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뮤지컬로 돌아온 ‘사랑과 영혼’

그 시절 풍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극장 밖 큰거리에선 유명 영화인들이 삭발을 감행하며 시위를 벌였고, 어떤 성난 이는 객석에 뱀을 풀겠다고 윽박질러댔다. 하지만 매표소에는 끝 모를 인파행렬이 이어졌고, 티켓이 모두 팔리자 극장측에선 보조의자까지 공수해와 관객들을 쓸어담았다. ‘사랑과 영혼’이라는 우리말 제목을 달고 직배 파동 속에서도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던 영화 ‘고스트’의 풍경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무대용 뮤지컬로 변신해 연말 한국어 버전을 새롭게 선보일 것이라는 소식이다.

영국 런던에서 공연된 뮤지컬 <고스트>의 한 장면 | 신시컴퍼니 제공

장르로 구분하자면 이 작품은 요즘 자주 쓰이는 무비컬의 전형적 사례다. 두말할 나위없이 영화를 의미하는 무비(Movie)와 무대용 콘텐츠인 뮤지컬(Musical)의 합성어다. 원작 영화를 기억하는 기성세대에겐 추억 속 영상을 무대에서 다시 만나는 재미를 선사하고, 요즘 젊은이들에겐 이미 흥행성과 대중성이 검증된 ‘재미난’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함으로써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으로 작용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도랑 치고 가재도 잡는’ 요즘 문화산업 부가가치 창출의 전형적인 공식이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무비컬이 단순히 영상의 무대적 재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생산물들이 그렇듯 무비컬 역시 익숙하면서도 다시 새로운 해체와 재구성의 묘미를 십분 반영해야 비로소 그 생명력을 인정받게 된다. 덕분에 무비컬에선 영화에 있던 장면이 사라지기도 하고, 반대로 없던 장면이 추가되기도 한다. 무비컬 ‘고스트’에서는 도자기 신이 그렇다. 영화의 상징처럼 통했던 대표적인 명장면이지만, 무대에선 도자기틀 자체가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영화의 솜사탕 같은 정서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아쉬울지 모르지만 적어도 식상하진 않아서 나쁘지 않은 무대적 표현으로 탈바꿈됐다.

뮤지컬이 처음 만들어진 곳은 축구로 유명한 영국의 맨체스터다. 지방은 서울에서 만들어진 뮤지컬 콘텐츠의 소비지쯤으로만 여기는 우리 사정과는 달라서 흥미롭다. 사실 문화상품을 만들어 테스트 마켓을 거치게 하는 과정에서는 지역과 도시의 시차가 굳이 존재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와 발상의 전환이지, 반드시 대도시의 상업시장에서 첫 삽을 떠야만 할 근거나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에서 공연된 뮤지컬 <고스트>의 한 장면 |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음악을 만든 사람도 화제다. 80~90년대 애니 레녹스와 함께 듀엣으로 활동하며 ‘스윗 드림스(Sweet Dreams)’, ‘후스 댓 걸(Who’s that girl)’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유리스믹스의 남자멤버 데이브 스튜와트와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 알라니스 모리셋의 ‘잭드 리틀 필(Jagged Little Pill)’ 등 역시 수많은 히트곡들을 프로듀싱한 글렌 발라드가 공동으로 작곡을 맡았다. 물론 이들의 참여는 무대에 등장하는 음악이 극적 구조뿐 아니라 노래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얼거릴 수 있는 완성도를 지니게 하는 결정적 배경이 됐다.

문화내시경

영화의 재미가 2중의 합성 화면―그래서 자동차에 치이거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인물의 영혼이 자기 시신을 바라보며 경악하는 것과 같은―에서 출발했다면, 무대에서는 영상과 실사의 조화가 화제가 됐다. 2차원의 평면이었던 영상이 무대라는 입체공간에서 실감나게 재현된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 뮤지컬 작품은 막을 올리자마자 마니아들 사이에 금세 화제가 됐다. 물론 우리말 버전의 국내 무대에서도 화려한 무대효과는 고스란히 재연될 전망이다.
유명 외국 무비컬 작품의 국내 개막 소식은 우리식 활용에 대한 목마른 갈증도 유발시킨다. 이미 한류의 첨병으로 우리나라 영화들이 이룩한 성과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별나고 희귀한 사례들이 많다. 우리식 무비컬의 흥행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고스트’의 준비와 흥행이 좋은 참고자료로 활용됐으면 좋겠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