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양이 사자가 될 때 창조가 있다

‘창조경제’의 오리지널 버전은 18세기 영국에서 나왔다. 영국은 당시로부터 불과 3세기 전인 15세기 무렵만 해도 대항해시대의 후발주자이자 해적국가였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본래 이탈리아 사람이고,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대항해에 나섰다. 반면 당시의 영국 출신 탐험가 이름은 떠올리기 어렵다. 대항해시대에 가장 유명한 영국의 바다 사나이였던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해적 출신 해군이었다.

그러나 세계 경제사를 다시 쓰는, 산업혁명이라는 파도가 일었을 때, 그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건 영국이었다. 단적인 수치로 설명하면 기원 후부터 1570년 사이 약 1500년 동안 영국의 평균 소득은 200% 정도밖에 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1570년부터 1875년까지 1500년의 5분의 1에 불과한 약 300년 동안 영국의 평균 소득은 300%나 성장했다. 영국은 유럽의 변두리 국가에서 중심 국가로, 전성기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넓게 퍼진 영토를 갖고 있던 대영제국으로 부상한다.

하지만 영국의 창조경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빅토리아 여왕의 현명한 통치 때문에, 혹은 영민하고 자비로운 엘리트계층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뛰어난 지도자의 힘이 아니라, 지도자가 함부로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한 무섭고 끈질긴 시민의 힘이 영국의 창조경제를 만들었다.

먼저, 1215년에는 영주들이 들고 일어났다. 존 왕의 폭정에 맞서 영주들은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를 요구한다. 왕도 임의로 통치하면 안 되고, 영주들이 작성한 대헌장이라는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대헌장 61조에는 왕이 이 법을 따르지 않고 무리한 정치를 할 경우 영주들 25인이 위원회를 구성해 왕성과 왕의 소유를 점령할 권리를 명시한다.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의 모습을 재연하는 공연이 거행되고 있다. /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세기 초 영국 왕실이 유럽의 다른 국가들, 특별히 프랑스의 트렌드를 따라서 절대왕정을 실시하려 하자 이번에는 시민이 들고 일어난다. 국왕 세력과 의회 세력 간에 내전이 벌어졌고, 1688년 명예혁명을 통해 제임스 2세를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윌리엄 3세로 갈아치운다. 이런 정치혁명을 통해서 영국은 지도자들이 함부로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즉, 대항해시대의 후발주자였던 영국이 산업혁명에서 앞설 수 있었던 까닭은 영국이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다르게 절대왕정에 실패한 나라였다는 데 있다. 하버드 정치학과의 제임스 로빈슨 교수에 따르면 실패한 절대왕정 아래에서 시민들은 상대적 자유를 얻었다. 그 예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식민지 개척을 통해 축적한 부는 왕실과 왕실에 결탁한 기득권만 배부르게 만들었지만, 민간이 중심이 된 영국의 대항해시대는 상업과 무역을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적 계층인 젠트리를 탄생시켰다. 이들은 의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내전과 명예혁명을 통해 영국의 주요한 정치적 세력으로 부상한 뒤 적극적으로 산업혁명을 추진한다. 한때 역사를 풍미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는 이러한 대안적 정치세력이 없었다.

창조경제의 본질은 혁신이다. 그리고 혁신은 근대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가 표현했듯이 기존의 체제 아래에서 번성하던 모든 자들을 적으로 만든다. 인간은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문제 앞에서는 모두 비정해진다. 그런 인간의 본성을 생각할 때, 똑똑한 지도자를 바라기보다는 똑똑한 시민이 되기를 택했던 영국인들이야말로 오리지널 창조경제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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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권력을 추앙할 때가 아니라 권력이 시민을 두려워할 때, 영화 <로빈후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양이 사자가 될 때 그곳에 혁신이 있고, 창조가 있고, 성장이 있다.

<김재연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