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세서미 스트리트’ 캐릭터들이 성인이 됐다면?

어린이용 방송 프로그램 속 캐릭터들이 자라나 성인이 됐다면 어떤 모습일까? 예를 들어, 텔레토비의 뽀가 자라서 심술궂은 욕쟁이 아줌마가 됐다면? 피구왕 통키는 구직에 실패한 청년 백수가 되고, 아기공룡 둘리는 주체할 수 없게 불어난 체중 때문에 비만 클리닉을 다니는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까?

엉뚱해 보이지만 이런 내용을 가지고 만든 흥행 뮤지컬이 실제 있다. 제목은 ‘애비뉴 큐’(Avenue Q). 평범한 서민들이 사는 달동네가 배경으로 오는 8월 투어 프로덕션의 내한공연이 있을 예정이어서 벌써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뮤지컬 <애비뉴 큐>

‘애비뉴 큐’가 패러디 소재로 활용한 것은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라는 방송 프로그램이다. 1980~1990년대 주한미군방송 AFKN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었던 추억 속 TV 프로그램이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 콘텐츠로 유명했던 방송물이다. 처음 방송을 시작한 것은 1969년의 일로, 그 후 수십년 동안 시리즈를 이어가며 미국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오래 제작된 아동용 프로그램이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기가 많아 세계 120여개 나라의 안방극장에 소개되는 등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으로서는 가히 전대미문의 성공을 누렸다. 특히 애니매이션과 인형, 사람을 한데 뒤섞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독특한 형식이 꽤나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방송에 등장하는 인형 캐릭터들, 예를 들어 혀 짧은 소리를 내는 엘모나 노란색 깃털에 큰 키가 인상적인 빅 버드, 그리고 쿠키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털복숭이 괴물 인형 쿠키 몬스터 등은 아이들에게서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뮤지컬 제작의 시발점이 된 것도 바로 이 TV 프로그램이었다. 제작자인 로버트 로페즈와 제프 막스는 보통의 미국인처럼 어린 시절 ‘세서미 스트리트’를 보고 자란 신세대 예술가들이었고, 그래서 낯익은 인형들이 사람들과 함께 무대에서 연기하고 노래하는 작품을 만드는 데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단순히 TV 프로그램을 무대로 재연하는 대신 두 젊은 제작진은 재미난 상상력을 가미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내게 된다. 즉 ‘세서미 스트리트’의 친근한 인형들에게 무대만의 발칙한 환상과 상상력을 더해 “만약 그때 그 인형들이 이제 모두 자라 성인이 됐다면?”이라는 별난 가정을 덧붙여본 것이다.

뮤지컬 <애비뉴 큐>

덕분에 뮤지컬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용 소재의 틀을 벗어나 성인들을 위한 온갖 음담패설과 성적 유머가 담긴 19금 인형극으로 변했다. 대도시 달동네에서 사는 현대사회 속 서민들의 삶과 고민, 취업·실업 문제, 게이나 레즈비언 등 성 정체성에 대한 방황, 인터넷 성인 사이트 등 현대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실험이 감행됐다. 인형이라서 용서되고 넘어갈 수 있는 낯 뜨겁고 직설적인 대사와 설정이 배꼽을 잡게 만들었다. 특히 적나라하지만 귀엽고, 웃기지만 알싸한 뒷맛이 남는 형식과 내용의 무대는 풍자의 재미를 듬뿍 담은 완성도를 지니게 됐다.

인형극 하면 사람들이 안 보이게 숨어서 조작을 하는 모습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애비뉴 큐’는 보다 직설적이고 단도직입적인 형식을 활용해 배우가 드러내놓고 인형을 손에 끼고 함께 노래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적 도전을 감행했다. 경우에 따라 두 인형을 동시에 조작하거나, 두 사람이 각각 한 인형의 절반씩을 맡기도 하는데, 덕분에 묘기 부리듯 능수능란한 인형의 조작이 또 다른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어찌나 자연스레 인형을 만지고 각각의 캐릭터에 맞게 노래를 다른 목소리로 부르는지 감탄의 박수가 절로 터져나온다.

문화내시경

미국식 유머와 풍자, 해학이 넘치는 이 작품이 우리 관객들에겐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조금만 마음을 열고 즐길 준비를 한다면 분명 색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