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프리즘]지적장애인 수사, 신뢰관계인 동석해야

신뢰관계인은 조사받는 사람의 배우자, 형제자매, 가족, 동거인, 고용주 등 그 사람의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은 2013년 개봉한 이환경 감독의 코미디 영화이다. /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월드

영화 <7번방의 선물>에는 지적장애인인 딸 바보 아빠가 나온다. 코미디 영화지만 그 내용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주인공이 경찰의 강압수사로 인해 거짓 자백을 하고 구속되었다가 결국 사형당하기 때문이다. 영화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실제로도 수사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지적장애인이 많다. 대부분 지적장애인들은 경찰서 같은 낯선 환경에서 위축되기 쉬운 데다, 그들에게 경찰이 하는 말은 어려운 편이다. 더욱이 지적장애인들은 묻는 말에 꼭 답하려는 경향이 강해서, 경찰이 묻는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답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피해를 제대로 진술하지 못하기도 한다.

지적장애인의 이런 특성 때문에 수사 과정에서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수단이 필요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신뢰관계인 동석’이다. 형사소송법 제244조의 5, 제221조, 제163조의 2에서는 수사기관이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사람을 조사할 때에는 그 사람과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을 동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신뢰관계인은 조사받는 사람의 배우자, 형제자매, 가족, 동거인, 고용주 등 그 사람의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신뢰관계인 동석은 단지 조사받는 사람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는 데에도 필요하다. 특히 장기간 심리적으로 억압된 상태에 있는 지적장애인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지시에 따라 쉽게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염전노예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도 신뢰관계인 동석이 쟁점이 된 사례가 있었다. 2011년 완도경찰서 경찰과 광주지방고용노동청 목포지청 근로감독관은 지적장애인인 피해자를 조사하면서, 피해자와 가해자인 염전주를 분리하지 않고 함께 소환한 다음 같은 장소에서 조사했다. 특히 피해자를 조사하면서 신뢰관계인을 동석시키지 않았다. 피해자를 두고 가해자는 “처음부터 정상인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피해자의 아버지로부터 피해자의 양육을 위탁하며 노임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을 정도였다. 피해자는 말하는 내용과 태도에서 지적장애가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2011년 피해자는 신뢰관계인 동석 없이 완도경찰서에서 조사받으면서 “돈이 뭔지도 몰랐다.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글도 모르는데 뭔 돈이 필요하냐. 돈이 있어도 쓸 줄 모르고 사용할 데도 없다”고 진술했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 목포지청에서는 “자신은 먹고 자고 사는 것이 우선이다. 돈도 필요 없다. 먹고 자는 것에 만족한다”라고 진술했다. 이런 진술 때문에 당시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염전노예 사건이 불거진 뒤 피해자는 2015년 신뢰관계인의 도움을 받아 다시 조사를 받았다. 이 때 피해자는 “염전주가 자신을 폭행하거나 욕을 하는 등 강제로 염전 일을 시켰다”고 진술했고, 가해자는 형사처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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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경찰과 근로감독관이 피해자의 상태를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신뢰관계인 동석 없이 조사한 것은 법령에 따라 ‘장애인 피해자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의 눈높이에 맞춰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며, 이는 ‘법령에 규정된 기본적인 수사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3000만원의 위자료를 인정했다. 피해자는 2011년에 염전에서 구출됐다. 만약 염전노예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지 않았다면 피해자는 아직까지 염전에서 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애인의 눈높이에 맞는 수사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

<김재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