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칼럼]플랫폼 지배자가 시장을 지배한다

지난 3월 25일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오큘러스리프트’(Oculus Rift)의 개발사인 오큘러스VR를 인수한다고 발표했을 때, 업계는 두 가지 이유로 크게 경악했다.

첫째로 엄청난 인수금액 때문이다. 아직 제품 상용화도 하지 못한 2년차 신생기업을 23억 달러(약 2조5000억원)에 인수했기 때문이다. 오큘러스리프트는 아직까지도 개발자 버전만 존재한다. 오큘러스리프트는 처음엔 게임용으로 등장했으나, 이후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놀라운 인기를 끌면서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들도 개발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2조원이 넘는 인수금액에는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둘째, 인수 주체가 페이스북이라는 사실이다. 오큘러스VR의 창업자인 파머 루키가 밝힌 바에 따르면, 저커버그가 인수 얘기를 꺼낸 후 불과 열흘도 안 돼 협상을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저커버그는 오큘러스VR가 독자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도대체 페이스북과 게임용 가상현실 기기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오큘러스리프트 시연장에서 한 참석자가 기기를 착용하고 가상현실을 체험해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앞서 페이스북은 카카오톡과 라인의 원조 서비스이자 글로벌 경쟁자인 왓츠앱을 190억 달러에 인수한 바 있다. 이처럼 이어지는 대규모 인수의 공통점은 왓츠앱이나 오큘러스리프트 모두 앞으로 큰 시장을 창출할 차세대 플랫폼이라는 사실이다. 왓츠앱은 북미와 유럽에서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국내 카카오톡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모바일 메신저는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킬러 기능을 통해 사용자들을 록인(lock-in)하고, 이를 기반으로 게임 및 커머스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모바일의 포털이 되어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이다.

아직 가상현실 시장은 태동되지도 않은 수준이지만, 오큘러스리프트는 이제 가상현실 시장을 새롭게 창출하는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직접 사용해보면 자꾸 손이 가는 기기라는 걸 알 수 있다. 영화 <토탈리콜> 속 내용이 현실화될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현재로서는 단지 개발자 버전만 존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개발자들이 이 새로운 기기의 치명적 매력에 빠져 열광적으로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열광의 수준이 얼마나 대단한지, 페이스북 인수 발표 후 오큘러스VR 직원들이 팬보이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을 정도다.

성공적인 플랫폼은 반드시 생태계를 만들어낸다. 바꾸어 말하면, 아무리 기능이 다양하고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생태계를 만들어내지 못한 플랫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플랫폼 등장 초기에 성공을 점칠 수 있는 가늠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용자의 폭발적인 증가와 더불어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얼마나 커다란 관심을 보이는가 하는 점이다.

앞으로 오큘러스VR가 제품을 성공적으로 상용화하고 현재의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킨다면, 미래 가상현실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 페이스북이 투자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페이스북은 왓츠앱 인수를 통해 막 개화된 모바일 플랫폼을 장악하고, 또한 오큘러스VR의 인수를 통해 차세대의 가상현실 플랫폼을 장악하려는 것이다.

IT칼럼 구독

급속히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적시에 킬러 기능에 기반한 플랫폼을 직접 만들어 선보이든가, 아니면 엄청난 베팅을 해서라도 플랫폼을 가진 신생기업을 인수해야 한다. 플랫폼을 지배하는 자가 시장을 지배한다. 소셜네트워크 플랫폼을 통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페이스북이야말로 그러한 명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기업이다.

<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