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뭘해도 의심? ‘달 착륙 조작설’ 공방 여전

아폴로 유인탐사 40년…미국 ‘물 확인’ 달 표면 로켓 충돌실험도 논란

아폴로호는 진정 달에 가지 않았을까. 지난 10월 9일 달 충돌 실험을 지휘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모펫필드의 미국항공우주국 아메스센터 앞에 마련된 야외행사장 스크린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로이터>

박수가 울려 퍼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연구원들은 서로를 격려했다. 밤을 새며 지켜보던 야외무대의 시민들도 휘파람을 불며 환호했다. 그러나 그렇게 열광적이진 않았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직원이나 시민 모두 ‘제때 박수칠 타이밍을 놓친’ 인상이었다.

나사(NASA)가 공식 발표한 로켓 켄타우르스의 달 표면 충돌시간은 10월9일 오전 4시31분(미국 태평양 시간 기준). 켄타우르스를 실어 나른 엘크로스가 다시 충돌한 것은 정확히 4분26초 후다. 나사는 실험이 성공적이었다고 발표했다. 엘크로스 프로젝트, 달 충돌 실험은 달에 물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획된 나사의 야심찬 계획이었다. 발사체가 달에 충돌한 뒤 피어오른 먼지를 분석, 수분을 감지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나사는 최종 분석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몇 주 걸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충돌 순간’은 다소 맥빠지게 보였다. 충돌먼지가 6km까지 치솟아 올랐다고 하지만 그 ‘장관’은 현장 중계에서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껏 고양된 나사와는 달리 유튜브 등에 중계된 영상에 달린 댓글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돈을 쏟아 부어 그 실험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의견도 상당수였다. 그리고 익숙한 의견인 조작설 주장도 여전했다. “나사는 크리에이터의 벽 때문에 충돌먼지가 보이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전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던 ‘벽’ 아닌가.”

옛 소련과 우주개발 우위경쟁 산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비롯해 한국의 주요 인터넷 게시판에도 3, 4년 전부터 끈질기게 올라오는 한 영상이 있다. ‘1969년에 있었던 달 착륙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다. 영상은 ‘달 표면에서 라이브 영상’이라는 자막과 함께 아폴로 착륙선에서 내리는 우주인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닐 암스트롱의 유명한 말. “이것은 작은 발자국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인류…”라는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천장에서 조명기구가 떨어진다. 달탐사 우주인은 욕을 하고, 숨어 있던 스태프들이 뛰어나온다.

이 동영상의 정체는 무엇일까. 동영상을 배포한 ‘달의 진실’이라는 웹사이트에는 정작 아무런 정보가 없다. 답은 엉뚱한 곳에서 나온다.

루머 판별 사이트인 스놉스닷컴의 지난 7월19일자 기사에 따르면 이 동영상은 ‘나사로부터 흘러나온 달 착륙 리허설 영상’이 아니다. 영국의 광고감독 애덤 스튜어트가 ‘달 착륙 음모론’ 주장들을 보고 2002년 봄에 영국 런던에서 만든 영상이다. 제작 과정까지 다 공개된 해프닝이지만 아직도 이 필름은 ‘달 착륙의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인터넷에 반복적으로 실리고 있다.

빌 케이싱이 1974년에 자비를 들여 출판한 <우리는 달에 가지 않았다> 책 표지. 달 착륙 음모설의 발단이 됐다.

‘달 착륙 음모설’의 역사는 오래됐다. 기원은 빌 케이싱이 자비를 들여 <우리는 결코 달에 가지 않았다>라는 책을 출판한 1974년. 아폴로 계획이 예산상 문제로 중단된 몇 년 후다. 그는 책에서 ▲나사는 사람을 달에 보낼 만한 기술이 없었다 ▲달에서 찍은 사진엔 하늘에 별이 안 보인다 ▲진공 상태에서 깃발이 펄럭이며 ▲달착륙선 밑에 엔진분사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등을 달에 가지 않았다는 근거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미국이 달 착륙을 조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케이싱이 보기엔 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 때문이다. 미국은 최초 인공위성인 스푸트닉 발사, 유인우주비행 등 우주경쟁에서 소련에 밀렸다. 그래서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것이다. 케이싱은 달 착륙 장면은 스튜디오에서 미리 연출해 둔 것일 뿐이라는 주장과 함께 더 경악할 만한 주장도 폈다. 2002년에 낸 개정판에서 그는 화재가 나 실패한 아폴로 1호와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승무원들은 ‘거대한 음모’를 유지하려는 세력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주장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국내에도 공중파를 통해 수차례 방영된 적 있는 피터 하이엄스 감독의 <캐프리콘 원>(1978)이 바로 그것이다. 이야기 얼개는 이렇다. 화성탐사 로켓은 순조롭게 발사됐다. 승무원들은 우주선에 타지 않고 다른 ‘스튜디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발사한 우주선이 폭발한 것이다. 암살 당할 위기에 있던 주인공은 탈출에 성공, 자신의 장례식장에 나타난다. 폭스TV가 2001년 제작한 다큐멘타리에도 케이싱의 주장은 그대로 반복된다.

첫 달착륙 녹화비디오 지워 파문 확산
의혹은 여러 차례 반박됐다. 미국과 소련이 우주경쟁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폴로가 달에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달에서 찍은 사진에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는 것은 ‘노출’ 문제이며, 진공상태에서도 깃발을 펄럭인다 등등. ‘나쁜 천문학’이라는 제목의 사이트를 운영하는 천문학자 필립 플레이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달 착륙 음모설’ 코너를 개설, 주장들을 세밀하게 반박하는 자료를 올려놨다. 2008년 8월, 디스커버리 채널의 인기프로그램인 <미스버스터>(mythbusters)는 달 착륙 음모설 검증 편을 방영했다. 달에 남겨진 발자국, 그리고 펄럭이는 깃발이 ‘진공상태’에서 가능한지 등에 대한 실험이었다. 결과는? 역시 발자국은 남고 깃발은 펄럭였다. 출연자들은 “미신(myth)은 타파(buster)되었다”고 선언했다.

달 착륙 조작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증거 자료들. 진공상태인데 깃발이 펄럭인다(1), 착륙 발판에 먼지가 앉지 않았다(2) 등의 주장이다. 유명한 발자국 사진에 대해서도 지구의 건조한 사막에서는 발자국이 남지 않은데 왜 달에는 발자국이 남느냐(3)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음모론 진영에서 보기엔 두 경우 모두 결정적인 ‘도덕적’ 약점이 있다. 홈페이지에 ‘달 착륙 음모설’을 반박하는 게시물을 올릴 당시 필립 플레이트는 나사의 고다르우주비행센터의 계약자로서 허블우주망원경을 사용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미스버스터 출연자들이 ‘진공상태’를 만들기 위해 도움을 받은 곳 역시 ‘나사’였다.

나사는 이전에도 ‘달 착륙 조작설’을 논박하는 데 예산을 편성했다가 비판이 일자 철회한 적이 있다. 지난 7월, 뒤늦게 밝혀진 나사의 ‘치명적인 실수’도 음모론 진영에 힘을 실어 주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예산이 모자라 과거의 녹화테이프를 ‘재활용’하면서 암스트롱이 달에 내리는 역사적 장면을 지운 것이다. 당시 외신은 “결혼식 비디오를 지우고 슈퍼볼 경기를 녹화한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나사는 전 세계를 뒤져 남아 있는 복사본 4개를 모아 디지털로 복원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음모론자들은 “달 착륙 영상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하자 ‘치명적 오류’를 숨기기 위해 벌인 작업”이라고 반박했다. 2001년에 방영돼 화제를 모은 폭스TV의 다큐멘터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한다. “이제 몇 년 있으면 일본의 달 탐사선이 달 표면을 찍을 것이다. 그러면 진짜로 우리가 달에 갔었는지 최종적으로 판명될 것이다.”

그리고 2008년 5월. 일본우주항공개발기구(JAXA)는 “일본의 달탐사 위성 ‘가구야’가 아폴로15호의 흔적을 발견했다”며 흐릿한 사진 몇 장을 내놓았다. JAXA는 “아폴로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 최초로 관찰된 아폴로 탐사 흔적”이라고 자평했다. 논쟁은 종지부를 찍은 것일까.

그런 것 같진 않다. 일본 측의 발표가 나온 며칠 후 러시아의 프라우다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일본의 가구야가 1971년에서 1972년 사이에 아폴로 15와 17호가 착륙한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했지만, 사진에서는 달 탐사 흔적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미국이 달에 갔다는 자그마한 힌트조차도 제시하지 못했다. 아폴로 15호가 지구에 돌아오기 위해 출발했다는 장소에 남겨진 먼지 자국을 제외하고는.” 위키피디아에 인용된 외신보도에 따르면 쿠바의 학교에서는 ‘달 착륙 음모설’을 공식적인 역사적 사실로 가르치고 있다.

논쟁은 오히려 더 커가는 양상이다. 검색사이트 구글에 ‘달 착륙은 거짓’이라는 제목을 넣고 검색하면 385만개의 내용이 나온다. ‘달 착륙 음모설’을 최초로 제기한 케이싱은 2005년에 세상을 떠났다. 추모사이트 등에서는 여전히 ‘진실을 폭로한 선구자’로 추앙하는 분위기다.

“음모론 발생하는 원인 공론화 필요”

아폴로 우주비행사 에드윈 애드린이 사다리를 내려오는 나사 사진. 달 착륙 조작설 주장자들은 왜 그림자가 진 쪽이 밝게 처리됐는지, 혹시 스튜디오 같은 데서 다른 조명이 있는 게 아닌지 등 의혹을 제기했다. 반박하는 측에서는 달 표면의 반사광이라고 주장한다.

어찌됐든 논란이 지속된 까닭은 아폴로계획 이후 현재까지 30년 넘도록 달 유인탐사는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음모론자 주장대로 아직 사람을 달에 실어 보낼 기술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나사 주변의 주장은 결국 예산 문제다. 미·소의 우주개발경쟁에서 아폴로계획으로 미국이 ‘승리’한 이후 달 탐험에 예산을 더 투여할 ‘정치적 이유’를 대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사일 충돌실험은 사실 2020년 이후 재개할 계획인 유인탐사의 연장선에서 진행한 것이다. 나사는 “달에 물이 있다면 달에 건설될 유인기지의 조건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학실험을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실험을 둘러싼 여론은 나사에 긍정적으로만 흘러가고 있진 않다.

달 착륙 조작설의 진위는 결국 규명될 수 있을까. 케이싱의 카운트 파트너로서 폭스TV의 해당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유명한 회의주의자 마이클 셔머는 방영 후 관련 인터넷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불만을 터뜨렸다. “케이싱 등 음모론자의 주장을 낱낱이 반박했지만 (폭스TV 측은) 명백한 편파 편집으로 제시한 반박을 의도적으로 빠뜨렸다.”

사회평론가 이철우 박사는 “음모론을 반박하기 힘든 것은 역설적으로 음모론이 항상 진실의 일부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체제우월성 선전 목적에서 냉전시대에 미·소가 경쟁적으로 우주탐사 경쟁을 벌인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달 착륙 조작설이 제시하는 ‘증거’를 훨씬 상회하는 압도적 반박자료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의혹’을 제기하는 음모론자들은 의혹의 근거에만 주목할 뿐 반박 증거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의혹들을 엮어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려는 ‘확증편향의 오류’가 음모론자들이 보이는 일반적 경향이라고 이 박사는 주장했다. 그는 “음모론은 결국 이론이라기보다 논박이 불가능한 신념에 가깝다”면서 “같은 주장이 일정한 주기로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언론 또는 인터넷이 검증하고 판별하는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