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드라마 꽃보다 남자 달콤함보다 ‘독’

현실과 동떨어진 부유층 자식들의 ‘탈선’… 청소년에게 황금만능주의 주입 우려

일본 가미오 요코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KBS 2TV <꽃보다 남자> (극본 윤지련·연출 전기상)의 인기가 뜨겁다. 올 1월 5일부터 방영, 월화극 시청률 1위를 차지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드라마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주연배우들을 향한 광고계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연기자가 사용한 옷·구두·휴대전화 등 각종 소품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드라마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연일 수많은 시청자 소감이 쇄도하고 있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가 분석한 이 드라마의 시청 연령대는 10대 여성(18.4%)이 가장 많고, 30대(15.3%)와 20대(12.7%)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만큼 문제점도 많이 노출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초상류층만 다니는 사립학교에 서민인 세탁소집 딸 금잔디(구혜선 분)가 전학가면서 꽃미남 그룹 F4(플라워 포)의 사랑과 우정을 얻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금잔디가 리더 구준표(이민호 분)의 눈에 띄어 단숨에 대한민국 1% 삶에 편입하고, 구준표와 F4의 또 다른 멤버 윤지후(김현중 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스토리가 이 드라마의 핵심 내용이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또는 ‘캔디’ 스토리인 셈이다.

문제의 근원은 드라마의 주무대가 학교고, 주인공은 고등학생이라는 점이다. 드라마 내용대로라면 F4는 온갖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면서도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문제아들이다. 일단 그들에게 한 번 찍히면 전교생에게 왕따를 포함한 처절한 응징을 당한다. 이를 견디지 못해 전학을 가는 것도 모자라 한 아이는 수많은 학생 앞에서 자살까지 시도한다. 그런데 학생들은 이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구경만 할 뿐 어느 누구도 만류하지 않는다.

교사도 없고, 정상적 어른도 없어
심지어 학생의 자살 소동이 빚어지는 상황에서도 교사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금잔디 역시 드라마 초반 구준표의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밀가루와 소화기 그리고 달걀 세례까지 받는다. 얼마 후에는 납치까지 돼 여관에서 옷이 벗겨진 채 사진이 찍힌다. F4는 명백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종용하는 심각한 탈선청소년들임에도 그저 잘생기고 돈 많은 집 자식이라는 이유로 모든 게 허용되는 ‘이상한’ 논리가 통용되고 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고급 외제승용차를 몰고, 고급 호텔과 고급 리조트를 출입하고, 평소 뭘 먹기에 ‘멸치’도 모르는 구준표가 금잔디의 하루 몸치장에만 1억 원이라는 거액을 썼다고 가볍게 말하는 장면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드라마 속 뭇 여학생과 달리 자존심을 지키고,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F4의 사고방식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이유로 오히려 사랑을 얻은 금잔디는 결과적으로 돈의 위력에 굴복한다.

학교서열화와 교육을 통한 계급 재생산을 정당화시키는 논리의 여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문제점은 교사를 포함해 정상적인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임에도 공부하는 학생이 없으니 가르치는 교사도 없다(수업 장면이 아예 없다). 금잔디의 부모는 딸이 부잣집 아들과 맺어지는 것을 최고의 미덕이자 성공이고 가문의 영광인 양 부추긴다. 심지어 미성년자인 딸이 남학생들과 외박을 해도 야단을 치기는커녕 격려한다. 이유는 단 하나, 딸이 어울리는 남자들이 대한민국 최고 상류층 자제들이라는 것이다. 금잔디의 부모는 딸의 친구인 구준표 앞에서 기꺼이 무릎까지 꿇는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주 시청연령인 10대 청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문화평론가 하재근씨(학벌없는 사회 사무처장)는 “물질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을 완비한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귀족에게 모든 아이가 굴종하는 설정은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힘을 가진 자의 전횡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끔 하고, 아이들 사이에 노골적인 배금주의와 1등 만능주의를 팽배하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서 “이 같은 하이틴용 막장드라마에 10대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현상은 사회양극화와 지나친 경쟁교육이 빚어낸 일종의 심리적 파탄의 결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하씨는 또 “이 드라마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자율형 사립고 확대 정책과 맞닿아 있다”면서 “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지금 이대로 진행되면 훗날 드라마 속 신화고와 같이 서민은 쳐다보지 못하는 귀족학교가 설립되면서 교육에서 귀족과 천민이 극명하게 갈리는 현상이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온갖 못된 짓을 해도 부자면 우상”
<꽃보다 남자>가 교육을 통한 계급의 재생산이 심한 한국의 현실을 한층 더 공고히 다지고 정당화하는 논리의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이 드라마는 기부금 입학제나 특목고, 고교등급화, 강남8학군 등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각종 교육정책을 연상케 한다”면서 “문제는 10대 청소년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빠지면서 우리 사회의 심각한 학교서열화와 교육에 의한 계급의 재생산을 무의식중에 비판 없이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또 “기본적으로 드라마는 표현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학교 내에서 계급 또는 신분 차이로 인해 벌어지는 집단적 따돌림을 비롯해 이 드라마의 과도한 설정과 묘사는 다분히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10대 청소년들이 이 드라마에 빠지는 것은 드라마의 내용이 청소년들의 판타지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며 “고급 승용차를 몰거나 외국의 섬을 통째로 빌리거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굉장히 유치한 방식으로 여자를 유혹하거나 하는 드라마의 내용을 어른들은 마치 만화를 보듯이 시청하지만 아이들은 드라마의 이야기가 곧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며 본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성인은 이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반면 청소년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잘 못 느끼기 때문에 이 드라마의 내용을 현실에서 가능한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심 교수는 이 드라마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 교수는 “최고 부자라는 이유로 온갖 못된 짓을 일삼아도 친구들 사이에서 우상이 되고,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도 얻는 드라마 주인공 F4는 10대 청소년들이 동일시하면 안 되는 최악의 모델”이라며 “드라마 초기엔 돈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꿋꿋한 태도를 보였던 여주인공도 막상 애정관계에 있어서는 두 남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부모나 주변사람들 때문에 흔들리면서 주체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결코 좋은 모델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거나 “10대 청소년들도 분별력은 있다”며 드라마에 대한 지나친 분석과 비판을 경계하는 시선도 공존한다. 하지만 ‘달콤한’ 드라마가 서서히 퍼뜨리는 치명적인 ‘독’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대중문화가 사회와 사람에 미치는 영향이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결코 지나치지 않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