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한국식 해석 가미한 ‘잭 더 리퍼’

뮤지컬에선 연쇄 살인범도 낭만적인 존재다. 여러 차례 앙코르 공연을 올리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뮤지컬 ‘잭 더 리퍼’가 그렇다. 춤과 노래, 연기가 어우러진 상업 예술장르에선 보기 드문 미스터리 뮤지컬이란 점이 반전의 매력이다. 물론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역발상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시킨 경우다.

뮤지컬 <잭 더 리퍼> | 엠뮤지컬아트 제공

희대의 연쇄 살인범인 ‘잭 더 리퍼’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실화다. 백년도 넘은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이 전대미문의 연쇄 살인 사건은 영국 사람들에겐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충격적이고 미스터리한 잔상으로 남아 있을 정도다. 잔인한 범죄 현장이나 알 수 없는 살해동기도 끔찍스러웠지만, 특히 선혈이 낭자한 시신에서 장기가 축출돼 사라져버린 것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요즘처럼 과학수사가 발달되지 못한 19세기 영국에선 혈흔이나 DNA 추적과 같은 첨단의 분석기술이 존재하지 않았고, 결국 사건은 영원한 미스터리라는 미궁으로 빠졌다.

혹자는 장기를 구하기 힘든 당시의 의료환경 때문에 벌어진 장기 밀매 조직의 소행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또 다른 이들은 사회를 혐오한 성도착증 정신병자가 저지른 만행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주장에는 추리 소설가를 지목한 경우도 있다. 상상을 초월한 사건의 전말로 미루어 보아 ‘셜록 홈즈’의 작가 아서 도일이 진범이라는 주장이었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데다가 경시청으로 편지까지 보내는 대범함이나 용의주도함이 일반인으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아무튼 전대미문의 살인사건은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결국 뮤지컬로까지 등장하게 된 배경이 됐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뮤지컬의 원작자는 영국이 아닌 체코의 예술가들이다. 덕분에 무대로 구현된 공연 속에는 동유럽 뮤지컬 특유의 장중함과 수려한 멜로디의 음악적 감수성이 담겨지게 됐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잭 더 리퍼’의 대중적 흥행은 단지 체코 원작만의 힘만은 아니다. 이 작품이 지구 반대편 극동아시아에서 대중성과 생명력을 지니게 된 것은 한국 연출진들의 참신한 해석과 재구성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여러 작품을 통해 콤비로 활동하며 왕성한 제작 열정과 흥미로운 실험을 지속해온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감독, 그리고 기획·제작에 참여한 프로듀서들의 하모니가 새로운 재미를 잉태해낸 경우다. 덕분에 이 작품은 한 번 만들면 고칠 수 없는 영화와 달리, 막을 올리는 장소나 문화·언어에 따라 조금씩 진화해 가는 무대의 묘미를 십분 활용했다.

뮤지컬 <잭 더 리퍼> | 엠뮤지컬아트 제공

한국식 해석이 더한 공연의 완성도는 이웃 일본의 뮤지컬 공연가로 진출하게 된 초석이 됐다. 중계무역처럼 다른 이의 물건을 가져다 생명력을 더한 뒤 또 다른 이에게 되파는 재미난 사례가 된 셈이다. 공연의 산업적 가치를 극대화한 경우로 볼 수 있다. 그저 유명한 원작을 가져다 국내 관객들의 주머니를 털어갈 고민만 하는 일부 국내 제작자들의 사례와는 달라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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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제작사의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이 작품에도 스타 마케팅이 적극 활용됐다. 주인공인 다니엘 역으로는 정동하, 슈퍼주니어의 성민, 2AM의 창민, 박진우, 엄기준, 김다현, 지창욱 등 7명이 출연하고, 잭으로는 신성우와 김법래, 조순창 등 3명이, 앤더슨으로는 김준현과 이건명, 민영기 등 3명이 번갈아 무대를 맡는다. 조합에 따라 수십 가지의 무대가 등장하게 된다는 의미다. 좋게 말하면 마음에 드는 배우를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배우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지는 문제점도 엄연히 존재한다. 즉 현명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래도 관객들의 환호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우리 뮤지컬의 매력이 궁금한 관객이라면 숙제처럼 봐야 할 작품이다. 흥행 신화가 계속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