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상을 담은 다양한 전시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미술계의 한해는 사실상 4∼5월 시작되어 9∼10월 절정을 이루다 12월 초반쯤 막을 내린다. 그만큼 봄 냄새 가득한 계절과 소소한 일상마저 예술이 되는 가을의 끝자락엔 흥미로운 전시들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일단 올 봄도 예외는 아니다.

우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선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 전이 관람객을 맞는다. 새롭지도 않은 전시를 기획해 놓고 성사조차 시키지 못하는 미숙한 운영으로 거센 비판에 직면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이 개막 일정까지 미뤄가며 우여곡절 끝에 준비한 전시다.

지난 4월 28일 문을 연 이 전시는 새로운 이상향을 꿈이 아닌 처절한 현실에서 찾으려 했던, 그것이 비록 시대 제한적이고 비합리적일 수는 있어도 자유로운 예술적 상상으로 집단적 무의식에 침투해 자각과 변화를 이끈 작가들의 작품 160여점이 선보인다.

김윤아 「sorry」, 캔버스에 유채, 2017

김윤아 「sorry」, 캔버스에 유채, 2017

내용을 보면 권력, 빈곤, 여성, 식민주의, 자유, 개혁, 역사 등 당대 직면한 문제들을 포괄하고 있어 저항적 메시지가 강하다. 식민지 국민으로서의 아픔을 쇠말뚝이 박힌 모습으로 표현한 카밀 알텔미사니의 ‘무제(앉아 있는 누드)’(1941)는 단순한 형상임에도 심리적 묵직함과 시각적 강렬함이 동시에 두드러지는 대표작이다. 7월 30일까지.

일민미술관이 기획한 ‘do it 2017, 서울’ 전도 눈에 띈다. ‘do it 2017, 서울’은 큐레이터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1993년 일부 작가들과 함께 한 대화 중 얻은 아이디어를 서울 버전으로 재현한 전시다. 즉, ‘만약 절대로 끝나지 않는 전시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구상을 악보처럼 지시문으로 만든 뒤 새로운 해석을 덧대는 방식의 과정예술을 한국판으로 옮긴 것이 ‘do it 2017, 서울’인 셈이다.

예술작품이 악보 혹은 시나리오처럼 제시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한 ‘do it’ 서울 전은 2013년 발간한 ‘do it 개요서’에 실린 250명의 작가 지시문 중 44명의 지시문을 김동규, 호상근, 홍승혜 등 국내 작가들의 협업으로 재구성해놓고 있다. 과정예술의 특성상 작가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참여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전시는 7월 9일 종료한다.

이충엽 「북극점에는 북쪽이 없다」,130X130 캔버스에 유채. 2017

이충엽 「북극점에는 북쪽이 없다」,130X130 캔버스에 유채. 2017

이밖에도 성곡미술관은 통독 이후 독일 전역에서 활발히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독일 현대미술작가들의 최근 경향을 다룬 ‘독일현대사진전’(3.17~5.28)을 연다. 박근혜 하야와 탄핵을 외치며 100일간 진행된 ‘광화문미술행동’의 프로젝트를 집대성한 전시 ‘광화문미술행동-100일간의 기록’(5.1~16)도 나무화랑에서 전개된다.

몇몇 개인전 역시 시선을 모은다. 한국 근대화단에서 무게감 있는 위치를 점해온 ‘故박고석 탄생 100주년 기념전’(4.25~5.23)이 현대화랑에서 펼쳐지며, 인성의 어둠을 폭로하면서도 인간 내면의 빛과 진실함을 찾기 위한 몸부림을 담은 작가 이충엽의 전시가 한남동 ‘스페이스 아트와’에서 5월 9일부터 18일까지 지속된다.

특히 스트라이프(stripe) 시리즈를 통해 내적동기에 관한 막연한 불가능성과 가능성의 균형을 절묘하게 담아낸 작가 국대호의 작품전(인사동 통인옥션갤러리. 5.3~21)을 비롯해, 존재와 부재와 같은 철학적 질문을 사이와 틈이라는 감각적 논증으로 풀어낸 김윤아 작가의 작품전(6.16~7.6)도 부산 홍티아트센터에 마련된다. 만약 쓸데없이 경솔한 국립현대미술관의 행보를 엿보고 싶다면 ‘미인도’가 내걸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소장품 특별전 ‘균열’ 전(2017.4.19~2018.4.29)을 찾으면 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문화내시경바로가기

이미지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