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프리뷰]미드소마-오지에서 접한 낯선 문화의 충격과 공포

외지인들은 알기 힘든 고유의 코드가 있다. 보통 낯선 문화와 조우 자체는 낮은 단계에서는 경외심 내지는 언짢음 정도에서 머무르겠지만, 영화에선 때때로 격렬한 공포로 승화된다.

찬란/(주)팝엔터테인먼트

제목 미드소마

원제 Midsommar

제작연도 2019년

감독 아리 에스터

출연 플로렌스 퓨(대니), 잭 레이너(크리스티안), 윌 폴터(마크)

상영시간 147분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개봉일 2019년 7월 11일

1994년 여름, 나는 극장 좌석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을지로4가에 있던 국도극장이다. 고풍스런 헬레네 양식의 이 극장은 1990년대 말 철거됐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침침한 극장 안은 에어컨 바람으로 서늘했고, 살짝 한기마저 느끼던 참이었다. 영화는 에어컨 바람과 다른 종류의 오싹함을 안겨줬다. <홀로코스트(Cannibal Holocoast)>(루게로 데오다토 감독·1980). 희생자들이 남긴 필름으로 만든 영화라고 주장하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진짜 효시로 종종 거론되는 영화다. 영화는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이후 전형적인 문화인류학적 서사를 호러영화 버전으로 담고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아마존 오지의 식인종 부족문화를 촬영하러 들어간 탐사대. 자신들의 편견에 맞춰 사실을 조작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영화 말미, 그들이 남긴 필름은 폐기처분키로 결정된다. 시사 자리를 뜨는 문화인류학자는 “누가 과연 식인종이었던가…”라고 중얼거린다.

한여름 축제에 초청된 이방인들

<미드소마>를 보면서 이 영화를 떠올린 것은 희생되는 미국인 청년들이 논문 주제를 고민하는 문화인류학 전공자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포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공통된 답이다. 뜻 모를 행동방식은 일종의 블랙박스다. 외지인들은 알기 힘든 고유의 코드가 있다. 보통 낯선 문화와 조우하는 것 자체는 낮은 단계에서는 경외심 내지는 언짢음 정도에서 머무르겠지만, 영화에선 때때로 격렬한 공포로 승화된다. 비록 영화라는 매개를 통한 간접경험이지만 그 강렬한 잔상은 아마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미드소마(Midsommar)’는 말 그대로 ‘한여름’이라는 뜻이다. 스웨덴에는 해가 가장 긴 날, 그러니까 우리식으로 말하면 하지를 기준으로 실제 여러 날에 걸쳐 축제를 여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일종의 ‘하지제(夏至祭)’인데, 위도상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계속되는 시기이므로, 외지인들이 참여하기엔 상당한 체력적 소모를 감수해야 할 듯싶다. 스웨덴 출신 유학생 친구를 따라 주인공 일행들이 방문할 헬싱글란드주의 호르가라는 마을은 오지다. 그런 곳일수록 전통은 더 잘 보전되어 있을 터. 마침 그 해 치러지는 하지제는 90년마다 돌아오는 큰 행사로, 9일에 걸쳐 축제가 진행된다.

주인공 여학생 대니(플로렌스 퓨 분)는 원래 이들의 문화인류학적 참여 관찰에 동행할 계획이 아니었다.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을 따라 나섰다. 이들에게 처음으로 충격을 안겨준 것은 마을 주민들과 같이 식사를 마친 노인 한 쌍의 절벽 투신자살 행사다. 할머니의 시도는 성공해 즉사했고, 할아버지는 실패했다. 마을 사람들은 커다란 나무망치로 할아버지의 머리를 내려쳐 자살을 돕는다. 경악하는 외지인들에게 마을 원로는 이들의 관습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미 이들의 ‘관습’은 참아낼 수 있는 문화적 관용의 선을 한참 넘었다. 축제 참가를 그만두고 떠나려는 이들 외지인은 한 사람씩 실종된다.

영화에 묘사된 스웨덴 전통문화

언급한 노인들의 절벽 투신자살은 영화를 본 뒤 찾아보니 실제 북유럽에 존재했던, 또는 존재했던 것으로 주장되었던 관습이다. 스웨덴어로 ‘애테스투파(Attestupa)’라고 한다. 우리식으로 따지면 ‘고려장’ 관습인데,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

(1983) 같은 영화를 보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문화다. 그나마 이쪽에서는 산속에 노인들을 내다버리는 행위 정도이니, 차라리 나은 셈인가(개인적으로는 동북아시아에 널리 퍼진 신선 이야기의 뿌리는 이 고려장 풍습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일행 중 사이먼이 당한 신체적 변형이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그의 등엔 척추에서 분리된 갈비뼈들이 날개처럼 노출되어 있는데(그래서 이름이 블러드 이글이다) 실제 중세 바이킹이 행했던 고문 수법이다. 원래 갈비뼈가 보호해야 하는 신체 장기들, 심장이나 폐 등을 끄집어내 고문을 가하는 방법이다. 크리스티안이 목격한 사이먼의 폐는 한껏 부풀어 오르며 그가 끔찍한 고통 속에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실제 이때 크리스티안은 정체불명의 환각제에 한껏 취해 있는 상태이므로 이것이 일종의 환상체험인지 아니면 실제인지 경계는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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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웨덴 오지의 전통문화에서 핵심코드는 숫자 9다. 인생은 사계절처럼 4개의 사이클로 나뉜다. 각각 18살이 봄, 36살이 여름, 54살이 가을의 끝이다. 겨울의 끝인 72살이 되면 삶을 절벽자살로 마감하고, 노인의 이름은 이제 막 태어난 아이에게 부여된다. 왜 대니가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일까. 대니는 영화에서 26살로 설정돼 있다. 19살부터 36살의 한가운데다. 그러니 여름의 한가운데, 미드소마다.

세계적 주목을 받은 아리 에스터 감독

찬란/(주)팝엔터테인먼트

아리 에스터 감독은 지난해 <유전(Hereditary)>으로 장편 데뷔했다. 말하자면 신인 감독이다. 이번에 찍은 영화 <미드소마>는 그의 두 번째 장편이다. 단 두 편의 영화로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감독이 되기란 쉽지 않다. 자료를 찾아보니 1987년생이다. 음악가 아버지와 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자라났다고 하는데, 전작도 그렇고 이번 영화도 오컬트와 북유럽 문화에 대한 남다른 식견을 뽐내고 있다. 감독은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를 비롯해 <곡성>이나 봉준호 감독 영화들을 좋아한다고 언젠가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는 모양인데, <미드소마> 영화 홍보사 측은 이것을 포인트로 삼아 열심히 선전하고 있다. 실상은 감독이 열혈 한류 팬이라기보다 전세계적으로 검증된 퀄리티를 가진 작품들이나 감독 영화를 좋아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한밤중의 음습한 배경 속 낯선 존재의 습격이 아니라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 화사한 꽃으로 장식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포는 확실히 기괴하긴 하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이전에도 있었던가. 당장 떠오르는 것은 허셀 고든 루이스의 <2000매니악>(1964) 정도?(실은 영화의 많은 부분이 크리스토퍼 리 주연의 <위커맨>(1973)에 빚지고 있다.)

외국 리뷰를 보면 전작 <유전>도 그렇고, 이 영화도 감독이 “얼굴 손괴에 큰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지만, 두 작품의 공통점을 뽑는다면 감독이 배우들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 포착에 굉장히 능숙한 연출 솜씨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분노와 절망을 오가는 <유전>의 어머니 얼굴, 그리고 공포와 절망, 체념과 광기가 엇갈리는 대니의 얼굴은 묘하게 겹쳐 보인다. 적나라한 울음연기에 또 그 울음소리에 맞춘 호르가 마을 여인들의 그로테스크한 합창도 오랫동안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듯싶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