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이데올로기에 이용당하는 감성

감성사회
최기숙 외 지음·글항아리·1만8000원

감성은 일상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실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성을 표현하며 살지 않는다. 내뱉은 말보다 차마 하지 못해 삼켜버린 말들이 더 많고, 표출하지 못하고 그저 억눌러버린 감성들이 더 많다. 이 책은 삼켜진 말, 안으로 숨어버린 감성들의 흔적을 더듬는다. 동시에 사라져버린 감성을 대신해 우리들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또 다른 감성들은 무엇인지를 되짚어본다. 감성들이 자취를 감추고, 또 다른 감성이 자리를 차지한 곳에는 모종의 힘의 실체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힘은 체제에 맞게 우리의 감성을 통제한 이데올로기다.

이 책은 우리의 감성이 역사와 문화권에 따라 끊임없이 통제돼 왔다고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윤리와 예법의 이름으로 통제돼 왔으며, 냉전시대에는 반공의 이념으로 통제돼 왔다. 예컨대 반공시대에는 연민이 통제의 대상이 되는 감성이었다. 반공주의 정서는 대체로 공포, 증오, 적개심, 반감, 이질성 등으로 이뤄진 배제의 감성이 주를 이뤘다. 이는 이해, 연민, 동질성 등을 바탕으로 하는 통합의 감성과는 배치됐다. 반공시대에는 북한에 대한 감성이 적개심과 연민이 모호하게 섞여 공존하기도 했지만, 만약 연민이 적개심보다 더 커지면 연민은 바로 통제의 대상이 됐다.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약화시킬 정도로 연민을 품는 것은 반공주의라는 시대적 이데올로기에 위배되고 자칫 체제를 위반하는 범죄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특정 감성은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불안은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지탱해주는 핵심 감성이다. 국가라는 안전장치가 사라진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민간 보험상품들을 구매한다. 기업들은 사람들의 불안한 감성을 부채질하면서 이들을 판매한다. 위험과 불안에서 벗어나게 해줄 ‘물신’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대마불사’라거나 ‘부동산 불패’ 같은 말에서 알 수 있듯, 전능한 힘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대기업 주식이나 부동산이 사람들을 불안으로부터 탈출시켜줄 것이라며 사람들의 불안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감성은 타고난 천성이나 기질이 아니라 문화와 교육을 통해 습득되는 하나의 능력이라는 것이 이 책의 전제다. 감성이 사회화의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감성을 배제하고 통제하는 사회를 성찰적으로 조명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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