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59) 가볍지만 친근한 관계가 더 큰 행복을 준다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보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행복하다고 느꼈다. 이 연구결과에서 한 가지 관심을 둘 점은 가족보다 이웃·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가장 큰 행복감을 경험한다는 점이다.

유명한 정신의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에게 한 기자가 질문했다. “어떻게 살면 행복할까요?” 아마 인간의 의식은 물론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의 세계까지 그 관심의 영역을 확장시킨 대학자답게 자세한 설명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대와는 다르게 프로이트의 대답은 의외로 간결했다. “Lieben und Arbeiten.” 이 대답을 우리말로 옮기면, “사랑하고 또 일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도 우리 삶에서 친밀한 인간관계와 일이 행복의 요체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헤이데이>와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가 공동으로 서울에 거주하는 3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성인남녀 480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중장년의 일상에서의 행복’을 연구하였디. 그리고 그 결과를 최근에 발표하였다. 이 결과에서 현재 우리나라 중장년이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감과 그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과 만남의 영향을 자세하게 알 수 있어서, 흥미 있는 결과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Lieben’ 즉, 친밀한 인간관계에 관련된 측면을 살펴보자. 우리의 친밀한 인간관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부모나 자녀 그리고 형제와 같은 가족관계이다. 이 관계는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고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이며 뜻대로 바꿀 수 없는 관계이다. 또 하나는 부부나 친구와 같이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관계이다. 동시에 이 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는 관계이다.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법회에 참석한 신도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중년기의 종교활동은 행복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 이준헌 기자

남성은 배우자와 같이 있을 때 더 행복

연구결과에 의하면, 예상대로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보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행복하다고 느꼈다.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하지만 이 연구결과에서 한 가지 관심을 둘 점은 이웃·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가장 큰 행복감을 경험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관계인 ‘이웃·지인’과의 관계가 ‘부모·자녀’처럼 주어진 관계보다 행복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 결과에 대해 행복연구센터는 “한국의 중장년은 혈연처럼 강한 관계보다는 지인과 이웃처럼 가볍지만 친근한 관계에서 더 큰 행복감을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 분석에 덧붙여, 가족관계는 자신의 의사에 관계없이 의무나 도리에 의해 행동해야 하는 특징이 있다. 자신의 감정, 즉 ‘좋다’ 또는 ‘싫다’의 감정이 표현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지인·이웃’과의 관계보다 행복감에 큰 영향을 줄 수 없다. 더구나 사회활동의 대상이 ‘지인·이웃’으로 확산되는 문화에서는 더욱 이런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다.

일상에서 관계를 맺는 대상에 따른 행복도에서 남녀 차이가 뚜렷이 나타난다. 남성들은 배우자와 같이 있을 때 다른 누구와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하다. 하지만 여성들은 이웃·지인, 친구·연인, 가족(부모·형제·친지) 다음으로 배우자를 꼽았다. 즉 남자들에게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여성들에게 있어서 남편의 존재는 행복을 증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혼생활 만족도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이와 유사한 결과를 보여준다.

중년이 되면 남자와 여자의 성향이 큰 변화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남성은 여성화되고 여성은 남성화된다.’ 남자들은 젊었을 때는 가족보다는 사회생활에서의 성공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승진의 사다리’를 오르려고 노력한다. 자연스럽게 가족에 대한 관심보다는 대외적인 활동과 인간관계에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비한다. 그러다가 중년이 되고 사회적 활동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면 관심이 가족으로 향하게 된다.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소홀히했던 가족관계와 정서적 관계를 중시하게 된다. 소위 ‘여성화’되어 간다. 이렇게 되면 배우자와의 관계가 행복에 중요한 요인으로 된다.

대조적으로 지금까지 자녀 양육과 가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여성의 입장에서는 사회생활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자녀들도 성장해서 어머니의 관심을 덜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 시기가 된다. 이제 어머니에게 가정은 점점 ‘빈둥지’가 되어 간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제부터 여성은 지금까지는 등한시했던 친지들과의 관계가 빈번해지고 사회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즉 ‘남성화’가 되어가기 시작한다. 이런 시기에는 당연히 친구나 친지 그리고 이웃들과의 관계가 생활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동시에 가정적으로 변하는 남편은 사회활동을 방해하는 존재로 전락해가기 시작한다. 특히 젊었을 때 부부 사이가 원활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남편과의 관계가 행복을 추구하는 데 방해물로까지 여겨지게 된다. 30대와 40대는 배우자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50대는 배우자와 함께 있을 때 행복감이 뚝 떨어지는 결과가 이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여성은 남편의 존재를 방해물로 여겨

‘Arbeiten’ 즉, 일상적인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좋아서 하는 활동, 즉 자발적 행동이다, 또 하나는 어쩔 수 없어서 하는 활동, 즉 의무적 활동이다. 이 두 가지 활동 중에서 당연히 좋아서 하는 자발적 행동이 행복감과 긍정적 관계가 있다. 이 현상은 이번 연구에서 일반적으로 행복에 도움이 되는 활동은 여가·취미활동, 운동과 종교활동, 그리고 여행 등으로 나타난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대조적으로 어쩔 수 없어서 의무적으로 하는 활동은 행복감과 관계가 없거나 부정적 관계가 있다. 이번 연구에서도 육아·가사활동과 업무 등과 같은 활동이 행복감과 상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자연스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높은 경제적 발전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만족도는 낮은 나라이다. 누구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만, 생활에 만족하기보다는 “하는 일 없이 몸만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마도 몸은 고달프게 일을 많이 하지만 ‘마음은 행복하지는 않다’는 표현일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이번 연구에서 밝혀졌다. 이번 연구에 의하면, 생활에 만족을 주는 자발적 활동이 전체 활동 중에 5% 미만이다. 다시 말하면 삶에 만족을 주는 행동은 일상생활에서 거의 안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의무적인 활동을 주로 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책임자로 연구를 수행한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의 조언대로 “연습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먹고 살기 바빠서” 일만 열심히 했다. 하지만 정작 ‘왜’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은 하지 않았다.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

여가나 취미활동 그리고 여행 등이 행복감과 높은 상관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 활동들은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좋아서 ‘자발적’으로 하는 활동들이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런 활동들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생활의 패턴을 바꿔야 한다. 행복과 거리가 먼 ‘TV 시청’이나 ‘먹기’ 등의 소극적 활동은 지양하고, 여가활동이나 여행 등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20세기에는 일하기 위해 놀았지만, 21세기에는 놀기 위해 일하는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