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담은, 얇지만 깊은 ‘주간지’[주간경향 창간 30주년 기획]

주간경향 기자가 본 주간지의 현실과 미래

주간경향이 만 서른 살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아직 불안불안한 청춘이다. 성년을 한참 넘긴 어른임에도 스스로는 여전히 어리다고 느낄 나이다. 중장년으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하는 현시점, 답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주간지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더 많은 독자와 함께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앞으로 30년’을 위한 질문들이다. 일간지에서 주간지로 옮겨온 지 이제 만 1년을 바라보는, 마침 만 30세 동갑내기인 기자의 눈으로 더 넓고 깊은 바다로 나아가는 주간경향의 미래를 그려본다.

매주 발행하는 주간경향의 표지. 그 주에 가장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다. / 김서영 기자

표지를 잡아라

영어에 ‘표지만으로 책을 판단하지 말라(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는 격언이 있다. 겉보기만으로 속을 짐작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참 좋은 말이지만, 주간지 세상에 적용하긴 어렵다.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건 현명치 못한 일이지만 주간지를 표지(커버)만 보고 집어드는 건 그런대로 타당한 일이다. 표지 이야기(커버스토리)를 무엇으로 내세우느냐가 주간지의 ‘알파와 오메가’까진 아니더라도 ‘알파에서 오미크론’쯤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매주 금요일 아이템 회의에서는 다음 호 커버를 무엇으로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커버가 정해지면 거기에 맞물리는 기삿거리를 이어붙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독자나 연구자들도 시사주간지에서 표지를 가장 주목하는 듯하다. ‘주간지’라는 키워드로 학술논문 검색을 하면 표지(커버)의 상징성을 분석한 연구들이 나온다. 이런 연구들은 대체로 주간지의 ‘얼굴’로서 표지가 가지는 중요도에 의의를 부여해 시사 잡지가 어떤 대상을 어떤 문구와 함께 어떤 구도로 배치했는지를 평가한다. 실무를 하는 입장에서 표지 사진과 문구, 폰트, 색감을 결정하는 과정이 전부 심오한 정치적·사회적 의사결정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의외로 심미적인 관점도 크게 고려한다), 미디어로서 주간지의 가치를 조명해준 연구를 보면 감사하고 반갑다.

시사주간지 표지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인물은 아마도 대통령일 것이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 결정은 화제성, 이슈의 폭발성, 중요성 등을 갖출 가능성이 크다. 즉 대통령을 표지로 내세우면 ‘본전’은 할 수 있는 셈이다. 한편으론 대통령을 너무 자주 표지에 싣는 건 아닐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참신함이 떨어지고 정치 외 이슈가 자칫 뒤로 밀릴 수도 있어서다. 이는 ‘1면 톱’을 매일 골라야 하는 일간지에서도 자주 나오는 자성이다. 분명한 건 아직까지 한국에서 대통령은 단연 ‘핫’한 아이돌이고, 대통령 이상의 주목도를 만들어낼 소재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20대 대선이 수요일인 건 참 다행이었다. 주간경향은 매주 목요일에 마감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든지 늦어도 목요일 오후까진 가닥이 잡혀야 그 주 제작에 반영할 수 있다. 지난 3월 9일 수요일 늦은 밤 승패 윤곽이 나오고 다음날 확정됨에 따라 제1469호의 표지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으로 갈 수 있었다.

지난해 6월 말 주간지로 옮겨올 때 주변에서 “긴 기사를 마음껏 써보라”는 격려를 많이 받았다. 애써 취재한 내용을 지면상 한계로 아쉽게 덜어냈던 경험은 일간지 기자라면 누구나 겪는다. 그러니 주간지에 간다고 하면 분량을 넉넉히 받겠다, 더 길게 쓸 수 있어서 좋겠다는 기대를 품는다. 여기에는 기사의 길이가 확보된다면 결과물의 품질을 향상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렸다. 이른바 ‘롱 폼(long-form·분량이 긴 형태의) 저널리즘’에 대한 희망이자 낙관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문제는 길이가 아니라 깊이

긴 기사를 원없이 써보고 나서야 문제는 길이가 아니라 깊이란 걸 깨달았다. ‘롱 폼’은 길게만 쓰는 저널리즘을 의미하진 않는다. 종이로 발행하는 매체(프린트 미디어)는 전부 ‘나무야 미안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업보를 지고 있다. 굳이 기사까지 써가며 하나 마나 한 소리를 길게 하는 건 그 자체로 공해다. 결국 ‘탁월한 관점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풀어내느냐’는 저널리즘의 본령으로 회귀한다. 길게 쓰는 건 그다음 얘기다. ‘파랑새’를 찾아 주간지로 왔건만 어쩐지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다.

또 하나의 복병은 ‘타이밍’이다. 주간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무엇과 다른가 하면, 일반 독자들이 뉴스를 소비하고 인식하는 범위와 다르다. 주간지는 일주일 단위로 마감하기 때문에 이미 매일매일 그날 벌어진 뉴스를 다 접했던 독자 입장에서는 주간지 기사가 진부할 수 있다. 뉴스 소비 주기가 점점 빨라지는 시대에 일주일이란 시간은 너무 길다. 또한 뭐가 됐든지 깊이 파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그러다 보면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예를 들어 대통령 탄핵 정국이 다 지나간 다음에 탄핵에 관한 심층 기획기사를 써봤자 아무도 읽지 않을 공산이 크다. 열차 사고를 다룬 기사는 사고가 난 직후에 가장 많이 읽힌다. 그래서 타이밍, 어려운 말로 하면 ‘시의성’이 주간지의 딜레마다.

시의성과 깊이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기사는 어떻게 해야 쓸 수 있나. 모르겠다. 사실 다른 기자들은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건데 나만 진짜로 모르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종종 엄습한다. 일주일치 고민을 하나의 기사, 한 번의 호흡으로 풀어내는 일도 난관이다. 주간지에 오고 나서 소설 작법서를 꽤 찾아 읽었다. 긴 글을 술술 읽히게끔 쓰는 능력을 ‘꽁으로’ 가질 순 없으니 작가들의 지혜를 빌어보고자 했다. 이처럼 나름 분투하는 와중에도, 현상이 아니라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기사가 훌륭한 기사라고 믿는다. 착실하게 ‘레벨업’을 해나가다 보면 부끄럽지 않은 기사 한두꼭지는 남길 수 있길 바라며.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더 깊게 다이빙하기

사실 주간지에 처음 와서 한 생각은 ‘이거 다 일간지에서도 하는 것 아닌가’였다. 일간지 물이 덜 빠져 그런 것만은 아니고, 직접 본 현실이 그러했다. 주간지는 스트레이트 기사를 쓸 일이 별로 없다. 바꿔 말하면 주간지에서 쓰는 건 거의 다 기획기사다. 요즘은 일간지도 기획기사를 충분히 많이 쓴다. 탁탁 순발력 있게 치고 나가는 기획기사는 고정적인 출입처를 가지고 있는 일간지 기자가 더 유리한 측면도 있다. 앞서 예로 든 열차 사고를 다시 보자면, ‘사고 원인은 무엇이고 어떤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한지’까지는 일간지가 충분히 소화한다. 주간지로선 피라냐 떼가 이미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앙상한 뼈다귀만 갖게 되는 모양새다.

지금 주간경향에 있는 기자들부터가 일간지에 있을 때 이미 주기적으로 기획기사를 꾸린 경험이 많다. 경향신문만 보더라도 1946년 4개면으로 시작해 32개면까지 점점 발행면수를 늘려왔다. 늘어난 지면을 전부 스트레이트 기사로만 채울 순 없다. 이는 곧 일간지가 소화하는 기획기사도 그만큼 많아졌다고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통신사와 온라인매체도 종종 훌륭한 기획기사를 선보인다. 종합하면, 주간지가 전통적으로 강점을 내보였던 영역이 점점 침식되고 있다. 정도의 차이일 뿐 모든 주간지의 고민이다.

주간지의 운명을 가늠할 중요한 질문이 바로 이 맥락에서 제기된다. 주간지의 경쟁 상대는 일간지인가? 주간지는 어떤 기사를 어떻게 제공해야 하는가? 이제 창간 30주년을 맞은 주간경향에 ‘앞으로 30년’은 어떤 얼굴로 도래할 것인가. 기실 오래된 고민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2006년 ‘뉴스 잡지의 미래’란 보고서에서 ‘타임’, ‘뉴스위크’ 같은 유명 시사주간지도 매출과 발행부수가 줄었다고 짚었다. 자연히 인력 감축도 뒤따랐다. 한국 시사주간지 시장이 체감하는 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 30년’을 논하기엔 현재 딛고 선 지반 자체가 너무 흔들리고 있다. 한창 푸르른 서른 살의 청춘이건만 앞으로의 희망보다 과거의 영광이 더 짙다.

주간지 기자라면 저마다의 각오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리라. 부끄럽지만 나의 모토는 ‘더 깊은 호흡으로 세상에 다이빙하기’다. 아직 기자가, 기사가 가닿지 못한 심해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독자가 있으리라 믿는다. 전체 바다 중 우리가 아는 영역은 극히 일부라고 하듯, 저널리즘이 그동안 도달한 영역도 어쩌면 지극히 협소할지 모른다. 아직 깊은 호흡의 바다에 머무는 이야기야말로 주간지 기자만이 낚을 수 있는 월척이다.

누가 뭐라 해도 시사주간지는 ‘세상을 담은 가장 얇은 책’이다. 돌아가는 일을 알고 싶을 때, 하도 스마트폰만 보다 보니 이제 긴 글을 읽는 능력조차 퇴화한 것 같을 때, 복잡한 이슈를 누가 정리해준 걸 보고 싶을 때, 흐름을 짚어주는 기사가 필요할 때, 여러 분야 전문가의 견해를 보고 싶을 때 주간지만 한 대안이 없다. 심지어 아메리카노 한잔보다 싼 가격이다. 그러니 이번 주말, 주간지를 집어들어 펼쳐보면 어떨까.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