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창업국가의 기업가적 역할

한국이 꿈꾸는 창업국가의 길이 그저 창업하는 사람들 숫자를 늘리는 것만이라면 우리는 이미 창업국가다. ‘글로벌 기업가 정신 모니터’의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42개월 미만 창업 사례 가운데 한국의 생계형 창업 비율은 36.5%로 주요 선진국들 중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크게 타격을 입은 스페인이 29.2%, 그리스 23.5%로 한국보다 낮다. 이웃 일본은 25%, 대만은 28.7%로 역시 한국보다는 낮다.

이 수치는 한국에서 근로의욕을 갖고 있지만 적절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창업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골목마다 들어선 치킨집과 카페들을 생각해보라. 한국에 치킨과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생계를 유지해야 할 사람들이 급증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건 사회적 위험의 개인화다.

달리 말해 창업국가가 되려면 단순히 창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로는 부족하다.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생계형 창업 기업 중 5년 후 살아남는 기업은 30%에 불과하다.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 기회를 보고 하는 창업이야 국가에서 밀어주고 키워줘야 하겠지만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어찌할 수 없어 창업하는 건 개인에겐 부채로, 국가에는 위기로 연결된다.

지난 1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창업박람회에서 참가자들이 게시판에 붙은 안내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 서성일 기자

과거 생계형 창업이 아니라 기회추구형 창업이 늘어났던 시기는 경제개발 초기였다. 길에서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셋 중에 한 명이 뒤를 돌아본다고 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 경제개발의 주역은 일부 대기업들이었다. 시장은 커졌지만 이들의 시장 지배력 역시 커지면서 새로운 기업이 치고 들어갈 분야도 많이 남지 않았다.

시들었던 창업붐은 한국이 브로드밴드 선진국이 되면서 다시 살아났다. 세계적으로도 빠르게 도입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시장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줬다. 대기업들이 이 불확실한 시장에 굼뜨게 대응하는 사이 다음, 네이버, 넥슨 같은 기업들이 약진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의 스마트폰 열풍은 또 다른 창업 열기를 일으켰다. 카카오를 비롯한 무수한 스타트업들이 이 무렵에 몸을 불렸다. 통신사마저 위협한 카카오의 인기나 소셜커머스 등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의 등장은 이 때 가능했다.

한국의 과거 경제개발 모델은 정부와 기업의 협조였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짰고, 기업은 여기에 따랐다. 정부는 일부 기업을 선택해 특정 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지원했고, 그 혜택이 국민에게 고용과 성장으로 나눠질 수 있도록 했다. UC버클리대 교수였던 찰머스 존슨이 일본의 경제개발 모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발전국가’ 개념이 이러한 모델을 설명한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러한 ‘발전국가’는 한국이 ‘창업국가’로 발전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발전국가가 파트너인 대기업을 적절하게 견제하지 못할 경우엔 걸림돌이 된다. 특별히 이런 상황은 세계적인 탈규제의 흐름 속에서 더 심해졌다. 경제가 집중화된 상황에서 정부가 손을 떼면 완전경쟁시장이 아니라 독과점이 등장한다. 한국 정부가 규제를 줄인다며 시장에서 물러났을 때, 거기엔 대기업에 의한 암묵적 질서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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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창업국가도 국가다.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기술 인프라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 때, 어설픈 창업 지원책보다는 새롭고 자유로운 기술을 도입·확대하는 노력을 강화하는 게 창업국가로 가는 더 빠르고 정확한 지름길일 수 있다. 대기업과 파트너로서 국가의 역할은 예전보다 감소했을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인프라와 시장을 만들어내는 기업가적인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존재하고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하다.

<김재연 대학사용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