁜 호러물을 가슴 시린 성장통 이야기로 바꿔놓는다. 피해자는 비명횡사하는 탐사대원들만이 아니다. 인간을 혐오한 어머니 탓에 평생 무균공간에서 자랐기에 타인과 같은 공간에서 공기만 들이마셔도 질병에 감염되는 클론 아들, 그리고 그런 삶을 아들에게 강요할 만큼 기구한 삶을 산 어머니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니까. 타고난 악당은 없으나 모두가 불행하다고나 할까.

장르물 전성시대

한편 볼크린과의 최초의 접촉을 둘러싼 대원들 간의 대화는 인류문명의 대전환점을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막상 주된 포커스가 피와 죽음을 부르는 범인의 실체 규명에 쏠리니 외계종족의 존재는 사실상 히치콕 영화처럼 맥거핀 노릇에 그친다. 개체마다 폭이 100~300㎞나 되지만 두께가 매우 얇아 마치 팔각형 연같이 생긴 규소생명체들은 성간우주를 맨몸으로 떠다닌다. 이를 두고 ‘우주선단’이라며 야단법석 떠는 촌극은 우주에서의 생명의 정의에 관한 우리의 고정관념에 카운터펀치를 날린다는 점에서 좀 더 깊이 있게 부각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고장원 SF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