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공간 사옥은 문화다

연합뉴스

한국 현대건축의 걸작이자 1970년대 문화예술계의 ‘사랑방’ 역할을 한 ‘공간(空間)’ 사옥의 향방이 문화예술계의 이슈로 떠올랐다.

공간그룹의 재정적 어려움으로 공간 사옥이 부동산 경매시장에 나오자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공간 사옥의 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며 소셜펀딩 등을 통해서라도 사옥을 보존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00여명의 문화예술 각계 부문 인사들은 최근 기자회견 등 긴급 모임을 열면서 개발 논리에 따른 현대건축 걸작의 훼손을 우려했다. 이들은 “공간 사옥은 부동산이 아니라 문화다”라며 보존을 통한 공익적 활용을 촉구하고 있다.

문화재청도 개발 논리에 따른 훼손보다는 보존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사옥을 아예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채비에 나섰다.

문화재청은 11월 25~29일 현지 조사를 한 뒤 12월 10일 예정된 문화재위원회 회의에 등록 검토 안건으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등록문화재는 근대문화유산 중 보존 가치가 큰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하며, 등록문화재가 되면 개발 등에 제한을 받게 된다. 물론 등록문화재는 소유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 와중에 공간 사옥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사옥에서 실시된 공개입찰에서 응찰한 곳이 한 곳도 나타나지 않아 유찰됐다.

공간그룹은 최저 매각액 150억원을 제시했으나 응찰자는 없었고, 참관을 하러 세 곳이 왔을 뿐이다. 공간그룹 측은 가급적이면 11월 중에 재공매를 하거나 가능하다면 수의계약을 통해 매각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법정관리 상태인 공간그룹 회생 계획안에 따르면 연내에 매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법원 강제매각이 진행될 수도 있다.

공간 사옥이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큰 주목을 받는 것은 한국 현대건축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문화예술 활동의 핵심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의 이슈가 되고 있는 공간 사옥. | 연합뉴스

창덕궁과 ‘계동 현대 사옥’ 사이에 자리한 공간 사옥은 담쟁이넝쿨이 풍성하게 감싼 독특한 설계의 검은색 벽돌 건물로 유명하다.

현재 공간 사옥은 공간 초대 대표인 현대건축의 거장 고 김수근(1931~86)이 1971년 설계한 담쟁이넝쿨의 구사옥과 2대 대표인 건축가 고 장세양이 증축한 신사옥, 현 이상림 대표가 증·개축한 한옥 등으로 구성돼 있다. 명작 건축물답게 젊은 건축가들은 물론 건축학도와 답사객들이 자주 찾으며, 영화나 드라마 등의 배경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공간 사옥은 무엇보다 1970년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모여 토론과 논쟁을 벌인 사랑방이다. 또 지하 소극장인 공간사랑은 1인 창무극의 대가인 고 공옥진씨의 ‘병신춤’,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사물놀이’란 이름을 내세워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연을 선보인 곳이기도 하다.

김수근문화재단 이사이자 유명 건축가인 승효상씨는 “공간 사옥은 한마디로 현대건축의 자존심”이라고 말했다. 김덕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사물놀이는 물론 경기도당굿 등 우리 전통예술을 3일 밤 3일 낮 동안 펼치기도 하는 등 공간 사옥은 한국 전통예술의 미학적 측면이 비로소 확인된 곳”이라고 강조했다.

문화내시경

문화예술인들은 사옥이 민간에 매각될 경우 훼손 우려가 큰 만큼 사옥 보존에 뜻을 같이하는 시민이나 기업을 대상으로 소셜펀딩이나 내셔널 트러스트 같은 다양한 보존책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도재기 경향신문 문화부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