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활성단층 지도 관련 예산 늘려야”

연구책임자 김영석 교수, 외국의 선진조사기법 도입 필요성 강조

포항 지진 이후 여야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내년 예산안에서 지진 관련 예산의 증액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월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지진대책이 지진이 날 때뿐 아니라 평소에 꾸준하게 실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지진 단층 조사, 450여개 활성단층의 지도화, 재난 대응에 대한 인적투자 확대 등 지진방재대책의 종합적인 개선·보완을 추진해 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는 전국에 분포한 활성단층을 그린 지도 자체가 없다. 지난해 경주 지진 이후 활성단층 지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국민적 공분을 샀고, 그 결과 올해 예산안에 전국의 활성단층을 조사하고 활성단층 지도를 제작하는 ‘한반도 단층구조선의 조사 및 평가기술 개발’ 연구에 25억75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11월 15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마산리 그린스토아마트 옥상 담이 무너져 주민들이 긴급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25년간 5단계에 걸친 장기적 계획

국가 활성단층 연구는 2041년까지 총 25년간, 5단계에 걸쳐 이뤄진다. 활성단층 연구팀의 연구책임자 김영석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한반도 동남권 이외 지역에도 상대적으로 적지만 활성단층이 다 있고, 수도권과 충청권에서도 지진이 일어난 사례가 있다. 전국의 활성단층을 담은 지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활성단층 지도는 무엇보다 지진 예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다. 다만 김 교수는 “지진 예측을 일기예보처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활성단층 지도를 통한 장기적인 예측을 통해 어떤 지역에 어느 정도 규모의 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활성단층 지도는 기존의 ‘국가지진위험지도’보다 구체적으로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특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013년 발표된 국가지진위험지도는 과거의 지진 자료와 역사적인 지진 기록을 통해 각 지역에서 지진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지 등고선 형태로 표기한 지도다. 이 지도로도 경북 경주시, 포항시 일대가 지진 우발지대라는 것을 알 수는 있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지진 위험지역을 알 수는 없다. 활성단층이 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 지진의 90% 이상은 활성단층에서 일어난다. 일본·미국처럼 활성단층 지도가 완성된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추정할 수 있다. 활성단층이 지나가는 지역의 지표에는 구조물을 설치하지 않는다든지, 내진시공을 강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진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활성단층 연구팀은 특히 일본과 미국의 활성단층 지도를 참고하고 있다. 지난 9월 7일 열린 경주 지진 1년 국제 세미나에서도 일본과 미국의 지진 전문가들이 참여해 각자 자국의 활성단층 지도를 소개했다.

일본은 인터넷 통해 활성단층 지도 제공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 활성단층 연구그룹의 곤도 히사오 선임연구원이 9월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이미 1980년부터 일본 전역에 대한 활성단층 지도를 만들었다.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활성단층 지도가 만들어졌다. 일본의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가 만든 지도의 경우 활성단층을 4등급으로 나눠서 표기하고 있다. 특히 S급(1급) 활성단층은 ‘30년 이내에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3% 이상’인 경우를 뜻한다.

일본 AIST는 인터넷을 통해 보다 자세한 활성단층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AIST의 ‘일본 활성단층 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활성단층 지도를 보면 일본 전국의 활성단층이 빨간 선으로 표시된 것을 볼 수 있다. 각 단층을 나타내는 빨간 선을 누르면 해당 단층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가 나온다. 지난해 구마모토 대지진 당시 활동했던 후타가와 단층의 경우 구마모토시 남동쪽에서 북동쪽 아소산까지 연결된 단층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또한 활성단층 지도과 구글 위성지도가 결합돼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자신이 사는 곳이 활성단층과 얼마나 가까운지 쉽게 알 수 있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도 여러 가지 방식의 활성단층 지도가 제작돼 있다. 국내 연구팀은 미국 지질조사소(USGS)와 캘리포니아 지질조사소(CGS)가 공동으로 제작한 지도를 참고했다. 지도엔 서부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가장 큰 규모의 샌앤드리어스 단층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성단층이 표시돼 있다. 또한 각 단층이 매해 움직이는 정도에 따라 굵기를 달리해 표기하고 있다. USGS 홈페이지에는 지도의 축척을 바꿔가며 마을 단위까지 활성단층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미국 전역의 활성단층 지도도 올라와 있다.

한국의 활성단층 조사 및 지도 제작은 어떻게 이뤄질 예정인지 연구책임자인 김영석 교수에게 직접 물어봤다. 5년 단위의 5차 연구로 구성된 활성단층 연구의 주관 연구기관은 부경대다. 부산대학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공동 연구기관이며, 총 60명가량의 연구진이 활성단층 연구에 투입된다.

일본 구마모토현 인근 지역을 표시한 활성단층지도 / 일본 AIST 활성단층 데이터베이스

연구팀은 1차 5개년(2017~2021년)에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한반도 동남권 지역의 활성단층을 조사할 예정이다. 첫 해인 올해는 경주와 포항 등을 지나는 양산단층, 울산단층 등을 조사한다. 내년에는 양산단층 남부가 지나가는 부산광역시 주변지역과 경주시 서쪽지역, 포항시 북동쪽 호미곶 일대 등이 조사대상 지역이다. 2019년에는 창원시, 밀양시 등 경상분지 서부, 2020년에는 의성군 등 경상북도 서북부를 지나는 가음단층계를 중점 조사하고, 2021년에는 영덕군 등 경상북도 북부 일대의 활성단층을 조사한다. 같은 방식으로 연구팀은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눠 매 5년마다 해당 권역의 활성단층을 조사한다. 아직 2~5차 연구의 조사대상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구팀 내부에서는 2차 5개년(2022~2026년)에는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 일대를 조사대상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1차 5개년 동남권 지역 우선 연구

연구팀은 1차 5개년에 걸쳐 조사할 경상권을 다시 5개 지역으로 나눴다. 즉 1년에 1개 지역이 조사대상인 셈이다. 또한 연구팀은 각 권역을 200㎦ 크기(서울특별시의 약 3분의 1 크기)의 20개 구역으로 다시 나눴다. 조사기간 동안 연구팀은 해당 구역에서 이미 존재가 알려진 활성단층뿐만 아니라 아직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단층까지 조사할 예정이다. 연구팀 내에서는 한 권역에 대한 활성단층 조사가 끝나는 5년마다 조사결과를 토대로 만든 지도를 일반에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연구팀의 조사내용은 국내외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회의의 검토를 거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단층 조사는 어떻게 이뤄질까. 지난해 일본 구마모토현 대지진의 경우 길거리나 논바닥에 그대로 지진의 흔적이 남았기에 활성단층 지도를 그리는 데 유리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한국의 지진은 지표 파열까지 나타나 육안으로 단층을 관찰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연구팀이 설정한 1개 구역만 해도 서울시의 3분의 1 크기이기 때문에 현장에 나가기 전에 항공촬영(LiDAR)으로 단층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우선 선정한다.

라이다 기법은 항공에서 지상으로 레이저 광선을 쏜 뒤 그 반사파의 속도와 강도를 통해 실제 지형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김 교수는 라이다 기법을 이용하면 숲이 계곡을 덮고 있더라도 실제 계곡의 모습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의 지진 전문가들이 라이다 촬영으로 얻은 지형을 분석해 단층이 존재할 것으로 보이는 깊은 계곡을 우선적으로 조사하게 된다. 라이다 기법에는 연구팀의 올해 연구예산 25억원 중 7억원이 배정돼 있다.

단층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찾아낸 이후에는 현장조사를 실시한다. 현장에서 단층 지역을 굴착해(트렌치 조사) 수직면을 확인한다. 수직면을 보면 여러 지층이 쌓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중간이 어긋나 끊어진 지층과 중간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있는 지층이 함께 나온다. 각 지층의 연대를 분석해 보면 해당 단층이 마지막으로 지질 변동을 일으킨 시기를 알 수 있다. 현장조사에만 올해 전체 연구팀 예산의 절반 가까운 11억원이 배정돼 있다.

지난해 9월 13일 경북 경주시 부지리에 사는 이두한 할머니(앞)가 아들과 함께 무너진 마당 담장을 살피고 있다. / 이석우 기자

학생들 해외 기술 배울 수 있게 지원해야

한편, 연구책임자인 김영석 교수는 정치권이 말로만 지진 대비를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지진 관련한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예산으로는 이번 포항 지진처럼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포항 지진이 터질 무렵 활성단층 연구팀은 포항시가 포함되지 않은 구역의 현장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지진이 나고 며칠만 지나도 상당 부분 복구가 이뤄지기 때문에 지진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포항 지진이 나고 바로 예정에 없던 포항지역 촬영을 했다. 예산에 없던 경비를 쓴 거라서 지금 이걸 처리하기가 상당히 곤란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 교수는 활성단층 지도 제작 사업에는 조사에 관한 예산만 편성돼 있기 때문에, 선진 조사기법을 배우기 위한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미국의 앞선 단층분석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현재 예산으로는 국외 전문가 자문회의에 속한 해외 학자들과 매해 한 차례 세미나를 하는 게 전부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활성단층 지도 제작 사업이 25년에 걸친 장기 과제인 만큼, 현재 지진에 대해 공부하는 학생들이 해외의 앞선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정부 때 해외 학회 참가 예산을 신청했더니 당시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조정을 많이 했다. 지질학 관련 해외 학회에 가면 수천 명의 학자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든다. 그리고 해외에는 지진으로 인해 땅이 실제 갈라진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데 한국에선 보기 드문 모습이다. 차세대 학자들이 지진 현장을 몸소 느끼고 지진과 단층에 대한 앞선 기술을 배우지 못한다면 어떻게 활성단층 지도를 제대로 만들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