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조홍근의 ‘알기 쉬운 건강이야기’]너무 마르면 일찍 죽고, 좀 쪄야 오래 산다?

상식적으로는 날씬할수록 오래 살고 뚱뚱할수록 병도 많이 걸리고 단명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요즘 나오는 연구를 보면 상식적인 추측과 약간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가난해서 먹고사는 것 자체가 일차적 목표였던 1970년대까지는 비만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커녕 오히려 잘 사는 징표로서 우대받기까지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키가 작고 말랐을 때, 보기 드물게 배가 나오고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은 ‘사장감’ 또는 ‘부자’로 부러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당뇨병이나 심장병은 거의 볼 수 없었고, 대부분 영양실조에 의한 결핵이나 전염병 등이 가장 문제였으며, 이런 병은 비만이 아니라 저체중과 관련이 깊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한창 발달하던 세계 경제의 하부구조로 편입되어 ‘3저’로 표현되는 이례적 호황에 들어간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국민들의 체형에도 약간씩 변화가 오기 시작합니다. 공장식 축산과 양식의 발달에 힘입어 쌀밥으로 대표되는 영양소가 적은 정제 탄수화물만을 집중 소비하는 행태에서 벗어나 고기나 생선과 같은 육류도 같이 먹는 식습관으로 변하게 됩니다. 풍족한 식품은 필연적으로 고칼로리 식사를 하게 만드는데, 여기에 더해 자동차와 엘리베이터와 리모컨 등의 보급으로 인한 운동부족으로 우리 사회는 어느새 이제 비만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오게 됩니다.

[닥터 조홍근의 ‘알기 쉬운 건강이야기’]너무 마르면 일찍 죽고, 좀 쪄야 오래 산다?

체질량지수와 허리둘레

비만은 크게 두 가지로 측정합니다. 가장 많이 쓰는 분류는 체질량지수(Body Mass Index·BMI)로 체중/키의 제곱입니다. 서양에서는 25 이상을 과체중이라고 하고, 30 이상을 비만이라고 합니다. 한국인을 포함한 동남·동북아시아에서는 23 이상을 과체중, 25 이상을 비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를 보면 우리나라 비만 기준이 너무 낮고, 과체중이라고 분류하는 체질량에 속하는 사람들이 가장 건강하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분류로 과체중·비만(체질량지수 23 이상)을 정의하면 2014년 현재 남자는 61%가, 여자는 45%가 과체중·비만입니다.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우리나라도 과체중과 비만의 기준을 서양처럼 25와 30 이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은 편입니다.

또 다른 비만의 분류는 허리둘레입니다. 허리둘레는 중심성 비만을 측정하는 방법입니다. 일반적으로 지방을 건강에 해롭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지방에서 염증·산화물질을 많이 분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쁜 역할이 지방의 부위마다 다릅니다. 가장 활발하고 나쁜 지방조직은 내장지방 즉 중심성 비만입니다. 체질량지수로는 온몸의 지방상태를 알 수 있지만, 허리둘레는 아주 해로운 내장지방의 양에 더 집중되기 때문에 나쁜 비만을 가려내기에 더 좋은 측정법입니다. 배꼽 높이에서 배 둘레를 재면 됩니다. 공복상태에서 남자는 90cm 이상, 여자는 85cm 이상을 비만이라고 합니다.

비만 역설은 이 칼럼에서도 몇 번 언급했고, 여러 매체를 통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상식적으로는 날씬할수록 오래 살고 뚱뚱할수록 병도 많이 걸리고 단명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요즘 나오는 연구를 보면 상식적인 추측과 약간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체질량지수가 18 정도로 굉장히 마른 사람들은 오히려 여러 가지 병으로 단명하고, 약간 과체중이라고 생각되는 23~27 정도에 포함되는 사람들이 제일 오래 사는 것으로 통계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을 U-curve 또는 비만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이런 역설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 많이 쓰는 논리는 ‘역인과관계(reverse causality)’라는 이론입니다. 말라서 빨리 죽은 것이 아니라, 어떤 치명적인 병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마른 것이었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단명했다는 해석입니다. 외국의 연구를 보면 마른 사람들은 흡연자가 많았고, 뇌졸중도 더 많았으며, 암도 많았습니다. 따라서 이런 질환이 포함된 건강하지 않은 마른 사람들은 당연히 단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어떨까요? 한국인에 대한 큰 연구가 최근에 ‘Diabetes Care’(당뇨관리)라는 학술지에 발표되었는데 이 논문이 세계적으로도 참신한 이유는 당뇨인에게서의 비만이 생존에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통계를 이용한 연구인데, 무려 1200만명의 의료통계입니다. 연구자들은 2001년부터 2014년까지의 국가 건강검진 기록을 분석해서 체질량지수에 따른 사망의 양상을 분석했습니다. 전체 연구를 보면 체질량지수가 남자 25~30.9, 여자 23.5~29.4 범주에서 가장 생존율이 높았습니다. 우리 기준으로 과체중과 비만입니다. 마른 체형은 오히려 사망의 위험도가 과체중보다 2배 이상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 결과를 잘못 받아들여 ‘체중이 많이 나가야 오래 살겠구나’ 하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폐질환이나 만성전염병이 마른 사람 그룹에 많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고, 총사망건수만 있고 어떤 병으로 사망했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신중해야 합니다. 조금 더 변별력이 좋은 허리둘레를 측정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건강한 비만은 없다

‘건강한 비만’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비만한 사람 중에 고혈압도 없고 고지혈증도 없고 혈당도 정상인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이런 ‘건강한 비만인’은 나이가 들어도 일반적인 비만인보다 훨씬 건강하고 오래 산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심지어 건강한 정상 체중인과 모든 면에서 비슷하게 건강하다고 주장되기도 합니다. 단지 살이 조금 더 쪘다는 차이만 있을 따름입니다. ‘비만 역설’과 ‘건강한 비만인’은 언제나 비만학계의 화끈한 이슈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건강한 비만’은 없다는 내용의 연구가 명성 있는 심장 학술지인 ‘European Heart Journal’(유럽심장저널)에 발표되었습니다. 52만명의 유럽인을 12년 동안 관찰하고 있는 연구(EPIC-CVD·European Prospective Investigation into Cancer and Nutrition study)의 일부입니다. 일반적으로 비만 하면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 등이 동반되는데, 과체중이거나 비만하면서도 이런 질환이 없는 사람들을 ‘건강한 과체중’ ‘건강한 비만’으로 정의했습니다. 12년 동안 연구대상 인원 중에 7637건의 심장병이 발생했습니다. 전체 연구대상을 건강한 정상체중, 건강한 과체중, 건강한 비만, 건강하지 않은 정상체중, 건강하지 않은 과체중, 건강하지 않은 비만 등 6개의 그룹으로 나누었을 때 심장병 발생의 위험도를 계산했습니다. 만약 ‘건강한 비만’이 존재한다면 그들의 심장병 발생은 건강한 정상체중과 같아야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입니다. 건강한 정상체중에 비해 건강한 과체중은 심장병이 26% 더 많이 생기고 건강한 비만은 28% 더 많이 생깁니다. 물론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이 있는 건강하지 않은 정상체중은 건강한 정상체중에 비해 심장병이 훨씬 더 많이 생깁니다(2.15배). 건강하지 않은 과체중은 2.33배, 건강하지 않은 비만은 2.54배나 심장병이 발생합니다.

닥터 조홍근의 ‘알기 쉬운 건강이야기’

단지 체중이 많이 나가지만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이 없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정상체중인보다 심장병에 더 잘 걸립니다. 처음에는 체중이 무거워진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젊기 때문에 몸이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비만에 노출된 세월이 길어질수록 처음에는 ‘건강했던’ 몸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과체중이나 비만의 범주에 속하는 분들 중에 현재 건강검진에서 별 문제가 없다고 절대 안심할 상황이 아닙니다. 살 뺄 힘이 남아있을 때, 아직 젊을 때, 몸이 아직 건강할 때 빨리 살을 빼야 합니다.

<연세조홍근내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