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더불어 사는 곳이 집이다

‘집’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가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 즉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과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사회적, 심리적 공간으로서의 ‘집’이다. 애초에 이 두 가지는 분리된 것이 아니었을 텐데,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집’은 주거를 위한 공간과 삶의 터전으로서의 가정이라는 각기 다른 의미로 읽히기 시작했고, 여기에 ‘집은 곧 재산’이라는 재테크 차원의 의미가 첨가되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장우재가 쓰고 연출한 극단 이와삼의 연극 <여기가 집이다>는 1인 가구 500만 시대를 맞이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집’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인 갑자고시텔은 바로 그런 질문을 시작하기 위해 설정된 최소 단위의 주거공간이다. 실제로 이제 고시원은 더 이상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잠깐 머무르는 공간이 아니다. 끝도 없이 치솟는 전세와 월세에 더 이상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가장 최소한의 조건 속에서 수면과 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하는 마지막 보루다. 그런 의미에서 무대 위 칸칸이 닭장처럼 나뉜 방들로 이루어진 갑자고시텔은 현대 사회의 비정상적인 주거문화, 갈 곳 없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쫓겨난 공간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연극 <여기가 집이다> | 한강아트컴퍼니 제공

등장인물인 장씨, 양씨, 최씨 등은 모두 고시생과는 거리가 먼 중년의 사회인들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사회에서 밀려난 채 이곳 갑자고시텔에 기거하며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장씨와 양씨는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아내와 떨어져 홀로 고시원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그들 앞에 어느날 이 갑자고시텔의 주인이라는 고등학생 동교가 나타나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상황들이 펼쳐진다. 동교는 하나부터 열까지 현실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다. 20세 나이에 외국에서 돌아와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것이나 할아버지로부터 고시텔을 물려받아 주인이 되었다는 설정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가 고시원 투숙자들에게 내놓는 제안은 엉뚱하고 기묘하기 그지없다. 그는 이곳이 고시원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집’이라 이야기하며, 그렇기 때문에 여기 사는 모두는 가족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자신은 가장이니 모두를 책임지겠다며 거액의 통장을 내밀고, 떨어져 사는 가족도 다 불러와서 함께 살자고 모두를 설득한다.

연극 <여기가 집이다> | 한강아트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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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장씨와 양씨의 부인까지 들어와 살며 고시원은 사람들로 북적이게 되고, 함께 밥을 먹고 대화와 사랑을 나누는 소소한 삶의 풍경들이 일상처럼 펼쳐진다. 물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만으로도 이 작품이 오늘의 우리에게 던져주는 바는 적지 않다. 사실 고시원의 낡고 허름한 쪽방은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좁디좁은 공간일지언정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며 공간과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 또 피 한 방울 안 섞인 타인일지언정 ‘가족’이라는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살을 맞대고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이 공간의 밀도와 의미를 바꾸어 놓았다. 집을 집답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 작품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름의 답을 내놓고 있다.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곳, 그곳이 바로 집이다. 5월 25일까지, 연우소극장.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