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빅데이터 속 당신 정보는 안녕하십니까?

빅데이터는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지우는 비식별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여러 조합을 합치면 해당 개인을 알아낼 수 있는 재식별화 가능성도 갖고 있다. 공공 빅데이터의 효과적 활용과 개인정보 보호의 적정한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다.

직장인 ㄱ씨는 신용카드 사용실적에 따라 할인쿠폰을 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았다. 안드로이드폰을 쓰는 ㄱ씨는 앱을 깔 때부터 위치정보, 통화내역, 연락처, SMS 등에 접근할 수 있게 허락할 것인지를 묻는 팝업에 여러 차례 동의를 눌러야 했다. 접근 권한을 허용하지 않으면 앱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성 알림이 뜬 까닭이다. 언젠가 다른 앱으로 받은 할인쿠폰을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쓰려다 ‘접근 권한에 동의하지 않아 사용할 수 없다’는 알림이 떠 난감했던 기억도 작용했다. 긴 줄이 선 계산대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다 눈총을 받았던 것이다. 그 뒤론 일단 동의 버튼부터 누르고 보긴 하지만, 정작 내 정보가 어떻게 수집되고 어디에 활용되는지는 모른다.

굳이 스마트폰 앱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인터넷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 사이트에 가입할 때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서비스 이용 중 발생하는 데이터를 자동으로 수집·분석하는 데 동의하라는 팝업을 수시로 마주한다. 방문기록은 물론 계좌번호나 신용카드 등 결제정보, 사용하는 프로그램과 파일에 관한 정보 등 개인정보를 가져가겠다고 한다. 그나마 친절한 곳은 ‘정보통신망법에 의거해’라든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라는 작은 글씨의 안내문이 딸려 있으니 그래도 법을 어겨 가며 수집하는 것은 아니구나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의문은 남는다. ‘그럼 정부에서도 내 정보를 기업이 활용할 수 있게 허용한 건가?’

또 다른 직장인 ㄴ씨는 ‘맞춤형’ 광고가 최근 이렇게까지 늘었나 싶어 섬뜩할 때가 많다. 맞춤형 광고의 차이를 알게 된 것은 회사에서와 집에서 뜨는 광고의 종류가 서로 다른 것을 알게 된 때부터다. 회사에서는 금융이나 투자정보와 관련된 광고가 자주 보이는데, 집에서는 의류나 외식과 관련된 광고가 사이트의 광고창을 메우고 있다. 회사와 집에서의 컴퓨터 활용 패턴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전에 자주 클릭한 광고나 자주 방문하는 쇼핑몰을 통해 정보가 전달됐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꺼림칙한 건 어쩔 수 없다. 결국 인터넷 페이지 안에서 뜨는 광고를 차단하는 ‘애드블록’을 여러 개 깔아 적지 않은 광고들을 아예 보이지도 않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래도 살짝 찜찜한 마음이 남아있다. ‘예전에 한 번 인터넷으로 가습기 샀다가 그 뒤에 같은 물건 더 싸게 파는 광고가 뜨기에 냉큼 취소하고 다시 샀는데 그런 혜택은 좀 아쉽긴 하지….’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한 기업 IDC 센터 서버룸의 내부. / 경향신문 자료사진

비식별화 거치는 빅데이터의 두 얼굴

빅데이터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대량의 데이터, 즉 이전까지 데이터를 수집하던 양상보다 크게 늘어난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게 되면서 그동안은 불가능했던 다양한 정보와 가치를 뽑아내는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가리킨다.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 속에서 특정한 개인의 얼굴은 ‘일단’ 사라진다. 대신 ‘분유를 구매한 30대 여성’, ‘소형차 광고를 클릭한 20대 직장인’과 같이 비슷한 패턴의 행동을 보인 무수한 사람들의 데이터를 모으면 향후 의사와 행동 방향을 분석할 수 있다. 이렇듯 기업의 마케팅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공익적인 차원으로도 쓰일 수 있다. 새로운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기 전이나 후, 예상되는 문제를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데도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빅데이터의 또 다른 얼굴은 그것이 ‘빅데이터’이기 때문에 드러난다. 여러 경로로 수집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조합하면 거꾸로 일단 지워졌던 개인의 얼굴을 다시 그려낼 소지도 충분하다. 신용카드업체의 결제정보, 아파트 관리비 이체정보, 이동통신서비스 사용패턴 등 여러 방향에서 수집된 소비자 개인의 데이터들은 처음 수집될 때에는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지우는 비식별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한 데 조합할 수 있게 충분한 데이터만 제공된다면 얼마든지 다시 해당 개인의 행동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게 재식별화될 가능성도 갖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10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2014년부터 올해까지 민간 보험사에 공공데이터라는 명목으로 진료내역 등이 담긴 자료들을 제공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보건복지위 소속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심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심평원은 민간 보험사 13곳과 2개 민간 보험연구기관에 보험 위험률 개발과 보험상품 연구 등에 쓴다는 명목으로 요청받은 ‘표본 데이터셋’을 총 87건 제공했다.

‘표본 데이터셋’이란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의 성이나 연령 같은 특성이 잘 반영된 100만명 이상 단위의 표본을 뽑아내 구성한 자료다. 100만명을 표본으로 한 고령자 표본부터 110만명 단위의 입원환자·소아청소년 환자 표본, 그리고 140만명을 표본으로 한 전체 표본까지 있다. 이 자료에는 성이나 연령과 같은 일반내역뿐 아니라 어떤 진료행위가 있었는지가 담긴 상병내역, 진료과목 등이 담긴 진료내역, 그리고 원외처방내역까지 모두 포함된다.

물론 이 데이터는 어떤 병으로 어떤 진료를 받았는지는 포함하지만 ‘누가’ 받았는지는 알 수 없게 비식별화된 자료다. 이 자료만으로는 일반적인 병원 내원·입원환자가 자신의 건강정보가 보험사에 넘어갔다고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희귀병 환자들에게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 시민사회단체의 지적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진보네트워크센터 등 건강·정보분야 시민사회단체들은 “진료내역에 희귀질환과 같이 재식별이 아주 용이한 질병 정보까지 포함하고 있어 가장 민감한 개인질병 정보를 민간 보험사가 집적하고 있다는 사실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성명을 냈다.

여기서도 제기되는 문제는 빅데이터에서 ‘재식별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한 건의 표본 데이터만으로는 개인을 집어내기 힘들더라도 나란히 놓고 비교분석이 가능한 여러 건의 데이터가 축적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심평원과 비슷하게 국민 건강에 대한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민간 보험사에 제공하지 않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민간 보험사의 경우 건강보험 진료데이터를 분석하여 특정 질환 유병자, 기왕력자 또는 위험요인 보유자에 대해 민간 보험의 가입 차별 등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어 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민간 보험사로 넘어간 빅데이터 때문에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소수를 넘어 상당수의 건강보험 가입자들도 불이익을 볼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기업들 재식별화 과정 통해 실제 활용

실제로 기업들은 비식별화된 빅데이터를 결합해 손쉽게 재식별화 작업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재식별화된 개인정보들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다방면으로 활용된다.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한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에 따라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던 개인정보가 기업에 제공된 건수만 3억4000만건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넘어간 각각의 서로 다른 개인정보 데이터들은 한데 묶여 고객정보 분석에 활용됐다. 대표적으로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는 2017년 2월 두 회사에 모두 가입되어 있는 241만명의 고객 정보를 13차례 결합했고, 민간 연구기관인 보험개발원은 1억5000만건의 개인정보를 현대자동차 고객정보와 두 차례에 걸쳐 결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이 민감한 개인정보를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특정 개인정보를 추론해 낼 수 있게 하는 허점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은 지난해 6월 박근혜 정부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한 6개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했다. 정부의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일단 비식별화된 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닌 것이 된다. 따라서 해당 정보의 주체인 개인에게 사전 동의를 받지 않고도 활용 가능하다. 또 완전한 익명화가 아닌 가명을 사용한 비식별화를 허용하고 있어 이 경우 보다 손쉽게 재식별화를 거쳐 특정 개인을 추정할 수도 있다. 가이드라인이 안고 있는 이러한 치명적인 문제 때문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비식별화에서 익명과 가명을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을 행정자치부에 전달한 바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각기 다른 기업이 보유한 비식별화된 빅데이터를 서로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SK텔레콤과 한화생명보험은 올 4월 각 사가 보유한 비식별화된 빅데이터를 결합할 경우 새롭게 나오는 데이터에 관해 분석한 바 있다. 그 결과 두 회사에 동시 가입되어 있는 고객들의 정보를 활용해 그간 도출하기 쉽지 않았던 신용정보 비보유자의 신용도를 평가할 수 있다는 유용한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비식별화된 고객정보를 결합시키는 과정에서 재식별화가 가능할 수 있는 소지도 발견됐다. 두 회사가 결합한 고객정보 가운데는 나이와 성별 외에도 직업, 대출건수와 연체 등록시기 등이 포함돼 있다. 뿐만 아니라 총대출액수와 추정소득, 월평균 통화시간, 스마트기기 보유 여부 등 세세한 내용까지 담고 있다. 처음에는 비식별 조치를 거친 개인정보였더라도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개인정보 등과 대조하면 재식별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는 것이다.

9월 20일 경기도 성남시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빅데이터 이니셔티브 경기 포럼(B.I.G Forum) 2017'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빅데이터가 빅브라더의 도구 가능성

빅데이터 정보가 흔히 발생하는 대량유출 사태로 번지면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된다. ㄷ 변호사는 과거 기업 개인정보 유출사태로 피해를 본 회원들이 제기한 집단소송에 참여한 적이 있다. 결과부터 보면 ㄷ 변호사가 맡은 소송은 사실상 패소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해당 기업의 보안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책임을 기업에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유출된 개인정보 문제는 현재진행형이 될 수도 있다. ㄷ 변호사는 “지금 와서 주목할 만한 사항이 한 가지 있는데, 당시 법원은 개인식별번호, 즉 주민등록번호만으로는 민감한 정보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며 “이미 여러 차례 유출이 됐기 때문에 국민들까지도 이제 더 이상 유출에 민감해 하지 않아 ‘공공재나 다름없다’고 하는 그 주민번호가 최근의 빅데이터와 결합하면 새로운 정보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현실로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악몽의 시나리오는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빅데이터 기술의 발달로 서로 다른 자료의 데이터를 결합하는 것도 더욱 손쉬워진다. 특히 이미 유출된 주민번호 데이터가 기업 등 민간에서 수집·보유하고 있는 식별·비식별 개인정보와 결합될 때 위험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시민단체 ‘함께하는시민행동 정보인권’이 1994년 이래 올해까지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태를 취합한 결과 주민번호가 유출된 건수만 모두 더해도 약 7억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는 공공기관의 정보유출 사태도 포함되지만 절대다수는 기업이 해킹을 당해 개인정보를 유출시킨 사건들이었다. 기업들 손에 대규모의 빅데이터가 넘어가고, 이 데이터가 또다시 정보유출 범죄에 악용되면 그 피해는 이전까지는 상상할 수도 없는 막대한 규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ㄷ 변호사와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빅데이터가 더 이상 익명의 데이터가 아니라 개인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빅브라더의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시대다.

게다가 현행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애초에 비식별화된 정보라는 이유로 자신의 정보가 빅데이터로 활용되는 데 동의할지 말지의 선택지도 없었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쪽의 책임을 부정했기 때문에 개인정보 재식별과 대량유출 등의 문제가 발생해도 소송을 거쳐 구제나 보상을 받기도 더 어렵다.

이러한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만은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빅데이터의 순기능을 외면한 채 규제만 강화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정부와 민간, 시민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적정수준의 비식별화 또는 익명화 조치가 포함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면 얼마든지 예방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막연한 불안감으로 빅데이터 자체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정보유출 등의 피해 못지않은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 민간과 공공을 막론하고 빅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을 더 투명하게 하고, 개인정보의 주인인 시민들이 자신의 개인정보 활용에 대해 더 높은 통제권을 쥘 수 있다면 균형 있는 정책이 마련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은우 정보인권연구소 이사는 “원칙적으로 사업상 기밀 또는 영업비밀에 대한 보호가 개인의 프라이버시 및 개인정보 보호의 기본권을 우선할 수 없으므로 두 권리 사이에서 신중한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개인에게 더 많은 통제권을 주고, 빅데이터의 혜택을 공유하는 동시에 효율적이고 투명한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인센티브가 있다면 기업과 개인 모두 보다 균형있게 빅데이터의 혜택을 최대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