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노래]노영심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사실 나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싫어하는 건 아닌데, 잘 부르지 못하다 보니 부를 일이 없다. 마지막으로 노래방을 가본 것은 회사 다닐 적 회식 때로, 그때야 억지로 부르긴 했지만 역시나 부르지 못하기 때문인지 내게 노래를 자주 시키거나 하진 않았다. 덕분에 부지런히 음료수를 나르거나 리모콘을 들고 곡 예약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좋아하는 노래도 없다. 운전을 하며 심심할 때 음악을 듣곤 하지만 대개는 가사가 없는 연주곡들 뿐. 그마저도 조용한 음악은 졸음이 올까 싶어 요즘은 EDM을 주로 듣는다. 다행히 졸지는 않으나 차에서 내릴 때면 귀가 얼얼해 나이트클럽이라도 다녀온 기분이 들 정도다.

그런 내게도 즐거이 노래를 부르던 때가 있었으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 나이였을 즈음인 먼 옛날의 일이다. 아버지가 민물 낚시를 좋아해 정기휴일이면 간혹 근교의 강으로 낚시를 다니곤 했다. 우리는 낡아빠진 중고 승합차를 타고 다녔는데, 에어컨도 히터도 되지않는 ‘똥차’라 여름이면 온창문을 열고 달려도 땀에 흠뻑 절었고 겨울이면 어머니를 끌어안고 있어도 추웠다. 게다가 매연이 그대로 차안으로 들어와 오래 타고있으면 두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고생끝에 도착해도 낚시는 재미 없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찌를 노려보고 있어봐야 한마리 잡을까 말까하니 어린 나에게는 고문이었다. 그렇기에 대개는 튜브를 끼고 물놀이를 하거나, 잠을 자거나, 올갱이(다슬기의 충청도 방언)를 잡거나, 잡은 올갱이를 삶아 먹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물놀이도, 올갱이도 처음 한 두번이나 재밌지, 대개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돌아갈 때가 되면 즐거워졌다.‘아무것도 할 게 없는’ 이 곳을 벗어나 텔레비전과 오락실이 있는 문명세계로 간다는 것이 반가웠다. 뭣보다 기다려지는 것은 가는 길에 들르게 될 휴게소에서 먹는 햄버거와 우동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언제나 그 둘을 함께 먹었다. 입안 가득 햄버거를 꾸역 꾸역 씹다 우동 국물을 쭈욱 들이킬 때의 그 느낌이 좋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절로 돌았다. 똥차에 올라타 매연 냄새로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기분은 좋았다.

바로 그즈음 아버지가 말한다. “우리 다같이 노래를 부르자!” 평소라면, 아니 출발하는 길이었다면 곧이 곧대로 부르지 않았겠지만, 휴게소로,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인지 나와 동생은 즐거이 “좋아”하고 외치곤 노래를 불렀다. 이내 아버지가 큰소리로 “하낫- 둘- 셋- 넷!”하고 번호를 붙이면 나와 동생은 저마다 좋아하는 노래를 돌아가며 불렀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 가족이 모두 같이 노래를 불렀다. 한 곡이 끝나면 다음 곡을 부르고, 그 곡이 끝나면 또 다음 곡을 불렀다.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노래는 끊이질 않았고 그동안 아무도, 그리고 단 한 번도 “너는 노래를 못 부르는구나” 같은 소리를 하지도 않았다.

당시 내가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는 노영심의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였다. 가사의 의미는 알 수 없었다. 특별히 좋아하던 곡도 아니었다. 그저 음이 높지않아 부르기 쉽고 어머니가 좋아해 자주 불렀을 뿐이다. 그럼에도 내 인생의 노래는 그 곡인데, 살며 가장 근심없이 행복하게 불렀던 노래이고, 그때가 그리운 시절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노래

우리동네 목욕탕 정기휴일이
혹시 첫째 셋째 수요일에 쉬는지
아니면 둘째 넷째 수요일에 쉬는지
그걸 기억할 수 있을까
나를 둘러싼 수많은 모습과
내 마음속의 숨은 표정까지도
오직 나만의것으로 이해해주는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김보통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