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과세, 이번엔 실현될까

내년 1월 시행 앞두고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 또다시 연기 주장

동성애, 이슬람, 종교인 과세 반대. 한국 보수 개신교의 ‘양대 축’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통합을 선언하며 밝힌 3대 공동 목표다. 지난 4월 12일 통합선언 기자회견에서 이영훈 당시 한기총 대표회장은 “연합 기구를 하나로 만든 뒤 정부를 상대로 동성애, 이슬람, 종교인 과세 반대를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숱한 논란 끝에 내년 시행을 앞둔 종교인 과세를 둘러싸고 종교계와 정치권 일각에서 또 다시 '유예'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5월 31일 한국납세자연맹 등 시민단체들이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 앞에서 종교인 과세 유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중 세 번째, 종교인 과세는 현행법대로라면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1968년 처음 논의된 이후 50년간 ‘조세 성역’에 해당됐던 종교인에 대한 과세가 숱한 논란 끝에 반세기 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종교인 소득에 대해 전면 비과세를 하는 국가는 현재 한국이 유일하다. 그러나 시행을 목전에 두고 또다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부 개신교계의 반발과 준비 부족을 이유로 시행을 또 미루자는 주장이 고개를 든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 다시 ‘면세’를 외치다

500년 전 유럽 가톨릭교회가 ‘면죄부’를 팔아 종교개혁의 단초를 제공했다면, 한국 교회는 정부 출범 이래 반세기 가까이 ‘면세부’를 누려왔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 조세 공평주의의 이 원칙은 유독 교회 담벼락 앞에서 멈췄다. 납세의 의무를 명시한 헌법 38조를 비롯해 세법 어디에도 종교인의 납세의무를 면제한다는 조항이 없지만,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국세청이 직무를 방기해온 것이다.

한국에서 종교인 과세를 둘러싼 논란의 역사는 꽤 길다. 1966년 국세청이 설립된 지 2년 후인 1968년,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은 성직자들에게도 근로소득세를 걷겠다고 밝혔지만 종교계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 그로부터 오랜 기간 ‘조세 사각지대’에 있었던 종교인 과세 문제는 2006년 한 시민단체가 ‘종교인 탈세를 묵인한다’며 이주성 당시 국세청장을 고발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고, 이명박 정권 말기인 2012년 박재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종교인 과세를 주장하며 다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정치권에서 제기된 부자증세론의 ‘맞불’ 차원에서 ‘국민 개세주의(皆稅主義)’를 주장하며 종교인 과세를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국 청와대 반대로 무산됐고, 기획재정부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인 이듬해 8월 국회에 종교인 과세를 담은 세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그해 12월 임시국회에서 결국 처리가 불발됐다.

이후에도 숱한 진통 끝에 세법 개정안은 마침내 2015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당시 국회가 개정안에 ‘2년 유예’라는 단서조항을 붙여 시행을 2018년으로 미루면서 재차 논란이 일었다. 보수 개신교계의 눈치를 본 정치권이 선거철을 앞두고 번번이 종교인 과세를 미뤄오다, 개정안을 통과시킬 때까지도 다음해 열릴 20대 총선을 의식해 유예조항을 붙였다는 것이다.

정치권에 대한 일부 개신교계의 직·간접적 압력 행사는 당시 국회 속기록만 봐도 확인된다. 2015년 11월 11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2차 조세소위. 법 개정에 대한 의원들의 부정적 기류에 박원석 당시 정의당 의원은 “세제를 일부 반대가 있다고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고, 이에 나성린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비례대표 때는 괜찮았는데 이제 지역구 가는데 그러네…”라며 당시 비례대표였던 박 의원에게 ‘면박’을 줬다. 이듬해 있을 총선에서 개신교계의 표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김관영 당시 민주당 의원은 “대형 교회나 이런 쪽에서 압박도 받고 굉장히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여야가 똑같이 선거에서는 뉴트럴(neutral)하다고 생각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법안 처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기재부의 세법 개정안이 무산됐던 2013년 12월 8차 조세소위 회의록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조세소위 위윈장이었던 나성린 의원은 개신교계의 반발을 언급하며 “정부가 이것(세법 개정안) 가져와서 완전히 여당 물 먹이는 것”이라며 “여당하고 종교단체하고 뭐 편 갈라 놓을 일 있어?”라고 말해 야당 의원들로부터 “그럼 여당이 당정협의는 왜 했느냐”는 반발을 샀다. 정부안이 무산될 상황에서 위원회 안으로 법안을 내자는 제안이 나오자 한 야당 의원은 “정부가 두들겨 맞을 걸 왜 우리가 대신 두들겨 맞아요”라며 반대하기도 했다.

정치권, 선거 앞두고 종교계

결국 어렵게 마련한 사회적 합의에 번번이 발목을 잡은 것은 정치권이었다. 이는 지난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선을 앞둔 지난 4월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가 각 대선주자에게 종교인 과세에 대한 입장을 물은 결과, 심상정 당시 정의당 후보를 제외한 유력 후보 4명이 모두 시행을 미룰 수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새 정부 출범 후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또다시 슬금슬금 ‘유예’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군불을 지핀 것은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28일 기자들과 만나 “전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종교인 과세를 내년부터 시행하면) 불 보듯이 각종 갈등과 마찰이 일어날 것”이라며 과세를 2020년으로 2년 늦추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과세 유예에 공감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수원중앙침례교회 장로로 민주당에서 기독신우회 회장을 맡는 등 정치권 내 대표적인 개신교 신자로 꼽힌다.

정작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새 정부 5년의 정책 방향을 짜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수장이 준비 부족을 이유로 또다시 유예를 주장하며 논란이 재점화됐다. 청와대는 “(과세 유예는) 김진표 위원장의 이야기이고, 우리는 더 살펴보고 조율이 필요한 문제라고 본다”며 김 위원장과 거리를 두면서도 검토 입장을 밝혔다. 국세청은 이르면 7월 중 종교인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여는 등 내년 시행에 차질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정치권에서는 정부 출범 초기 종교계와의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또다시 유예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미 각종 ‘납세 특혜’가 포함돼 있는 종교인 과세안을 더 이상 손 봐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납세자연맹 관계자는 “현 소득세법 개정안은 근로소득세와 기타소득세 중 선택할 수 있게 해 과세 평등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이마저도 2년 더 유예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종교인 과세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종교인 과세는 소득세법상 ‘기타소득’ 항목에 ‘종교인 소득’을 추가해 종교인 개인의 소득구간에 따라 6~38%의 세율로 세금이 차등 부과되도록 한다. 종교인의 수입은 ‘근로소득’이 아니라 ‘사례비’라는 종교계의 강한 반발로 고정적인 ‘근로소득’이 아니라 일시·우발적 소득을 뜻하는 ‘기타소득’ 항목에 종교인 소득을 추가한 것이다. 기타소득은 근로소득보다 공제율이 훨씬 크기 때문에 납세자 입장에선 유리하다. 개정 법안은 종교인이 기타소득 원천징수 방식과 근로소득 원천징수 방식 중 선택해 세금을 납부할 수 있게 했는데, 이에 따라 종교인의 세부담이 일반 근로소득자보다 20~40%가량 적을 것으로 추산되며 조세 형평성 문제가 불거졌다. 세금 탈루가 있다고 하더라도 세무당국이 종교단체에 대해서는 세무조사조차 할 수 없다.

일부 대형교회 재정 비공개 사회적 논란

실질적인 세부담이 크지도 않다. 국세청은 종교인 과세의 대상 인원이 20만명에 달하지만, 종교인 대다수가 소득이 면세점 이하로 적기 때문에 실제 걷히는 세금은 대상 인원과 견줘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 개정 당시 기획재정부가 예상한 종교인 과세로 인한 세수효과는 100억원 수준이며, 문화부에 등록된 종교인은 약 20만명에 달하지만 이 중 실제 과세대상은 4만6000명에 불과할 것으로 추산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승려의 연평균 소득은 2051만원, 목사는 2855만원, 신부는 1702만원, 수녀는 1224만원이다. 결국 많게는 억대 연봉을 받는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을 제외하고는 세금부담이 크게 높아지지 않으며, 정부가 징수할 세금규모보다 모든 국민이 세금을 내는 ‘공평과세’의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큰 것이다.

아울러 법 시행 이전에도 이미 많은 종교인들은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천주교는 1994년 주교회의의 소득세 납부 결정으로 각 교구마다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고 있으며, 대한성공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도 2012년과 2015년 각각 성직자 납세를 결의했다. 대형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일부 교회 목회자들도 세금을 내고 있다. 승려의 경우 대다수가 고정적 수입이 없지만, 대한불교 조계종 역시 종교인 납세에 찬성 입장이다. 결국 종교인 과세에 지속적으로 반대 입장을 보이며 정치권을 압박해온 것은 일부 보수 개신교계다. 종교인의 세금 납부는 필요하지만, 정부의 종교에 대한 개입 우려가 있는 만큼 세금을 내도 자발적으로 내겠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었다. 개신교 내부에서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등 개혁성향 단체는 일찍이 과세에 찬성 입장을 보여 왔지만, 한기총은 2015년 소득세법 개정 당시 찬성한 당과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을 예고하는 등 지속적인 압력을 행사해 왔다. 지난해 말에는 종교인 과세 입법 폐지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한기총 내부에 구성하기도 했다. 한기총과 통합을 준비 중인 한교연 역시 김진표 위원장의 ‘유예’ 발언이 나오자마자 찬성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래목회포럼 사무총장인 박종언 목사는 6월 26일 이낙연 국무총리와 개신교단체가 만난 자리에서 “(종교인 과세가) 교계가 바른 소리를 못하도록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있다”면서 “정부가 이 일을 추진하면 한국은 종교 탄압국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회의 재정 투명성을 위해서라도 과세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개신교계 내부에서도 나온다. 매년 약 7조원이 종교단체에 기부되고 각종 보조금이 종교단체에 지원되고 있지만, 일부 대형교회는 재정을 공개하지 않는 데다 각종 비리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최근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문제는 대형교회”라면서 “종교시설에 대한 면세 특혜를 이용한 부동산투기는 너무나 흔한 비리에 속한다. 그 외에 극우단체들이나 극우집회들에 재정을 지원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세력이 교회임은 익히 알려진 바”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행의 종교인 과세 법안은 부패와 타락의 상징이 된 오늘의 개신교를 변화시키는 데 조금밖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며 대형교회 재정의 투명한 운영과 공개를 위한 시민사회의 압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등 개신교계 연대단체인 ‘교회재정건강성운동’ 역시 재정 투명성을 통한 신뢰 확보를 위해서라도 종교인 과세를 예정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단체는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500년 전 종교적 특권을 내려놓고 개혁하는 교회를 자처했던 전통 위에 있는 우리가 국민들 앞에 지금이라도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호소하며 성명서 말미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을 덧붙였다. ‘이르시되 그런 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누가복음 20:25·26)’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