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상투적인, 너무나 상투적인

판씨네마(주)

제목 인카네이트

원제 Incarnate

감독 브래드 페이튼

출연 아론 에크하트, 데이비드 매주즈

개봉 2017년 5월 25일

상영시간 86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악령들림’-퇴치를 둘러싼 고난의 여정을 다룬 영화는 차고 넘친다. 대표적인 영화가 <엑소시스트>(1973)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이 이정표를 찍은 이래, 수많은 변주들이 이뤄졌다. 신부가 주인공이 아닌 엑소시즘 영화라 ‘전형적인 클리셰’를 깨부쉈다고? 원래 영화의 홍보자료를 잘 읽지 않는데, 지금 막 아무장이나 펼쳐보니 홍보사 측에서 내세우는 이 영화의 포인트다. 그러지 않는 이 장르 영화, 많다. 당장 이 코너에서 리뷰한 한국영화 <퇴마, 무녀굴>(2015)만 하더라도 정신과 의사를 퇴마사로 내세우고 있다. 영화 <인카네이트>는 장르를 이탈했다기보다 하위 장르 규칙을 교직해 만들어놓은 전형적인 장르물이다.

오프닝 크레딧이 뜨기 전까지의 사건. 칠흑같이 어두운 밤, 뉴욕의 아파트. 엄마와 함께 장을 봐오던 11살 소년 카메론(데이비드 매주즈 분)의 눈엔 쓰레기통 위에서 무언가 수상한 짓을 하고 있는 노숙자 아줌마가 자꾸 신경 쓰인다. 그날 밤, 뭔가 소리를 듣고 소년은 잠에서 깬다. 창문이 열렸다. 그 순간 효과음과 함께 화면 밖으로 샤샤샥~ 지나가는 낯선 존재. (굉장히 상투적이다) 이윽고 기습적으로 소년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까 그 노숙자 아줌마다. 엎치락 뒤치락 난투극을 벌이다 소년은 뭔가에 ‘씌였다.’ 그리고 등장하는 오프닝 자막.

오프닝 자체로는 신선하다. 한국판 영화의 포스터에 충혈된 눈으로 거꾸로 등장한 주인공이 한 20대쯤 되는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 11살 소년이다. 신선한 건 딱 거기까지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극장용 장편 영화라기보다 TV용 영화라는 느낌? 영화를 보고 난 다음 곰곰이 생각한 것은 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거꾸로 ‘클리셰’, 다시 말해 상투성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일단 이 영화의 원톱 주인공 아론 에크하트가 연기하는 엠버 박사와 그 조수들. ‘마상원과 그 악단’도 아닌 것이, CSI의 길 그리섬 반장도 아니면서 마치 오래전부터 그 일을 해왔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등장한다. 물론, 영화는 엠버 박사가 왜 그 일-퇴마-을 하게 되었는지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설명하고 있다. 엠버 박사가 자신의 퇴마작업과 관련, ‘최신정보’를 주고받는 신부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마치 배트맨 시리즈에서 억만장자 브루스웨인이 집사 알프레드에게 의존하듯, ‘그냥 거기에 원래 있었던 듯이’ 길가의 낡은 창고 안에서 엠버 박사를 기다리고 있다.

터치스크린

‘악령들림’이라는 현상에 대해 영화가 제시하는 새로운 가설이 없는 건 아니다. 영화가 주장하는-또는 엠버 박사의 입을 빌려 과학이라고 설명하는 ‘악령들림’이란 악마라는 2000년 묵은 성경에 나오는 어떤 존재가 아니라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으로 옮겨가는 ‘매기’라는 존재다. 이 가설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19세기 말까지 조선을 비롯한 동양 전근대사회에서 오랫동안 믿음의 대상이었던 역신(疫神)에 가깝다. 심박측정기나 CCTV 등의 도구가 등장하지만 그건 20대부터 귀신 들린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는 엠버 ‘박사’(무슨 박사인지는 잘 모르겠다)의 초인적 능력을 치장하는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영화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것은 영화 초반부에서 카메론과 사투를 벌이다 죽은 노숙자에 이어, 카메론의 술주정꾼 아버지도 어찌 됐든 ‘타살에 의한 변사’가 뚜렷한데도 NYPD가 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다. 경찰이 손대기에 벅차다면 FBI 지하사무실의 멀더 & 스컬리팀이라도 출동해야 했던 것 아닌가.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