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처유상수]한지 야생화 수공예 전문가 곽화숙씨-사람의 손끝에서 다시 피어나는 야생화

곽화숙씨가 야생화를 만드는 까닭 중에는 자신의 눈으로 본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지로 만든 꽃이지만 누구나 야생화를 가깝게 두고 자연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즐겼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산과 들에 피는 야생화가 사람의 손끝에서 피어난다. 곽화숙씨는 한지로 야생화를 만들고 꽃 속에 빛을 심어 밝히는 수공예 전문가다. 깊은 산을 가지 않더라도 그의 정원에서 귀한 꽃을 만날 수 있고, 밤이 되면 반딧불이가 꽃에 앉은 양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곽화숙씨는 한지 LED 야생화 제작, 또는 크리스탈 야생화 분야를 만든 수공예 전문가다.

그는 본디 문화센터에서 수공예를 가르치던 전문강사였다. “수공예 강의는 유행을 탄다. 한참 유행하다가 다른 유행이 시작되면 기존 강의는 갑자기 사라진다. 때문에 강사들은 주기적으로 새로운 내용을 배우고 교과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수없이 많은 수공예 분야를 배웠다”고 말한다. 그러다 곽화숙씨는 꽃꽂이를 배우게 됐는데, 꽃을 자르고 바늘받침에 꽂는 일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고 한다. 꽃도 살아있는 생명인데 보기 좋자고 꺾고 잘라내는 것이 왠지 생명에 대한 폭력이라고 여긴 것이다.

곽화숙씨가 꽃꽂이를 포기하고 시작한 것은 조화 만들기였다. 천을 오려 꽃 모양을 만들고 염색하여 흡사 살아있는 꽃인 양 만드는 수공예 분야다. 게다가 조화 만들기는 조화공예기능사라는 국가자격증도 있어 수공예 강좌를 운영하기에도 알맞았다. 대개 크고 화려한 꽃들을 만드는 것이 유행했는데, 곽씨는 우리나라 산야의 들꽃에 눈을 돌렸다. 우연히 산길에서 만났던 이름조차 모르고 지나친 꽃이 그를 사로잡았다. “2년 동안 야생화 찾기 동호회를 따라다녔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이들과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는 작가들을 따라 온 산과 들에서 우리 꽃을 찾아볼 수 있었다. 작은 꽃의 아름다움과 굽히지 않는 생명력에 매혹됐다”고 회상한다.

사람은 꽃을 만들고 그 꽃을 닮는다.

2년 동안 야생화 찾기 동호회 따라다녀

조화를 만들며 화려한 색깔과 특색 있는 표현을 위해 부자연스러운 재질을 써야 했지만 야생화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전통한지는 재질 자체가 자연스럽다. 닥나무로 만든 한지는 가공하기에도 편리하고 꽃의 섬세한 부분들을 표현하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꽃색을 내는 데도 적합하다. 재질 자체가 야생화와 꼭 들어맞았다”고 말한다. 그 당시 LED 조명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LED는 적은 전력으로 밝은 빛을 내고 열이 많이 나지 않아 새롭게 각광받는 재료였다. 곽화숙씨는 LED 소재가 자신이 표현하려는 우리 꽃의 아름다움에 적합하다고 주목하고 조화 제작에 쓰기 시작했다.

그가 조화를 만드는 과정은 야생화의 본을 뜨고 표현의 포인트를 잡아 소재와 모양을 결정한다. 그렇게 꽃잎과 줄기 등의 소재가 만들어지면 그에 맞는 LED를 골라 그 위에 갖가지 재료를 붙여 나간다. 주로 한지와 펄프를 쓰지만 때로는 다양한 수공예 재료를 선택하여 실물과 똑같이 표현한다. 꽃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받침까지 만들어지고, 전원을 연결하면 하나의 빛나는 야생화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작은 화분에서 시작하여 큰 덩굴 숲과 동산 하나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진다.

처음 그의 작품이 선보였을 때 우리 꽃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은근한 조명이 켜지는 참신한 기능에 관심이 쏟아졌다. 곽화숙씨는 “2005년 대한민국 수공예 문화관광상품 공모전에서 한지로 만든 야생화 작품으로 대상인 장관상을 받았다. 그 전까지 없던 양식을 만들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은 것이다. 그 이후에 여러 차례 상도 받고 전시회도 갖게 됐다. 때로는 전시공간을 장식해달라는 초청도 받는다. 사람들은 작품을 통해 우리 꽃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고 설명한다. 곽씨에 의해 수공예분야에 하나의 새로운 영역이 생겨난 순간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한지라는 전통 소재와 야생화라는 우리 자연의 내용이 결합됐다. 현대적인 LED 소재가 덧붙여져서 그전까지 없던 형식이 태어났다. 꽃을 보는 아름다움에 조명이라는 실용적 기능까지 더했다. 덕분에 수공예협회에 LED 크리스탈 야생화 분과가 생겼다.

어떤 분야에서나 새 길을 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전까지 보지 못한 새로움을 보여줘야 하기에 한 가지 일에도 더 큰 공을 들여야 했다. 곽씨는 과거의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된다며 “그전까지 강의를 위해 안 해본 공예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 많은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됐다. 꽃술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소재들이 있고 가지의 질감에 맞는 소재가 있다. 곰곰 생각하면 예전에 다뤘던 공예의 기법이 떠오른다. 적절하게 기술을 결합하면 감쪽같이 들어맞는다”고 말한다.

LED에 한지로 꽃잎을 붙이면 한 폭의 야생화가 태어난다.

수공예 문화관광상품 공모전 대상 받아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냈다고 하여,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하여 반드시 경제적 성공을 이루지는 못한다. 곽화숙씨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험난하고 일은 고된 법이다. 보상은 적고 일은 많았다. 곽씨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자연스레 길이 열렸다고 말한다. “그래도 다양한 부분에서 쓰임새가 생겼다. 인테리어의 일부로 한지 야생화 작품을 배치해서 호평을 받았다. 액자를 만들거나 대형 조형물로 전시하는 경우도 있다. 많은 부분에서 응용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수공예 작품과의 차이점이다”라고 설명한다. 수공예는 말 그대로 손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작품의 크기가 작고 쓰임새가 한정돼 있었다. 곽화숙씨의 한지 야생화 작품들은 그런 면에서 벽을 넘은 셈이다. 크기도 커졌을 뿐 아니라 소가구나 장신구로 한정됐던 용도조차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곽씨는 자신이 보거나 아는 꽃이라면 모두 만들어낸다. 금강초롱, 물매화, 노랑붓꽃, 앵초, 투구꽃, 금낭화, 동강할미꽃 등 이름마저 아름다운 꽃이 흡사 제 땅에서 핀 것처럼 살아있다. “이 작품들의 특징은 살아있는 꽃처럼 물로 씻을 수도 있다. 한지는 물에 닿으면 변형되지만 꽃을 다 만든 후 코팅액에 담가 표면처리를 하기 때문이다. 코팅을 거치면 빛깔도 더 생생히 살아난다. 물로 씻을 수 있고 10년이 넘어도 처음 모습 그대로 변치 않는다”고 한다. 조화의 단점이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고 낡아버리는 것이라면, 그런 걱정이 없다는 설명이다. 현대의 기술은 재료의 약점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가 만든 꽃은 시들 기약이 없다.

깊은 산 꽃밭을 고스란히 옮긴 것 같은 인사동 그의 작업장에서 어떤 꽃이 가장 좋으냐고 물었다. “모두 다 아름답다. 꽃들 앞에서 누가 더 예쁘다고 말하면 다른 꽃이 실망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곽씨가 자신의 작품을 대하는 마음씨를 읽을 수 있다. 꽃은 살아있거나 조화이거나 다 귀하고 값지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꼭 하나를 꼽자면 ‘물매화’를 가장 좋아한다며 목소리를 낮춘다. 물매화는 생김이 매화를 고스란히 닮았다. 나무가 아니고 풀이지만 여러 해를 살아낸다. 깊은 산 양지바른 물가 등지에서 주로 자란다. 지름이 손가락 두 마디를 넘지 않을 정도로 작고 여리며 곱다. 곽씨가 만드는 꽃들은 모두 그렇게 여리고 생생하다.

“야생화를 좇아다닐 때 그 생김새 하나하나를 빠지지 않고 기록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치 사람처럼 꽃들을 대한다. 비록 만들어 피운 꽃이지만 산속 깊은 곳에 자라나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려 한다”는 것이 그의 마음이다. 작업장 밖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작은 꽃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만든 꽃이네!” 하는 감탄의 소리를 낸다. 그의 꽃들이 그만큼 생생하고 실물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곽화숙씨가 야생화를 만드는 까닭 중에는 자신의 눈으로 본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꽃이 너무 아름답지만 깊은 산을 가야만 볼 수 있다. 키우기도 쉽지 않다. 몸이 불편하거나 시간의 속박에 사는 이들은 그 자연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옛 기억 속의 할미꽃을 집안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한지로 만든 꽃이지만 누구나 야생화를 가깝게 두고 자연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즐겼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곽씨의 작업 중에는 식물원 모형 제작 일도 있었다. 야생화는 잠깐 피고 질 뿐 아니라 잘 살펴 관찰하기에 까다롭고 옮겨심기도 어려워서다. 그는 “이곳을 들르는 학생들이 아는 꽃이라고 반가워한다. 어떤 학교는 여기 작품들로 야생화 꽃밭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곳도 있다.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소중한 우리 꽃을 보여줄 수 있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30분만 배우면 꽃 한 송이를 만들수 있다고 주장한다.

2시간 배우면 화분 하나 정도 만들어

인사동 그의 작업장에 들러 꽃을 구경하다가 잠깐 배워 만들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보기에도 섬세하고 만들기 어려워 보이지만 곽씨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30분만 배우면 꽃 한 송이를 만들 수 있다. 재료 만들기와 디자인 작업이 어려운데, 여기서 모두 주고 설명을 따라하면 되니 쉬운 일이다. 2시간 정도 배우면 기초적인 원리와 표현기법을 배울 수 있고, 화분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시작한 오솔길은 여럿이 걸을 때 넓고 편한 길이 될 수 있다. 그가 만들어낸 한지 LED 야생화 공예는 막 발걸음이 시작됐다. 곽화숙씨는 “어떤 공예나 예술이라도 그것을 시도하고 누리는 이들이 많아져야 발전한다. 한지 야생화 공예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가르치고 실제로 만드는 이들이 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조화공예기능사처럼 국가고시라도 있다면 관심이 늘겠지만 아직 그만큼까지 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학원을 만들어 기능을 가르치려 했던 곽씨의 꿈은 현실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2년간 준비해서 추진하던 강의센터를 접고 다시 인사동 한복판에 작업장을 낸 것이 다행한 일이 됐을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을 보여주고 야생을 느끼는 기억을 선물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곽화숙씨는 “야생화를 만드는 일이 정말 좋다. 절대적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주변이 아무리 소란해도 그 순간만은 고요한 나만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다. 집중이 필요한 이들에게 이 작업을 권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만들고 난 결과가 아름답다.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의 꽃 한 포기가 눈앞에서 살아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한다. 곽씨에겐 그 아름다움과 보람이 새 길을 걷는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 기회를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인생도처유상수

가지 않았던 길을 먼저 걸어간 이들에 의해 세상은 다양하고 풍요로운 곳이 됐다. 수공예라는 특수한 영역에서지만 곽화숙씨는 자신의 생각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새 길을 넓히는 일은 당연히 어렵다. 다만 그 길을 걷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고수는 남의 길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만드는 사람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