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전성시대]나이트 스토커-연쇄 살인, 쫓는 자도 쫓기는 자도 여성

<나이트 스토커>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에리카 경감과 나이트 스토커, 두 여성의 이야기가 아주 흥미롭다.

로버트 브린자의 <나이트 스토커> 한국어판 표지 / 북로드

의사인 중년남자가 자살봉투를 뒤집어쓰고 죽은 채 집에서 발견된다. 데이트 강간 약물이 검출돼 살인사건 수사가 시작된다. 선정적인 TV 프로그램 진행자인 잭 하트도 비슷한 수법으로 살해당한다. 에리카 경감은 수법이 동일하기에 연쇄살인이라고 생각하지만, 피해자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다. 단서는 엉뚱한 곳에서 나온다. 잭 하트의 집을 도촬했던 파파라치의 카메라 메모리카드에서 범인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거실 안 어둠 속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언론은 여성 연쇄살인범에게 나이트 스토커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희곡과 시나리오 작가였던 로버트 브린자는 2016년 에리카 경감이 등장하는 <얼음에 갇힌 여자>를 발표해 80만부 이상 팔리는 대성공을 거둔다. 작전 도중에 남편과 동료들이 죽은 트라우마에 고통받는 에리카 경감 시리즈는 이후 <나이트 스토커> <어두운 바다>

<마지막 호흡> 등으로 이어진다. 경찰 조직 그리고 수사과정에서 겪는 여성의 어려움을 충실하게 묘사하면서 사회적으로 만연한 일상의 폭력과 고통을 날카롭게 포착한 에리카 경감 시리즈는 총 250만부 이상이 팔렸다.

<나이트 스토커>는 쫓는 자도, 쫓기는 자도 여성이다. 나이트 스토커는 가정학대의 희생자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던 그녀는 어른이 되어 결혼한 후 남편의 지속적인 폭행에 시달린다.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해하려고도 했지만 실패한다. 먼저 심장마비로 죽어버렸으니까. 우울과 허무에 시달리던 그녀는 어느 날 알게 된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복수를 시작한다.

희생자를 선택하고 그의 모든 것을 알아낸 후 집에 침입해 기다리다가 조용히 살해한다. 계획적이고 치밀하다. 그런데 증거가 발견된 후에도 남성 프로파일러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의심한다. 정말로 여성이 이렇게 치밀하고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까, 그동안 여성 연쇄살인범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어 등등…. 그것은 곧 여성의 능력에 대한 의심과 회의에 기반하고 있다. “우리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니 우습군. 범인과 나 에리카는 생각했다. 우리 둘 다 여성으로서 능력을 의심받고 있잖아.”

장르물 전성시대

“남자는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짓에 별다른 이유를 찾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여자가 같은 짓을 했다면, 사회 전체가 발칵 뒤집혀서 왜 그랬느냐, 무슨 이유가 있었느냐, 대대적인 심리분석이 벌어지잖아요.” <나이트 스토커>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에리카 경감과 나이트 스토커, 두 여성의 이야기가 아주 흥미롭다. “그녀에게, 그녀의 상실감과 사별에 대해 말하는 듯했다. 그렇게 병들고 비틀린 인간이 어떻게 그녀와 이렇게 깊이 통할 수 있을까.” 나이트 스토커는 대담하게 에리카에게 전화를 걸고, 집에 침입한다. 쫓고 쫓기는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상처 받은 여성이라는 공통점은 때로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지금 이곳의 세상에서 여성이 얼마나 억압되어 있고, 고통받는 사회적 위치에 있는지 <나이트 스토커>는 처절하게 보여준다.

<김봉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