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신출귀몰 강도 커플 ‘보니 앤 클라이드’

희대의 강도가 주인공이다.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이야기다. 1930년대에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은행 강도이자 살인범인 보니 엘리자베스 파커와 공범이며 또한 연인이었던 클라이드 체스넛 배로우의 일대기가 이 작품의 줄거리다. 어떻게 자라다가 만났고, 범죄 행각을 펼치게 됐는지가 적나라하게 전개된다.

대공황의 극심한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날로 심해지는 빈부의 격차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미국인들은 두 범죄자의 속박받지 않는 듯한 자유로움에 대리만족을 느끼는 비정상적 군중심리를 경험했다. 마치 인기 연예인의 소식을 기다리는 팬들처럼 사람들은 이들의 범죄 소식에 흥분했다.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 연합뉴스

9명의 경관과 다수의 민간인을 살해하고 10여 군데의 은행을 터는 등 신출귀몰했던 희대의 강도 커플은 결국 기관총까지 쏘아대며 추격전을 벌인 경찰과 현상금 사냥꾼에 의해 결국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다. 소위 ‘공공의 적’(public enemy)이 활개를 치던 미국 근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고스란히 반영한 전형적인 스토리이자 엄연한 실화다.

그럴듯한 사연이 있음직한 이들의 범죄 행각은 훗날 여러 예술가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유명한 것은 영화 버전이다.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유명했던 영화 ‘보니 앤 클라이드’가 처음 대중에게 선보인 것은 1967년이다. 아서 펜이 메가폰을 잡았고 워렌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 진 해크만 등 유명 배우가 출연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영화광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될 정도로 인기였는데, 슬로 비디오로 처리된 두 주인공의 최후는 마치 화면으로 보는 한 편의 시처럼 몽환적이고 퇴폐적인 영상 미학을 선보였다. 한때 강남의 세련된 카페 이름으로 ‘보니 앤 클라이드’가 제일 큰 인기를 누릴 정도로 알 사람은 모두 아는 흥행 콘텐츠였다.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 연합뉴스

뮤지컬의 시발점도 영화로부터 비롯됐다. 화려한 복고풍 자동차가 황무지 같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영상과 겹쳐 등장하거나 영화배우의 화려한 삶을 공경하던 보니의 환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영상의 뮤지컬화에 머무르진 않았다. 무대는 세심한 배려를 한 여러 이미지들로 재포장됐다. 굳이 말하자면 다큐멘터리 영화기법을 뮤지컬 위로 덧입혀놓은 인상이다. 실존 인물의 실제 사진이 흑백톤으로 중간 중간에 등장해 제법 그럴싸한 분위기를 만든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도 화제다. 영국의 유명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한때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네 편의 뮤지컬을 동시에 상연했던 것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프랭크 와일드혼이 이 기록 못지않은 인기의 주인공이다. ‘지킬 앤 하이드’는 물론 ‘몬테 크리스토’, ‘황태자 루돌프’, ‘스칼렛 핌퍼넬’ 등 최근 인기를 누린 라이선스 뮤지컬 상당수가 그의 손끝에서 잉태되었다.

연말에 오를 ‘드라큘라’와 ‘카르멘’까지 합치면 앤드루 로이드 웨버를 뛰어넘는 폭발적인 기세다. 비슷한 선율과 정서로 자기 복제가 심한 ‘노래 제조기’라는 혹평도 있지만, 적어도 국내 관객의 마음을 읽고 심금을 훔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 것 같다.

다만 흥미롭게도 ‘보니 앤 클라이드’에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음악적 실험이 있다. 아무래도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미국 근대사가 배경인 작품이다 보니 컨추리나 포크송 스타일의 변주를 과감히 시도한 탓으로 보인다. 덕분에 관객 입장에서는 ‘와일드혼’ 음악의 새로운 면을 만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게 됐다.

문화내시경

영화의 판타지가 무대에서는 유혈이 낭자한 섬뜩한 총격전으로 교체되고, 로맨스와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한 무리한 스토리로 살인자의 범죄 행각이 지나치게 미화되는 문제점도 있다. 하지만 발칙한 예술가의 상상이 무대에서 다르게 재연되는 재미는 쏠쏠하게 즐길 만하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