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베이비 붐 세대에 대한 유쾌한 풍자

Love, Love, Love. 연분홍빛 포스터 위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고, 실제 부부 사이인 남녀 배우가 등장해 연인과 부부, 이혼한 이후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이크 바틀렛 작, 이상우 연출의 <러브러브러브>는 얼핏 사랑을 주제로 한 연애와 결혼 이야기일 것 같은 인상을 강하게 준다. 하지만 실제로 이 작품은 사랑이야기라기보다는 ‘사랑’을 부르짖던 세대, 정확하게는 68혁명을 겪은 베이비 붐 세대에 대한 날카롭고 유쾌한 풍자에 가깝다.

연극<러브러브러브> | 명동예술극장 제공

제목인 ‘러브러브러브’는 주인공인 케네스와 산드라가 대학시절 열광하던 비틀즈의 노래 ‘All you need is love’의 후렴구에서 따온 문구다. 이 노래는 1막에서 이들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배경음악이자 그 시대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기호로 등장한다. 또 이후 격변하는 세월을 겪으면서도 늘 똑같이 ‘사랑’을 원하고 추구하는 케네스와 산드라, 나아가 이들 세대의 인생관을 대변하는 가사로도 읽힌다. 다만 여기서 이들이 평생 추구해온 ‘사랑’은 이타적이고 포용적인 사랑이라기보다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의미의 사랑에 가깝다. 그로 인해 이 작품의 제목은 묘하게 냉소적이고 역설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제목에 반복되는 세 번의 ‘러브’란 단어를 풀어내기라도 하듯, 작품은 3막으로 구성되어 각기 다른 인생의 막을 살아가는 케네스와 산드라 부부의 삶,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보여준다. 1막의 배경은 1967년 런던. 세계 최초 위성 생중계 방송에서 비틀즈가 ‘All you need is love’를 부르던 날, 형 헨리의 집에서 만난 동갑내기 옥스퍼드 대학생 케네스와 산드라는 함께 대마초를 피우고 춤을 추다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남다른 주관과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반전과 사랑과 평화의 기치를 내걸고 기존 질서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해방시키는 삶을 추구하던 68세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연극<러브러브러브> | 명동예술극장 제공

2막의 무대는 1990년대 런던 근교의 한 주택. 풍요롭고 여유로운 일상이 느껴지는 중산층 가정의 응접실이 펼쳐지고, 여기에 14살, 16살 아들딸을 둔 중년부부 케네스와 산드라가 등장한다. 좋은 직장과 편안한 주택, 예쁜 아이들까지 둔 이들의 인생은 얼핏 남부럽지 않게 성공한 삶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이들은 자신들이 꿈꾸던 삶은 잊은 채 일과 아이들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삶에 대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권태감에 지친 이들은 결국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기로 하고, 이혼을 결심한다.

그리고 3막이 되면 이제 은퇴 후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는 케네스와 산드라가 등장한다. 이혼 후에도 친구처럼 서로 만나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삶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불안정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30대 중반의 딸 로지가 등장해 자신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책임을 부모에게 돌리고, 그 대가로 자신에게 집을 한 채 사달라고 요구한다. 경제성장의 흐름을 타고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며 풍요롭게 살고 있는 부모세대와 상대적인 경제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현대의 청년 세대 간의 갈등이 날카롭고도 현실적으로 부각되는 장면이지만, 케네스와 산드라는 딸의 절규에 아랑곳하지 않고 비틀즈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사랑’을 노래할 뿐이다.

문화내시경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밖에 남은 게 없는 이들 세대의 자화상을 작가는 어떤 비판이나 옹호도 없이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극장을 나설 때면 <러브러브러브>라는 제목에 담긴 미묘한 아이러니가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4월 21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김주연<연극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