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애니메이션 뮤지컬의 힘

요즘 라디오에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노래가 있다. 디즈니의 신작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렛잇고’(Let it go)다. 세련된 컴퓨터 그래픽과 매력적인 캐릭터, 흥미로운 이야기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장점은 한둘이 아니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뮤지컬적인 요소의 적극적인 활용이다.

<인어공주>의 ‘언더 더 씨’, <라이언 킹>의 ‘써클 오브 라이프’와 ‘하쿠나 마타타’, <알라딘>의 ‘어 홀 뉴 월드’ 등은 바로 이런 아이디어를 접목시켜 만화영화만큼이나 큰 사랑을 받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히트곡들이다.

‘렛잇고’는 극중 신비한 능력을 가진 엘사 여왕의 노래다. 우리말 버전 제작에 참여한 한국 배우의 음원은 물론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여러 가수들이 부른 각각의 노래마저도 화제가 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심지어 25개 언어로 제작된 홍보용 영상까지도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한 장면 | 디즈니 제공

물론 영어판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목소리는 따로 있다. 실제로 시원스런 가창력을 뽐내며 멋지게 노래를 부른 인물은 브로드웨이의 유명 뮤지컬 여배우인 이디나 멘젤(Idina Menzel)이다.

아직 그녀의 이름이 낯선 사람이라도 그녀가 출연했던 작품의 면면을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뮤지컬 <렌트>의 매력적인 레즈비언 모린에서부터, 얼굴과 온몸을 온통 초록색으로 분장하고 무대에 등장했던 <위키드>의 초록마녀 엘파바의 오리지널 캐스트가 바로 멘젤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만든 이들도 예사롭지 않다. 코미디 뮤지컬로 두각을 나타내던 로버트 로페즈와 부인인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즈가 함께 참여했다. 로버트 로페즈는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온 바 있는, 귀여운 인형들이 나오는 19금 뮤지컬 <애비뉴 Q>와 촌철살인의 익살이 유명한 <북 오브 몰몬>의 작곡가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음악을 만든 로버트 로페즈와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즈 부부 | 디즈니 제공

부인인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즈는 원래 아동용 콘텐츠를 주로 만들던 경력의 예술가다. 이번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부부의 풍부한 경험을 잘 버무려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낸 흥미로운 사례로 남게 될 전망이다.

디즈니가 뮤지컬 스타일을 자신들의 애니메이션에 활용한 것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의 음악을 만들었던 알란 맨켄과 하워드 애쉬만 역시 원래 뮤지컬계에서 잔뼈가 굵은 무대의 음악가들이다. 단지 완성도 높은 그림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브로드웨이 공연가의 인기 음악가를 영입해 ‘만화로 보는 뮤지컬’을 완성해내는 것이 글로벌한 흥행의 요인이 됐다.

부가가치 극대화의 공식은 글로벌 흥행 애니메이션을 다시 무대용 뮤지컬로 탈바꿈시키는 마술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어공주> <타잔> 등이 이런 과정을 통해 흥행 뮤지컬로 다시 활용됐다. 세계 각국의 인형극을 차용해 230가지가 넘는 마스크와 특수분장을 등장시키는 뮤지컬 <라이언 킹>은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절정의 흥행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겨울왕국>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롱런하는 현금박스로 활용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뮤지컬 산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라이선스 뮤지컬이 주도하며 시장의 외형만 늘려가고 있을 뿐,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들 수 있는 흥행 창작 콘텐츠의 확보는 요원한 과제로 남아 있다.

문화내시경

디즈니의 흥행 사례는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 나아가 문화산업의 나아갈 길에 대한 흥미로운 참고자료로 삼을 만하다. 창작물의 개발과 육성을 위한 다양한 유인책과 정책적 지원을 고민해보길 바란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