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ID는 강남미인!>-외모 칭찬이 어떻게 여성혐오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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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처음 외모 칭찬도 여성혐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고개를 갸웃한 것이 사실이다. 첫 번째 이유는 ‘여성혐오’의 정의 자체를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구체적인 맥락을 정확히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6년 한 해 동안 가장 뜨거웠던 단어를 꼽으라면 ‘여성혐오’가 아닐까. 2012년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가 쓴 <여성혐오를 혐오한다>가 국내 발간되면서 소개된 신조어라는데,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이제는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전부터 ‘김치녀’, ‘된장녀’, ‘삼일한(여자는 3일에 한 번 팬다는 뜻)’, ‘김여사’, ‘맘충’ 등등 여성 비하 표현이 날로 늘어가고 있었지만, 실제 욕먹을 짓을 하는 일부 여성에 대한 호칭이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주장을 반박할 간명한 언어가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여성혐오’의 등장으로 문제적 행동이 선행되어 문제적 표현이 따른 것이 아니라 여성을 남성보다 낮게 보는 의식이 비하적 표현을 불러왔다는 해석이 파급력을 얻기 시작했다.

기맹기 작가의 만화 <내 ID는 강남미인!>의 한 장면. / 네이버웹툰

기맹기 작가의 만화 <내 ID는 강남미인!>의 한 장면. / 네이버웹툰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혐오라뇨

쓰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장면들이 자주 보였다. 타임푸어 워킹맘이라 우에노 치즈코의 책을 읽을 여력이 없어 ‘여성’과 ‘혐오’가 조합되었으니 여성을 증오하고 배척한다는 의미, 동성애 혐오를 지칭하는 ‘호모포비아(homophobia)’의 여성판인가 뜻을 짐작해 보았다. 하지만 같은 해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내가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여혐이라뇨”라고 발끈하였을 때, “여혐은 그런 게 아니라 미소지니(misogyny)를 번역한 것입니다”라는 반박이 달리는 것을 보고, ‘여성을 혐오하는 게 아니었어?’라고 놀라며, 추측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왕년에는 여성학을 전공해 보겠다고 고래적 <여성의 예속>부터 뒤적였는데, 이렇게 감이 떨어졌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이번에는 ‘미소지니(misogyny)’를 검색해 보았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남성 혹은 여성이 여성에게 느끼는 증오와 공포를 의미한다”가 첫 문장으로 등장하니 ‘아니 여성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미소지니라고 했는데, 미소지니가 여성에게 느끼는 증오와 공포면 이건 뫼비우스의 띠도 아니고 여성혐오란 대체 무엇인가’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의문을 풀어 준 것은 2016년 9월 8일자 <한겨레신문> 황현산 칼럼 ‘여성혐오라는 말의 번역론’이다. ‘미소지니(misogyny)’란 근대 남성 문인들이 여성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뮤즈’로 환상을 품었다가 기대가 배반되었을 때 분노하는 태도, 여성을 기피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긴 생각 등을 총칭하는 의미라고 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어머니에게, 아내에게, 직장의 여성 동료에게, 길거리에서 만나는 여성에게, 심지어는 만나지도 못할 여자들에게 특별히 기대하는 ‘여자다움’”이 ‘여성혐오’라는 것이다. 희대의 오역이라고 불릴 정도로 원뜻과 번역어 간에 괴리가 존재한다.

그제야 여성의 외모를 칭찬하는 것도 ‘여성혐오’라는 주장이 이해되었다. 아직도 칭찬하는 게 어떻게 ‘여성혐오’냐고 고개를 젓는 분들께는 네이버 웹툰 <내 ID는 강남미인!>을 권해드린다. 제목에서 나타나듯 주인공 강미래는 성형미인이다. 못생겨서 여자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자화장실에 감금되는 학교폭력을 당할 정도로 괴로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 위하여 전면성형을 했다. 그러나 성형을 하고 예쁘다는 말을 들어도 편하지 않고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다. 여성이 미모라는 틀에 끼워 맞춰져 있을 때 틀 안의 순위가 높아진다고 해도 갑갑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과 내에서 남학생들은 강미래와 중성적인 스타일의 권윤별, 퀸카로 떠받들어지는 현수아를 앞에 두고 “미래 너 예쁘다고. 권윤별 옆에 있으니까 평소보다 더 여성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윤별이가 미래를 위해 한 몸 희생한 거냐? 이제 수아만 미래 옆에서 떨어지면 돼”라며 칭찬인 듯 여학생들의 외모를 품평의 대상으로 줄 세운다. 축제를 준비하면서 “주점의 꽃은 뭐다? 바로 예쁜 서빙 너희들 아니겠냐”며 야한 옷을 입게 하고, 다이어트만 하면 인생이 바뀔 것이라면서 손에 든 음식을 빼앗고, 쌍꺼풀 수술 안 하는 게 아깝다거나 여성스런 차림을 해야 인기가 있으니 스타일을 바꿔 보라거나 자연미인과 성형미인을 라이벌로 언급하는 말들을 한다. 특별히 나쁜 사람들은 아닌데, 공기를 마시듯 일상적으로 여성에게 외모를 대입시킨다. 오히려 그런 말에 화를 내는 사람이 예민한 사람으로 치부될 정도다. 그런데 끊임없이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틀에 재단당하면서 외모 칭찬이 기쁘게만 들릴 수 있을까.

고백하자면 처음 외모 칭찬도 여성혐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고개를 갸웃한 것이 사실이다. 첫 번째 이유는 ‘여성혐오’의 정의 자체를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구체적인 맥락을 정확히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화 속에서 구현되는 상황을 보면,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기대하면서 칭찬과 지적 혹은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것을 ‘미소지니(misogyny)’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여성혐오’란 오랫동안 공기처럼 존재해 왔기에 성별이 무엇이듯 자유로울 수 없고, 이전에는 보편적이지 않았던 개념이기 때문에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혹은 여성에게 여성다움을 기대하고, 남성에게 남성다움을 기대하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도 가능하다. 그렇기에 ‘여성혐오’는 결론으로 등장할 개념이 아니라 논쟁의 촉매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당근과 채찍 병행이 ‘미소지니(misogyny)’

‘여성혐오’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 자체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개념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이 지양되어야 할 이유를 설득할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때로는 적용하는 사람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언제는 페미니즘을 설명할 시간이 충분했냐만은 낯선 개념과 오역의 혼란, 논쟁보다 앞선 판단 속에서 ‘여성혐오’가 종북 딱지처럼 붙여져 배척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반발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물론 ‘여성혐오’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은 지난하고 종종 실패할 것이다. 그러니 직접 책 좀 읽고 공부 좀 하라는 짜증이 앞서기도 하고, 왜 친절하고 자상하게 설명씩이나 해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대체 어디까지 설명하고 설득하란 말인가 불가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대의를 위해서 여성문제로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로 논의 자체를 차단당할 수도 있다. 더구나 상대가 페미나치라는 둥, 너희들 때문에 페미혐이 생기겠다는 둥 공격적으로 나올 때는 한가하게 설득하고 있을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 박’이라는 호칭에 대해서도 상당한 시간 고민한 후에는 그것이 문제적임을 자각하는 늙고 감 떨어지는 페미도 여기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서로 이야기를 계속하자는 말씀. 이해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늘어야 세상이 바뀌는 것이니까.

<최윤수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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