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파 검증하는 우주등대 ‘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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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서는 매우 빨리 회전하면서 전파를 내 규칙적으로 깜박이는 ‘우주등대’ 다. 커다랗게 부푼 짝별에서 물질을 빨아들여 1초에 1000번쯤 깜박이는 ‘밀리초 펄서’ 가 탄생하는 모습. <미국항공우주국>

펄서는 매우 빨리 회전하면서 전파를 내 규칙적으로 깜박이는 ‘우주등대’ 다. 커다랗게 부푼 짝별에서 물질을 빨아들여 1초에 1000번쯤 깜박이는 ‘밀리초 펄서’ 가 탄생하는 모습. <미국항공우주국>

‘띠띠띠….’
우주에서 약한 전파가 마치 맥박처럼 1.34초마다 한 번씩 규칙적으로 오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67년 우주에서 오는 전파신호가 당시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생이었던 조슬린 벨 버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가 ‘펄서(pulsar)’라고 불리는 새로운 천체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매우 빠르게 회전하면서 전파를 내는 펄서는 우주등대처럼 규칙적으로 깜박이는데, 이 전파신호는 지구에서 맥박 같은 펄스로 관측된다. 발견 초기엔 외계인이 보내는 신호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 펄서는 양자역학과 상대론을 연구하는 우주실험실로 주목받고 있다. 발견 40주년을 맞아 펄서에 얽힌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작은 초록 외계인’ 아니죠

1967년 당시 앤서니 휴이시 교수의 지도를 받던 조슬린 벨 버넬은 원래 퀘이사(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에서 나오는 미약한 전파를 관측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오는 우주 전파는 그들이 예상한 결과가 아니었다. 휴이시 교수는 버넬이 2년간 직접 만든 전파망원경에 문제가 있어 이상한 신호가 잡히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했다. 지난 8월 중순 캐나다 맥길대에서 열린 ‘펄서 발견 40주년 기념학술회의’에 참석한 버넬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그때 당시에는 박사학위도 못 받고 쫓겨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전파망원경에서 생긴 잡음이 아니었다. 실험실 근처에 있던, 골이 파인 함석 지붕 건물에서 반사한 전파도 아니었고 인공위성이나 다른 실험실에서 오는 신호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 새로운 우주신호의 정체에 대해 고민했다. 일단 정체불명의 신호에 LGM이란 이름을 붙였다. 외계인이 보내는 신호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작은 초록 외계인(Little Green Man)’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다. 첫 번째 LGM을 발견한 지 얼마 안 돼 우주의 또 다른 곳에서 1.25초에 한 번씩 오는 전파신호를 찾아냈다. 두 번째 LGM을 만났을 때야 비로소 휴이시 교수와 버넬은 새로운 천체(펄서)를 발견했다고 확신했다. 펄서를 발견한 공로로 휴이시 교수는 197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지만 정작 최초의 펄서 발견자인 버넬은 받지 못했다. 버넬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노벨상 선정위원회로부터 외면당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지도교수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버넬이 펄서를 발견한 것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기자에게 받은 질문은 남자 친구가 있느냐는 따위였다.

1000분의 1초마다 깜박이는 우주등대

쌍성 펄서(중성자별)가 충돌할 때 나오는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 주 핸포드에 설치한 ‘중력파 관측소(LIGO)’.

쌍성 펄서(중성자별)가 충돌할 때 나오는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 주 핸포드에 설치한 ‘중력파 관측소(LIGO)’.

펄서가 깜박이는 원리는 무엇일까. 천문학자들은 펄서의 자기장, 전자에서 나오는 빛, 그리고 펄서의 빠른 회전으로 설명한다. 펄서에서는 강력한 자기장에 사로잡혀 거의 광속으로 움직이는 전자가 자기장 축 방향으로 빛(전파)을 집중시켜 뿜어내고, 자기장 축이 회전축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다가 지구를 향할 때마다 펄서의 빛이 보인다는 내용이다. 결국 펄서는 회전(자전)속도에 따라 등대처럼 깜박인다.

버넬이 최초로 발견한 펄서는 1.34초마다 한 바퀴씩 자전했다. 이렇게 빠르게 회전하는 물체가 원심력에 따라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으려면 천체의 밀도가 매우 높아야 한다. 예를 들어 주기가 0.033초인 게자리 펄서는 밀도가 1300억g/㎤보다 큰데, 이 밀도는 손가락 마디 하나에 10만t의 질량을 넣은 것보다 큰 것이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펄서가 굉장히 단단하게 뭉친 고밀도 천체인 중성자별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거운 별은 최후에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고 난 뒤 중성자별을 남긴다. 중성자별은 지름이 10~20㎞이고 질량이 태양의 1.4~2.1배다. 즉 중성자별의 밀도는 원자핵의 밀도와 같은데, 이는 엄청난 질량이 서울만한 공간에 밀집해 있는 정도다. 결국 펄서는 빠르게 회전하는 중성자별이다.

1982년 미국의 천문학자들은 보통 펄서보다 1000배나 빠르게 자전하는 새로운 펄서를 발견했다. 자전주기가 1.6ms(밀리초, 1ms=1000분의 1초)인 펄서를 찾아낸 것. 자전주기가 0.001~0.01초인 이런 펄서를 ‘밀리초 펄서’라고 한다. 밀리초 펄서는 지금까지 110개 정도 발견된 데 비해 자전주기가 0.1~10초인 보통 펄서는 약 1500개가 발견됐다. 보통 펄서의 수명은 100만~1000만 년인 반면, 밀리초 펄서의 수명은 10억 년 정도로 알려졌다. 또 자기장이 강한 천체인 마그네타(magnetar)도 펄서의 일종이다. 마그네타가 달과 같은 거리에 있다면 지구상의 신용카드가 전부 무용지물이 될 정도다. 2004년 12월에는 ‘SGR 1806-20’이란 마그네타가 태양이 10만 년간 내뿜는 에너지보다 많은 양을 0.1초 만에 방출해 화제가 됐다. 한국천문연구원 안상현 박사는 “이런 폭발이 10광년 이내의 거리에서 발생한다면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행히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마그네타는 지구에서 1만3000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잇따른 노벨상 수상의 산실

펄서의 발견자 조슬린 벨 버넬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 시절 우주전파신호를 기록한 종이를 하루에 30m씩 분석했다. <조슬린 벨 버넬>

펄서의 발견자 조슬린 벨 버넬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 시절 우주전파신호를 기록한 종이를 하루에 30m씩 분석했다. <조슬린 벨 버넬>

1993년 노벨물리학상도 펄서 관련 연구에 돌아갔다.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조지프 테일러 박사와 러셀 헐스 박사가 ‘쌍성 펄서’라는 새로운 유형을 발견해 수상했다. 두 사람은 20년간 관측한 결과 두 펄서가 점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는데, 그 원인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에 따라 중력파를 방출해 궤도 에너지를 잃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질량을 가진 물체가 움직일 때 나오는 중력파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부산대 물리학과 이창환 교수는 “쌍성 펄서는 결국 충돌해 블랙홀이 되는데, 이 과정에서 강력한 중력파를 방출한다”라며 “미국 워싱턴 주 핸포드에 설치한 ‘중력파 관측소(LIGO)’에서는 이때 나오는 중력파를 검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중력파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직접 측정된 적이 없는데, 펄서가 중력파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또 중성자별 내부는 지상에서 절대 구현할 수 없는 고밀도 상태라 양자역학의 고밀도 상태를 연구할 수 있는 우주 최고의 실험실이다. 이 교수는 “중성자별 중심부는 원자핵의 밀도보다 3~4배 높아 쿼크라는 소립자로 구성된다”며 “업(up) 쿼크와 다운(down) 쿼크 외에 스트레인지(strange) 쿼크를 포함하는지가 최근 이슈”라고 설명했다.

0.001~10초마다 한 번씩 우주 여기저기서 맥박처럼 규칙적인 펄서 신호가 지구를 찾아온다. 발견 초기엔 ‘작은 초록 외계인’으로 오해받기도 한 펄서는 이제 현대물리학의 양대 산맥인 양자역학과 상대론을 검증하는 우주실험실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이충환〈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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