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프리즘]영화관은 화면해설과 자막 제공할 의무

영화관에서 보조기기를 구비한다고 하여 다 된 것은 아니다. 보조기기에서 활용할 수 있는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작사나 배급사가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예술이다. 한국인의 1인당 평균 영화 관람 편수는 4편이 넘고,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관이 아니라 집에서 영화를 본다. 경찰이 범인을 추격하는 장면, 주인공이 상대방을 바라보는 장면, 절묘한 표정 연기 등은 소리만으로는 알 수 없다. 이런 장면이 나오면 영화를 같이 보는 사람에게 묻곤 한다. 설명을 들으면 그나마 영화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영화관에서는 물어볼 수 없기에 집에서 보는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자막이 제공되는 스마트안경을 쓰고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 이재덕 기자

시각장애인에게 소리로 전달할 수 없는 내용을 설명하는 것을 화면해설이라고 한다. 화면해설이 있으면 나 같은 시각장애인도 다른 사람에게 묻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다. 또 영화를 보기 어려운 사람들로 청각장애인이 있다. 청각장애인들은 대사나 소리 등을 표현한 자막이 있어야 영화를 볼 수 있다. 시·청각장애인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공하는 영화를 무장애 영화, 배리어프리 영화라고 한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에서는 한 달에 한 편 정도 무장애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화면해설이 스피커로 나오고 화면에 자막이 있다 보니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무장애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관에서는 시간과 상영관을 정해서 무장애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관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시간대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시·청각장애인이 영화관에서 원하는 영화를 보지 못하고 있다.

시·청각장애인이 원하는 영화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극장에서 볼 수 있을까? 보조기기가 발전하면서 몇몇 나라에서는 이를 실현하고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스마트안경이다. 자막이 없는 일반 영화가 상영되면서 장면에 맞추어 이 안경에 자막이 나온다. 청각장애인은 이 안경을 쓰면 일반 영화를 자막과 함께 볼 수 있다. 자막은 영화관의 스크린에 맺힌 것처럼 보여서 불편함이 적다. 또한 자막은 안경에만 나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데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시각장애인들은 이 안경에 이어폰을 꽂아 화면해설을 들을 수 있다. 미국의 리걸 시네마(Regal Cinema)는 영화관을 찾은 시·청각장애인에게 이 안경을 제공하고 있다. 휴대폰 앱을 활용한 방법도 있다. 영화가 시작하고 휴대폰 앱을 실행시키면, 휴대폰에서 장면에 맞추어 자막이 나오거나 화면해설이 나오는 방식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이 방법을 이용해 무장애 영화를 상영해 오고 있다.

그럼 영화관에서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공할 의무가 있을까? 장애인 단체에서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를 상대로 시·청각장애인에게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공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영화관이 시·청각장애인에게 화면해설이나 자막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는 것이었다. 법원은 장애인 단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CGV 등에게 제작사 또는 배급사 등으로부터 자막과 화면해설 파일을 받은 영화에 대해 시각장애인 원고들에게는 화면해설, 청각장애인 원고들에게는 자막을 제공하라고 판결하였다.

법률 프리즘

영화관에서 보조기기를 구비한다고 하여 다 된 것은 아니다. 보조기기에서 활용할 수 있는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작사나 배급사가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이들에게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작하도록 강제하는 법은 없고, 제작해도 이를 상영할 보조기기가 없다 보니 화면해설과 자막을 만드는 제작사나 배급사는 적은 편이다. 무장애 영화가 늘어나면 시·청각장애인이 지금보다 자주 영화관을 찾을 것이다. 새로운 시장인 셈이다. 시·청각장애인을 고객으로 파악하고 이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이려는 제작사, 배급사, 영화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김재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