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드라마 제작 현장의 ‘비극’

지난해 10월 26일 한 PD가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습니다. 그의 유서에서는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팠다”면서 “하루 20시간이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케이블채널 tvN의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조연출을 맡고 있던 이한빛 PD는 드라마의 종방연이 벌어졌던 10월 25일의 바로 다음날 숨진 채로 발견됐습니다. 당시에는 경찰의 자살사망 수사 종결과 언론의 무관심으로 유야무야 지나갔던 사안이 다시 관심을 받은 것은 유가족의 기자회견 때문이었습니다.

4월 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기자회견에서 드라마 조연출을 맡았다가 지난해 사망한 고 이한빛 PD의 모친인 김혜영씨(앞줄 왼쪽 세 번째)가 아들 사망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정지윤 기자

‘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 PD의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측과 유가족은 지난 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유가족 측은 방송사였던 CJ E&M이 스태프였던 이 PD에게 인격모독과 폭언 등을 해 이 PD가 자살을 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유가족 측은 이 PD의 유서와 함께 당시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모바일 메신저의 내용과 녹음본 중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이에 CJ E&M 측은 지난해 10월 사고 이후 경찰 조사에서는 제작진에 특별한 혐의점이 없었고, 이후에도 자체조사를 실시했지만 유가족에게서 다양한 정황 증거에 대한 공유를 받지 못했고 조사에서도 별다른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 이후 여론이 악화되자 공식입장을 내고 관련 기관의 조사가 있다면 적극 임하고 조사결과를 수용하며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등 책임을 질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현장의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촬영장에서 가장 극진한 대접을 받는 배우들조차 막바지 촬영에 몰리면 “3~4일 밤샘 촬영을 하는 일은 다반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이럴진대 그들의 단 몇 분을 위해 몇 시간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이 받는 노동강도나 스트레스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이 상황의 원인은 드라마의 편성 비중이 유독 높고, 한 회당 70분을 초과하는 드라마를 매주 2편 만들어야 하는 비정상적인 제작환경 때문입니다. 게다가 스태프에게 돌아가야 하는 제작비의 몫은 갈수록 스타 몇 명의 캐스팅에 돌아가고 있죠. 따라서 드라마의 경쟁이 극심해질수록 드라마 현장의 노동자인 스태프들의 노동을 쥐어짜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혼술남녀>는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 ‘혼밥족(혼자 밥을 먹는 이들)’ 등 어려움에 빠진 20대 청춘들과 비정규직들의 애환을 다룬 작품이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주제의식에 맞게 현장은 돌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 때문에 이 PD가 목숨을 끊어야 했는지 확실히 규명되지는 않았으나 정말 과로 때문이든 아니면 인격모독과 폭언 때문이든 그것도 아니라면 꿈꿔왔던 현장과 실제 드라마 현장의 괴리 때문이든 목숨을 끊을 만큼의 부담이 그를 엄습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클릭TV

이 상황에서 유가족은 대형 방송사에 비해 약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약자의 목소리는 언제든 왜곡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유가족이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이번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해결돼 가는지, 관심이 있는 시청자 모두와 함께 지켜보겠습니다.

<하경헌 스포츠경향 엔터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