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와 연이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붕괴로 일본 동북부 후쿠시마 지역은 체르노빌 이후 최악으로 기록된 대참사를 겪었다. 통칭해서 ‘3·11’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전 세계적인 탈원전 바람을 몰고 왔다. 사고 발생 2년을 맞아 ‘후쿠시마’에 대한 책 세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돌베개), <후쿠시마 이후의 삶>(반비),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책공장더불어)이다.

2011년 3월 쓰나미가 휩쓸고 간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한 국도에 개 한 마리가 잔해를 배경으로 서 있다.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을 쓴 일본 사진작가 오오타 야스스케의 사진이다. | 책공장더불어 제공
남은 자의 기록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는 사고 이후에도 집을 떠나지 않고 재난 현장을 지킨 이의 기록이다. 주인공은 올해 일흔넷이 되는 전직 스페인 사상사 교수 사사키 다카시다. 그는 은퇴 후 고향인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 시에 귀향해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며 살고 있었다. 미나미소마는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25㎞ 떨어진 곳으로, 사고 직후 일본 정부는 이 지역을 ‘옥내대피’ 권역으로 설정했으나 주민 3만명 중 80%는 30㎞ 권역 밖이나 다른 현의 대피소로 떠났다. 저자를 비롯한 극소수의 주민만이 떠나지 않고 집을 지켰다.
![[문화]후쿠시마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https://img.khan.co.kr/newsmaker/1017/20130311_1007_54p_2.jpg)
책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사고 전날인 2011년 3월 10일부터 그해 6월까지 저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재난 이후 미나미소마 시의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한국어판에는 2011년 7월 14일부터 2012년 12월까지의 상황이 추가됐다.
저자는 자택에 남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자택농성’이라고 표현한다. 원전의 위험성을 방치한 정부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집에 머무른다는 뜻이다. 그는 “위험도가 별반 다르지 않은 아주 좁은 범위를 우왕좌왕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겠다”는 심정으로 잔류를 선택했다. 해설을 쓴 서경식 교수가 <후쿠시마 이후의 삶>에서 쓴 표현에 따르면, 이것은 “정치권력이나 관료의 지시에 의해 그동안 일상을 영위해온 곳에서 하루 아침에 ‘뿌리 뽑힘’당하는 것을 거부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저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일상과 사유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저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난 대응상황에 커다란 분노를 느낀다. 미나미소마 시는 옥내대피 권역으로 설정됐음에도 환자나 고령자를 30㎞ 권역 밖으로 이송했다. 그러나 피해지역의 특성에 맞춰 지역 복구에 힘을 기울이는 대신 피난 위주로만 짜인 행정기관의 대처는 2차 피해를 낳았다. 2012년 5월 일본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후쿠시마현 관내에서 피난으로 건강이 악화해 사망한 사람이 1622명이었는데, 그 중 미나미소마 주민이 282명으로 가장 많았다. 노인이나 환자를 무리하게 이송한 탓에 발생한 피해다.
저자의 분노는 개인의 실존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무책임한 국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재앙을 통해 그는 “우리는 얼마나 불안정한 존재인가, 예측할 수 없는 사태를 만나 한순간에 뿌리째 뽑혀버리는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동시에 이 재난을 초래한 원전사고는 “명백하게, 어떤 변명도 공허하게 들리는 분명한 인재(人災), 국가 에너지정책이 빚어낸 틀림없는 인재”라는 사실을 적시한다.
원전 유지나 확장을 추진하는 세력은 늘 원전의 안전성을 강변한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모르겠는가? 요컨대 머리 좋은 원전 설계자가 여기까지는 계산상 위험하지 않다, 여기까지는 이론상 안전하다 등의 더할 수 없이 엄밀한 계산을 기초로 원전을 만들었겠지만, 그런 계산상의 안전이나 허용범위 따위는 예상 밖의 자연의 위력 앞에 보기 좋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지식인들의 성찰
<후쿠시마 이후의 삶>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재일 조선인 칼럼니스트 서경식 교수(도쿄 게이자이대학), 위안부와 야스쿠니 신사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도쿄대 대학원)가 2011년 1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후쿠시마, 서울, 도쿄, 제주, 오키나와에서 총 5차례에 걸쳐 만나 나눈 좌담을 정리한 책이다. 사사키 다카시의 책이 기록과 개인적인 성찰의 혼합물이라면, 이 책은 날카로운 비판적 성찰이 중심을 이룬다.
![[문화]후쿠시마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https://img.khan.co.kr/newsmaker/1017/20130311_1007_55p_1.jpg)
일본은 ‘세계 유일의 피폭국’이다. 일본은 1971년 국회 결의를 통해 비핵3원칙(핵을 보유하지 않고, 만들지 않고, 반입하지도 않는다)을 천명했다. 그런 일본에서 왜 원전사고가 발생했을까. 후쿠시마가 고향인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그 배경으로 핵 보유에 대한 열망을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분 아래 원전 개발로 위장한 일본 보수 정치세력, 냉전 상황에서 소련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동맹국가에 핵개발 기술을 수출한 미국의 대외 전략, 전후 고도성장의 단물을 맛보며 피폭의 기억을 망각한 일본 국민들의 무관심을 지목한다. 원전 개발을 통해 이익을 나눠갖는 정치가, 관료, 경제계 등 이른바 ‘원전 마피아’(일본에서는 ‘원전 마을’이라고 표현)는 이러한 배경 위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들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일축하며 세력을 불린, 후쿠시마 재앙의 직접적 주범들이다.
문제는 ‘후쿠시마’ 이후에도 좁게는 일본, 넓게는 동아시아에서 ‘핵 없는 세상’에 대한 반성이 전면의 흐름으로 부상하지 못하고 국지화 또는 퇴행하는 징후들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에 따르면, 사고 직후 당시 간 나오토 총리가 피해지역에서 피난민들에게 매도를 당한 데 비해 천황 부부가 방문했을 때는 피난민들의 환대를 받았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이것이 태평양전쟁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방문한 천황이 당시 시민들의 환영을 받은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서경식 교수는 이를 “정부나 기업에 대한 분노가 천황제를 매개로 흡수되는 양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는데, 실제로 자민당은 정부에 긴급사태에 관한 권한을 주고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변경하며 일본의 투표권이나 공무담임권을 일본 국적 보유자에 한정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마련한 바 있다. 후쿠시마의 재앙이 핵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지 않고 일본 우경화의 빌미로 작용한 것이다. 한국도 사정이 좋지 않다. 한홍구 교수는 한국에서 “몇 년 사이에 핵 발전 문제가 전국 문제에서 동네 문제로 격하”되었다고 지적한다.
2012년 12월 22~23일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좌담은 우울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지난해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이 몰락하고 원전 추진 세력인 자민당이 승리했다. 한국에서도 원전 중단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보수세력이 대선에서 승리했다. 양국에서 탈원전 세력의 정치적 지분은 극도로 약해졌다.
절망적인 상황일수록 작지만 실천적인 노력들이 중요하다. 저자들은 시민들의 대항운동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는 데서 희망을 찾는다. 2012년 6월, 후쿠시마 현민 1300여명은 일본 원자력안전위원회 전 위원장과 도쿄전력 전 회장을 고발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시민들이 자유로운 토론 형식으로 정부와 전력회사의 도의적 책임을 묻는 ‘원전과 민중법정’이라는 이름의 행사도 2012년 한 해 동안 여섯 차례 열렸다.
버려진 동물들
![[문화]후쿠시마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https://img.khan.co.kr/newsmaker/1017/20130311_1007_55p_2.jpg)
사진작가 오오타 야스스케는 1980년대부터 아프가니스탄, 유고슬라비아 등 주로 분쟁지역 사진을 찍었다. 2011년 3월, 그는 “밀려들어오는 쓰나미의 영상을 보는데 등줄기가 얼어붙었다.” 얼마 후, 사람이 사라진 거리에서 허기진 개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인터넷 동영상을 보고 그는 후쿠시마 제1원전 20㎞ 이내의 위험지역으로 들어가 버려진 동물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집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은 그 기록이다.
사람은 사라지고 동물만이 남아 집과 거리를 지키고 있는 사진 속 풍경들은 고요하면서도 비참하다. 도처에 주인을 기다리는 동물의 고독과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널려 있다. 국도 옆의 텅빈 전자상가 앞의 넓은 주차장에는 차 대신 소들이 서 있다. 굶주린 개는 먹을 것을 주자 끊임없이 먹고 토하기를 반복한다. 굶주린 배에 갑작스럽게 음식을 받아들인 탓이다. 어느 축사에서는 죽은 소들 사이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소들이 오물에 휩싸인 채 굶주려 죽고 있다. 또 다른 축사에서는 겹겹이 쌓인 돼지 사체 사이로 살아남은 돼지들이 서로에게 기댄 채 버티고 있다. 2011년 5월 24일 일본 정부는 원전 20㎞ 이내 출입제한구역 안의 가축을 모두 살처분하겠다고 발표했다. 저자는 말한다. “미안하다. 죽을 힘을 다해 지킨 목숨을 이렇게 보낼 수밖에 없어서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