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공공정보 원데이터를 공개해야 하는 이유

정부가 플랫폼이 된다는 것은 정부가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정보의 인프라가 된다는 걸 말한다. 예를 들어, 서울시와 수도권의 도로교통 정보가 공개되면 개발자들은 전철과 버스가 언제 도착하는지 알려주는 모바일앱을 만들 수 있다. 한국 정부도 소위 ‘정부 2.0’이라고 하는 이런 트렌드를 잘 알고, 정부 기관과 연구소에서 활발하게 논의해 왔다.

하지만 사회과학 연구자로서 볼 때 이 정책에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도 많다. 공공정보 개방이 새로운 웹 및 모바일앱으로 이어지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정부가 갖고 있는 방대한 자료들을 관련 연구자들이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원데이터(raw data)로 공개할 때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연구가 가능해지고, 그런 연구를 토대로 더 나은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KT 황창규 회장(왼쪽)과 농림축산식품부 이동필 장관(오른쪽)이 지난해 6월 25일 ‘빅데이터 기반 가축전염병 대응을 위한 KT-농식품부 간 업무협력 협약식’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필자가 있는 미국 UC버클리대학 정치학 박사과정에선 주변에 한국을 연구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유 중 하나는 세계은행, OECD 같은 곳에서 공개한 데이터가 아니라면, 웹에서 영어로 제대로 된 한국 관련 데이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어로 된 데이터도 원데이터로 공개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주로 PDF 파일, 심지어는 뷰어가 없으면 읽기 어렵고 해외 이용자들은 거의 쓰지 않는 ‘한글’(HWP) 파일로만 공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마저도 최근 수년의 기록밖에 없고, 그 이전의 기록을 찾으려면 각종 정부 백서와 보고서를 뒤져서 본인이 직접 수집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 대해 상당한 관심이 있지 않고서는 한국을 연구하기가 쉽지 않다.

반대의 경우로, 인도에 대해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정부 2.0이 거론될 때마다 흔히 꼽히는 미국이나 영국이 아닌 인도다. 인도의 2013년 인구당 GDP는 약 1498달러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도는 민주주의, 국제개발 등의 이슈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사례다. 물론, 인도가 탈식민지 이후 민주주의를 지켜온 이력이나 중국과 비교되는 인도식 개발모델이 흥미롭긴 하다. 그렇지만 인도 정부가 끊임없이 각종 정보를 영어로 웹을 통해 공개하고 업데이트하는 것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세계적 석학과 유명 인사를 거금을 들여 초대해 그들의 고견을 듣지만,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 우리의 데이터를 가급적이면 한국어와 함께 영어로 공개해 전 세계의 석학들, 최첨단의 이론과 분석방법을 갖고 있는 연구자들로 하여금 우리 데이터를 가지고 연구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기존 이론과 새로운 이론을 탄탄한 데이터를 통해서 검증하고 싶어하는 사회과학자들에게 한 나라의 공공정보가 매우 구체적인 수준에서 공개된다면 그것만큼 기쁘고 흥분되는 일도 많지 않다. 학계에서 한국의 이미지와 위상을 제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추가적인 비용 지불 없이 훌륭한 연구와 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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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은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과학과 정책과학을 키우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무리 통계적 모델이 뛰어나고 정교한 이론을 써도, B급 데이터를 쓰면 B급 연구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선거·세금·정부 지출 등 각종 정부 분야에 대한 공공정보가 원데이터로 적극적으로 공개될 수 있다면, 현재 국정 현안이 되는 각종 이슈에 대해서도 이념적 대치가 아닌 데이터 분석으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 현재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정보의 공개 방향은 맞다. 하지만 그 활용도를 더 높이기 위해 어떤 원데이터를 어떻게 공개할 것인가에 대해서 더 고심할 필요가 있다.

<김재연 <대학사용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