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사람]1인 서커스 창작집단의 대표 안재현씨 “다양한 장르 결합한 현대 서커스”

건물 3층 높이, 6m 봉에 한 사내가 오른다. 맨손으로 봉 끝에 거꾸로 매달린 사내. 급기야 땅바닥에 고꾸라질 기세로 곤두박질친다. 어! 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멈춰선다. 사내의 이마에 땀이 흥건하다. 구경꾼도 손에 땀을 쥔다. 365일 봉과 줄에 매달려 씨름하는 사내는 1인 서커스 창작집단의 대표 안재현씨(36)다. “제가 하는 공연은 흔히 서커스 하면 떠올리는 ‘동춘 서커스’와는 다릅니다. 서커스에 연극과 국악, 다양한 장르를 결합해서 만든 현대 서커스예요.”

안씨의 서커스는 단순하다. 올랐다가 떨어지고, 외줄의 양 끝을 쉼없이 오가는 단순한 동작들의 연속이다. 얼핏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서커스는 다른 장르와 만나 ‘실험적’인 창작 서커스로 탈바꿈한다. 최근 안씨가 꽂힌 장르는 전통음악이다. 줄을 탈 때는 가야금을, 봉을 탈 때는 대금을 연주한다. 섭외한 연주자에게 미리 공연의 구성을 얘기하고 서커스와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 넣는 방식이다. 안씨는 “서커스에 접목시키는 건 단순히 전통음악뿐만 아니다”라며 “2016년 공연에서는 무용과 시각예술, 판소리, 현대음악을 접목시킨 4가지 옴니버스식 서커스를 구성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서커스를 통해 ‘거리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지만 당초 안씨는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던 배우였다. 2010년부터 무대에 올라 5년 동안 연극을 했다. 대학 동아리로 연극을 시작했다가 매력을 느껴 다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들어갔다. 졸업 후 오디션을 통해

<살> <됴화만발>에 출연했고 극단 생활을 하며 <빨간 시> <고래> 같은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작품을 했다.

연극에 빠져 살던 안씨에게 예기치 않은 슬럼프가 찾아왔다. 안씨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무기력에 무대에 오를 수 없었다. 안씨는 그 길로 무대에서 내려와 4개월을 내리 쉬었다. 그런 안씨를 다시 일으킨 건 서커스였다. 우연치 않게 서울문화재단에서 모집하는 서커스 전문가 양성 과정-기예 워크숍에 지원했고 운좋게 참가자격을 얻었다. 1년 동안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현대 서커스를 익혔다. “서커스라면 틀에 얽매이지 않는 공연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어떤 경계도 없는 무대야 말로 제가 간절히 원했던 곳이었어요.”

안씨가 주로 서는 무대는 축제 현장이다. 5월부터는 안산 국제거리극축제와 의정부 음악극축제, 수원 연극축제와 같은 굵직굵직한 페스티벌에 참가해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위험이 따르는 만큼 사고를 막기 위한 혹독한 훈련이 필수다. 하루에 최소 5시간씩 봉과 줄에 매달린다. “서커스는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기예 트레이닝 받은 분들이 합니다. 제 기예 수준은 오래 한 사람과 비교하면 대단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무대에서 표현하고 연출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주목! 이 사람

서커스를 만나면서 안씨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작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살면서 생기는 고민을 봉과 줄을 통해 간결하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 겁니다. 공연을 통해 세계 곳곳을 다니며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 고민을 나눌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저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