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남아공 흑인 음악의 평화적 염원

뮤지컬 <우모자>

뉴욕이나 런던처럼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사는 메트로폴리탄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주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단일민족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도 모르지만, 이른바 소수민족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문화적 취향이 그것이다. ‘디아스포라’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사회 현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원래는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산다는 뜻의 이산(離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지만, 요즘 서구의 콘텐츠 산업에서는 ‘디아스포라 컬처’가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의 공식으로 통할 만큼 인기가 높다. 낯설지만 흥미롭고, 익숙하진 않지만 재미있는 다름의 미학이 대중들에게 소구되는 탓이다.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요즘 글로벌 무대에서 인기를 누리는 작품 중에는 낯설고 신선한 ‘디아스포라 컬처’ 소재의 작품들이 많다. 뮤지컬 하면 으레 브로드웨이만 떠올리는 관객들에겐 뜻밖의 경험일지 모르지만 뮤지컬을 만들고 즐기고 소비하는 문화가 비단 서양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떠올려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당장 우리의 모습만 봐도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이 공전의 흥행을 기록한 이후 대한민국의 뮤지컬 산업은 거의 매년 17~18%에 육박하는 시장의 팽창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는 25%의 기록적인 급성장세를 보이기도 했다.

뮤지컬 <우모자> | 서울예술기획 제공

5월에 내한공연을 하는 남아공 뮤지컬 ‘우모자’ 역시 그래서 시선을 끄는 작품이다. 이 무대가 세계적인 뮤지컬 시장인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처음 선을 보인 것은 2001년 11월이다. 남아공에서 전회 매진이라는 흥행기록을 세우며 유럽 대륙으로 진출한 이 작품은 한마디로 하자면 ‘아프리카 흑인 음악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흑인 부족들의 에너지 넘치는 민속춤으로부터 시작해 근대 산업사회인 요하네스버그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스윙 재즈, 탄광 노동자들의 부츠 두드리는 대화방식에서 유래됐다는 검부츠 댄스, 흑백 갈등과 흑인 탄압의 역사 속에서 삶의 시련을 잊기 위해 상대적으로 더 섹시하고 화려하게 꾸며졌던 댄스음악들,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의 격렬한 그루브(Groove) 리듬이나 힙합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를 방불케 할 만큼 화려하고 다양한 남아공 흑인들의 대중음악을 연대기별로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이토록 다양한 무대를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이 원래는 평범한 남아공의 젊은 흑인들이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이 소웨토나 소피아타운 같은 남아공의 궁핍한 흑인 집단주거지역 출신이다. 남아공 흑인 지도자들이나 선각자 중에는 이런 열악한 사회적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흑인들을 위한 교육시설이나 여건 투자에 노력하는 경우가 많았다. 뮤지컬 ‘우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교육시설이 없어 타고난 예술적 재능을 살리지 못하는 남아공 젊은이들에게 춤과 노래를 통해 그들의 정체성을 찾게 하려는 남아공 흑인들의 정체성 찾기와 문화개혁 운동의 결실로 잉태된 작품이라는 데 이 작품의 의의가 있다.

뮤지컬 <우모자> | 서울예술기획 제공

문화내시경

제목으로 쓰인 ‘우모자’라는 말은 ‘모두 함께 하는 정신’이라는 뜻이다. 시대를 초월하며 남아공 흑인들의 음악 안에 숨겨져 있는 인류 공생의 평화적 염원을 함축한 말이다. 장면 하나하나 독특하고 흥미롭지 않은 데가 드물지만, 특히 ‘우모자’의 백미를 이루는 것은 출연자 전원이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으로 흩어져 관객과 함께 노래하는 흑인영가 장면이다. 흥미롭게도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인 ‘한(恨)’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핍박받고 어렵게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지구 반대편으로까지 울림을 남기는 것은 여간 신비한 체험이 아닐 수 없다. 뮤지컬 애호가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귀한 무대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