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의 인물탐구]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이장희 “4·27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시급하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판문점 선언은 동북아 국제질서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4·27 판문점 선언 이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한·미, 한·러 정상회담과 북·중, 북·러 정상회담 등이 이어졌다. 1972년 박정희·김일성의 7·4 남북공동성명에서는 ‘통일은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한다’고 합의했지만 한반도 분단문제는 국제문제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입증한 것이다.

결의대회와 범국민 서명운동 추진

여기에 더해 분단문제는 감성·낭만적인 접근방식이어서는 안되며, 그렇다고 국내 보수세력의 ‘억지’도 아닌, 치밀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언론에 나와 북한·통일문제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을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국제법상 분단문제와 동북아 구도에서 통일 로드맵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제법을 전공하고 통일문제에 오래 천착한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68)의 고언은 그래서 중요하다.

-7월 23일은 휴전협정 65주년이다.

“1953년 휴전협정은 물리적 전투행위만 멈춘 것이다. 국제법적으로 종전은 평화협정을 맺어야 끝난다. 휴전협정 4조 60항에는 협정 체결 후 3개월 내에 고위 정치회담에서 외국 군대 철수 등과 함께 평화협정을 체결하도록 했지만 정치협상을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현 휴전협정에는 대한민국이 서명 당사자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전선언·평화협정 주체가 아니라는 일부의 주장도 있다.

“간혹 북이 이런 주장을 했지만 일관되지 않았다. 1991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 제5조에 ‘남과 북은 공고한 평화체제를 만들 때까지 현 정전체제를 유지한다’고 합의했고, 이후 10·4 정상회담 등에서 재확인하고 있다. 휴전협정 서명 당사자와 평화협정 당사자가 국제법적으로 반드시 같을 이유도 없다. 휴전협정은 남북이 실질적 당사자이고, 미국과 중국은 협조적 당사자다. 불가침협정은 남이 하고, 평화협정은 남북과 미국·중국이 같이 할 수 있다.”

-국제법적으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절차는 어떻게 되나.

“서로 ‘적’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적대관계 종식이 첫 단계다. 두 번째는 불가침 약속, 세 번째가 종전선언이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평화협정을 통해 외교관계 정상화, 즉 국교 수립이 이뤄져야 한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전쟁의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왔다’는 것은 적대관계에서 종전까지 포함된 선언이다. 국제법적으로 두 법인체 간 효력은 발휘됐다. 이것이 실제 이행되려면 남북이 서로의 국내법도 바꿔야 한다. 그래서 우선 국회의 비준이 필요하다.”

정부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는 4·27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국회 비준 촉구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과거 남북기본합의서와 6·15 공동선언 및 10·4 선언 등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만들어진 남북 정상 간의 선언과 약속이 정권의 변화에 따라 지켜지지 않고 부침이 있었다”면서 4·27 선언의 국회 비준을 추진했다. 그러나 4·27 판문점 선언은 야당의 반대로 비준은 물론 지지결의안 채택마저 무산됐다. 비준추진위원회는 7월 27일 다시 결의대회와 범국민 서명운동에 들어간다.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이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4·27 선언은 대통령 통치행위로 대통령령 정도의 효력을 가지고 있다. 국회에서 비준을 해야 법률적 효력을 갖는다. 그래야 남북이 서로 적대적인 국내 법규를 정비할 수 있다. 우리는 북을 적으로 보는 국가보안법 등을, 북도 우리에 대한 적대적 법규를 개정·폐기해야 한다. 4·27 선언이 국회 비준을 받으면 국가보안법에 대한 위헌성이 제기될 것이다. 국가보안법도 법률이고, 남북의 4·27 선언도 법률이기 때문에 두 법률이 충돌하면 헌법재판소에서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신법 우선 원칙에 의해 국가보안법은 무력화될 것이다.”

-평화협정 이후 한반도 문제는 국제적으로 어떻게 바뀌게 되나.

“6·25는 전승국이나 패전국이 없어 평화협정은 일반적 국제법과 다르다. 국제법적 관점, 군사적 관점, 국제정치적 관점 3개로 볼 수 있다. 우선 국제법적 관점에서 평화의정서 등을 통해 전쟁이 명백히 끝났다는 것이 명시돼야 한다. 군사적인 문제로 휴전협정에 군사정전위원회, 군사분계선(MDL), 중립국 감시위원회가 있다. 군사정전위원회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기로 이미 북과 합의했다. MDL은 불가침선으로 명칭만 바꾸면 된다. 국경선이라면 영원한 분단이 되니까. 중립국감시위원회는 한반도 평화를 담보하는 미국·중국 정도가 참여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국제정치적으로 이를 보장할 다자안보는 여기에 러시아와 일본이 포함되는 6자간에 이뤄지면 좋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200편이 넘는 논문과 110권의 저서를 이 연구실에서 이뤄냈다.

-한반도 문제에 너무 많은 외국이 개입하면 복잡해지지 않을까.

“기자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 이 문제는 자주성을 강조하면 보장성이 약해지고, 보장성을 강조하면 자주성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남북이 사이가 좋을 때도 있지만 나쁠 수도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 동북아 다자기구가 신뢰를 준다.”

우리는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이를 보완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만들었다. 평화공존-교류협력-남북연합-통일 절차의 이 통일방안은 대한민국 공식 통일방안이며, 심지어 박근혜 정권도 이에 동의했다. 이런 기조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6·15 남북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의 10·4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평화공존-교류협력 원칙을 깨고 ‘흡수통일’을 추진하다 탄핵됐다.

“평화협정과 유엔사 해체는 다른 문제”

특히 이명박·박근혜 시절에는 근거도 없는 휴전협정·국제법 이론이 난무했다. 북한이 서해 NLL을 넘어온 것을 정전협정 위반, 영해침범이라고 주장한 것이나, 노무현·김정일 회담에서 NLL을 거론한 것을 ‘영토를 훼손했다’고 ‘정치공세’를 편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휴전협정 어디에도 NLL이라는 단어가 없다. 이 교수는 “NLL은 6·25때 이승만 대통령이 주장한 북진통일을 막으려 한 것”이라며 “NLL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제10조, 제11조에 처음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실을 처음 밝힌 이 교수는 우익단체로부터 심각한 협박을 받았다.

지금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여전하다. 보수단체·언론은 평화협정은 미군 철수를 통해 적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대남전략이라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평화협정과 유엔사령부 해체는 전혀 다른 문제”라며 “주한미군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주된 기능인 대북 억지 기능이 해소되면 새로운 주한미군의 역할을 찾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동북아 평화 조정자로서 미군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6·12 북·미 싱가포르 회담도 70년간 계속된 북과 미국의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는 중요한 회담이다. 이는 한반도 분단이 국제적 문제임을 드러낸 것이다.

“북은 오래전부터 4개국(남·북·미·중) 교차승인을 요구했다. 남한은 한·소, 한·중수교가 됐지만 북은 북·미, 북·일수교가 안되고 있다. 동북아 위기는 한반도 정전상태로 인한 긴장상태와 한·일 간, 중·일 간 역사전쟁이 긴장을 더해 왔다. 그래서 한·중·일 3국은 경제적으로 매우 비중 있고, 국제기구에 큰 기여를 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합당한 대접을 못받고 있다. 이 동북아 패권싸움에서 우리 남북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음은 큰 의미가 있다.”

-미국도 보수세력과 일부 야당은 북·미회담 성과를 깎아내리려 한다. 북·미 합의문에 완벽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없다고 비판한다.

“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굉장히 현명한 사람이라 본다. 트럼프 식의 문제 해결방안이 현실적인 방법이다. CVID에는 어차피 시간이 걸린다. 미국이 북과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서는 북에 대한 적대관계를 해소해야 한다. 미국도 북한을 적성국가로 규정한 법을 개정하고, 북한 방문 금지조치도 해제하고, 테러리스트 지원국가라는 낙인도 지워야 한다. 그런 것을 하려면 2년 6개월~3년 걸린다. 미국은 일단 한·미 군사훈련 중단조치를 취했다.”

이 교수는 1950년 경북 경주 출신으로 부산상고를 나와 69년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75년 서울대에서 국제법 석사학위를 받고 안동대 교수로 있다가 1980년 독일로 유학, 독일 킬대학에서 국제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87년부터 한국외국어대에서 후진을 가르치면서 200편이 넘는 논문과 110여권의 저서를 쓰는 등 ‘초인적 연구력’을 발휘했다. 뿐만 아니라 대한국제법학회 회장 등을 지내고 2006년부터 지금까지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으로 있다.

이론 넘어 실제 행동하는 통일활동가

무엇보다 이 교수의 특징은 이론에만 머물지 않고 실제 행동하는 통일 관련 활동에 있다. 1986년 범민족올림픽추진 중앙협의회 활동을 시작으로 1992년 경실련 통일협회 정책·운영위원장을 지냈다. 2001년 한완상 당시 상지대 총장과 함께 경실련의 ‘대북문제 보수화’에 항의, (사)평화통일시민연대를 만들어 지금까지 상임공동대표로 있다. 이 교수는 “평화통일 문제는 몇몇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제로 생활 속에 파고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이 교수의 신념이다. 이런 기조로 1995년 만든 것이 <나는야, 통일 1세대>라는 어린이를 위한 통일 안내서다. 그러나 이 책으로 그는 심각한 필화사건을 겪었다. 그는 “책 서문에 ‘중립적 입장에서 썼다’는 표현을 두고 검찰은 ‘당신은 우리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냐’고 따졌다”면서 “무려 6년간 시달리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 교수는 지금도 (사)민화협 상임의장, 6·15 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사)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 등 다양한 시민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6·15 남측 위원회는 남북 학술·독도·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특히 ‘평화통일 강명구 유라시아 평화마라톤’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이는 마라토너 강명구씨가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지난해 9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출발, 유럽과 유라시아를 횡단해 북한을 거쳐 서울로 달리는 1만6000㎞를 뛰는 대장정이다. 그는 “10월 초 강명구씨가 압록강에 도착한다”면서 “여러 루트를 통해 북한 통과를 타진하고 있는데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문재인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문재인 대통령 잘하고 있다. 단지 너무 국가주의로 가선 안된다. 최근 6·15 남측 대표단에 5명의 인사를 제외하는 모습은 매우 유감스럽다. 그동안 민간 차원의 통일운동 역할과 공로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지난 9년 동안 보수정권이 민간통일운동을 심각하게 탄압했고, 새 정부에서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 관리 중에 냉전적 생각을 가진 사람이 길목마다 있다. 관료·안보라인·청와대에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적폐 청산이 있어야 한다. 특히 남북경협은 독점재벌이 아닌 국민기업이 많이 참여해야 한다.”

<글·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