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프리뷰]애나벨 집으로

‘귀신 들린 인형’은 우리에게 뭘 할 수 있을까

주디가 조금 더 나이를 먹어 세상을 경험한다면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때로는 그 선악의 실체는 뒤집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제목 애나벨 집으로

원제 Annabelle Comes Home

감독 게리 도버먼

출연 맥케나 그레이스, 매디슨 아이스먼, 케이티 사리페, 패트릭 윌슨, 베라 파미가

장르 공포

상영시간 106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9년 6월 26일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반백 년을 살다보니 나름의 ‘귀신관(觀)’을 갖게 되었다. 만들어진 기억 또는 착시일 수도 있지만 귀신이나 도깨비불을 본 적은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이(異)세계의 존재가 현실의 실제 세상에 물리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더라는 것이다. 공포영화에 묘사되어 있는 영(靈)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히스테리하게 깔깔 웃거나, 무섭지! 스타일로 깜짝 놀래키는 것 이상의 것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효율적이다. 똑똑 두드리는 것(폴터 가이스트나 위저보드)만으로 무시무시한 사연을 상상케 만드는 놀라운 재주를 선보이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공포라는 감정이 실체가 있었던 시대

그 무시무시하다는 공포의 인형이 우리에게 가할 수 있는 ‘실질적인 위협’은 과연 어떤 것일까. <애나벨 집으로>를 보며 떠올린 생각이다. 영화의 배경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공기가 지배하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다. 확실히 그땐 사랑이라든가 평화·반전 등의 가치는 오늘날처럼 텅빈, 살짝 핀트가 빗나간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진짜 이상세계로 향하는 이정표라고나 할까. LSD의 도움을 받아 손을 뻗으면 곧 닿을 것만 같았던. 아마, 공포와 같은 감정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카메라 화면에 찍힌 점들을 연결하여 “이게 바로 영의 흔적”이라고 강변하는, 조회수에 집착하는 ‘진짜 귀신(이라고 주장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는 느낌과는 다른 감정일 것이다.

워렌 부부는 공포에 질린 간호사들로부터 애나벨 인형을 회수한다. 한밤중의 공동묘지. ‘악령들의 러시’를 돌파해낸 부부는 자기들 집에 무사히 도착해 인형을 지하실 공포박물관에 안치한다. 애나벨이 갇힌 장 역시 특수하다. 성당에서 떼어낸 유리로 만든 장이다. 부부는 여기에 ‘절대로 열면 안됨!’이라고 적힌 경고문도 정성스레 붙인다. 초대된 가톨릭 신부는 진지한 얼굴로 인형에 성수를 뿌려 봉인한다. 사기꾼이건 아니건, 워렌 부부도 심령술사이기 전에 부부이고 가정을 꾸렸다. 그들 사이엔 외동딸 주디가 있다. ‘귀신사냥’에 바쁜 부부는 10대 베이비시터 메리 엘렌에게 딸을 맡기고 떠난다. 메리 엘렌에겐 다소 불량스러워 보이는 친구가 있다. 다니엘라다. 다니엘라는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그녀는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는 죄의식에 시달린다. 지하실에 잠입한 다니엘라는 경고문에도 불구하고 애나벨을 장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애나벨은 워렌 부부 컬렉션 중에서도 가장 극강의 ‘악령파워’를 가졌다(고 주장된다). 애나벨 덕분에 각성한 온갖 악령들이 집 안을 배회한다. 메리 엘렌에게 사랑을 고백하려 했던 남자친구는 늑대인간에게 쫓긴다. 다니엘라는 ‘악령의 웨딩드레스’에 빙의돼 식칼을 들고 메리 엘렌과 주디를 쫓는다. 다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앞서 필자가 나이 먹어서야 깨달은 귀신관을 언급한 것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온갖 ‘무섭지?’의 장치에도 불구하고 그 극강의 악령들이 실제 세계에서 물리적 위협을 끼칠 수 있는 권능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다.) 지하에서 기어 나와 캄캄한 복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무라이 갑옷은 주인공 소녀들에게 그가 과거에 온갖 악행의 주인공이었음을 암시하는 희생자들의 비명을 일본말로 속삭인다. 그뿐이다. ‘끔찍한 사연’은 직접 시연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된 것일 뿐이다. 딱 하나 예외적인 장면이 있는데, 그 역시 환각(illusion)에 불과했다.

공포와 낭만, 그리고 성장을 담은 영화

공포영화지만 영화는 동시에 낭만·성장영화다. 지방신문은 심령술사 워렌 부부의 행각을 사기라고 폭로한다. 주디의 생일잔치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던 친구들은 모두 보이콧한다. 심령술사의 피를 물려받은 주디의 눈엔 다른 사람은 못보는 귀신이 보인다. 주디는 십자가를 들고 주기도문을 외우며 귀신을 물리치려 한다. 죽은 사람들이 보인다는 그녀의 고백에 메리 엘렌은 “세상에 악령들만 있겠니. 착한 영들도 있어”라고 위로한다. (실제 주디가 학교에서 마주치는 뚱한 표정의 학교 설립자 귀신을 굳이 분류한다면 후자일 것이다.) 영화는 무서워하면서도 호기심을 떨칠 수 없는 10대 초·중반의 세계관에 맞춰져 있다. 메리 엘렌의 선악 구분을 성장영화에서 세상사의 알레고리로 생각해보자. 주디가 조금 더 나이를 먹어 세상을 경험한다면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때로는 그 선악의 실체는 뒤집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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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을 맡은 게리 도버먼은 전작이자 프리퀄인 <애나벨: 인형의 주인>과 스티븐 킹 원작의 <그것(It)>과 몇 달 뒤에 한국에서도 개봉할 <그것 두 번째 이야기>의 각본을 담당했다. 감독의 차기작은 한국형 좀비영화 <부산행>의 리메이크라고 한다.

영화의 실제인물 로레인 워렌

영화의 엔딩크레딧엔 ‘로레인 워렌(1927~2019)을 추모하며’라는 자막이 붙어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워렌 부부는 실존인물이다. 남편 에드워드 워렌은 지난 2006년에 사망했고, 부인 로레인은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찾아보니 지난 4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손자 토니 스페라는 이튿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할머니는 미국 코네티컷에 있는 집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웃음을 잃지 않고 평화롭게 잠이 들었다’고 적고 있다. 향년 92세. 장수한 셈이다.

한 인터넷 매체에 실린 부고기사는 그녀를 부군과 함께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귀신사냥꾼’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유튜브 등에서 유명한 고스트헌터들은 경쟁적으로 SNS를 통해 조의를 표했다. 무엇보다도 부부를 세상에 알린 사건은 얼마 전 이 코너에서도 언급한 아미티빌 사건이다. 전직 경찰 출신인 에드워드와 심령술사인 로레인 부부는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아미티빌 집에서 발생한 일가족 살인사건을 조사했다. 이 내용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소설로 각색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

로레인이 잠든 코네티컷의 집 지하실엔 실제 오컬트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 벽면의 정중앙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아미타빌 다음으로 유명세를 탄 애나벨 인형이다. 이야기를 각색한 제임스 완 감독은 애나벨 인형을 광대뼈가 튀어나온 험상궂은 실물 크기의 소녀인형으로 만들어냈지만 실제 애나벨 인형은 꽤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다(사진). 워렌 부부의 주장에 따르면 유리 장에 봉해진 이 인형은 1970년 부부를 찾아온 2명의 학생들이 골동품 가게에서 산 인형으로, 애나벨 히긴스라는 소녀의 영이 빙의해 글씨를 쓴다든가, 안 보는 사이에 다른 장소에 가 있는 등의 괴이한 사건을 일으켰다. 물론 워렌 부부의 ‘조사’에 따르면 그 괴이는 100% 인형에 깃든 악령의 소행이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