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디지털 성범죄와의 힘겨운 싸움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로 시작… 경찰의 미온적인 수사로 더 힘들어

단언컨대 이 거대하고 단단한, 그릇된 디지털 문화의 벽 앞에서 혼자만의 싸움은 부당하다. 이미 디지털 성범죄는 일종의 암묵적인 문화가 돼버렸고, 방관과 외면은 디지털 성범죄가 이 사회의 문화로서 작동되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다. 우리의 공동체는 그 책임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는 2015년 10월 시작됐다. 이때껏 세상이 암묵적으로 외면했던 ‘음란물’이 게시되는 사이트들의 문제에 주목하는 일이었다. 이 사이트들에서 ‘음란물’이라는 이름으로 오고 가는 동영상은 실상은 상대방의 동의 없이 촬영된 연인 간 성관계 영상이나 술이나 약에 취한 상대방을 모텔에 데려와 성폭행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었다. 수천~수만 건의 강간 동영상뿐 아니라 버젓하게 강간 모의와 강간 후기가 게시되는 인간의 밑바닥이 그곳에 있었다. 일상에서도 은근히 이야기되는 야한 동영상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 이들은 마땅히 분노했고, 목소리를 냈고, 더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요청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줬기에 고발은 힘을 얻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비롯한 다양한 언론매체를 통해 소라넷은 고발됐고, 주목받았다.

그리고 그 뒷면의 절망 역시 있었다. 프로젝트의 일원들은 소라넷에서 일어나고 있는 강간 모의 글을 알았을 때 깊이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를 다시 충격에 빠트린 것은 경찰의 안일한 대응태도였음에. 팀에서는 집단강간을 모의하는 글을 올린 사람에게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인 척, 나도 동참하겠다며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던 적이 있었다. 그 일은 당장 일어나는 현실이었다. 실시간으로 피해자가 발생할, 그리고 가해자들이 모여들 현장이었다. 연기를 해 만나기로 약속하고 접선장소를 전달받았을 때 우리는 당연히 경찰에 신고했다. 급했다. 당장 출동이 필요했다. 녹취록에서 우리는 결국 거의 흐느끼고 있었다. 제발. 출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로 저기로 관할서가 아니라는 말만 오갔다. 그때마다 우리는 같은 설명을 반복했고, 경찰들의 목소리는 끝까지 느긋했다. 이후 녹취록을 작성하기 위해 그 녹음된 통화내용을 듣던 사람 역시 울었다. 술이나 약에 취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을 그 피해자는 절대로 남일 수 없었다. 우리는 숨넘어가도록 절박했다. 비슷한 일은 더 있었다. 이후의 우리는 경찰의 미온적인 수사태도를 언론과 국회에 전달하는 것에도 많은 신경을 쓰게 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2016년 2월 14일 서울 신촌 연세로에서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소라넷 등의 사이트를 통한 성폭력 모의와 성폭력에 사용되는 약물거래 등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 김정근 기자

인터넷에 수없이 쏟아지는 충격 영상

2016년 3월, 그때까지 사라지지 않은 소라넷과 아직까지도 실존하는 디지털 성범죄의 많은 문제점들을 더 알리기 위하여 리벤지 포르노(이별 분풀이로 사귀던 기간 촬영한 성관계 영상을 널리 유포하는 행위) 아웃(RPO)팀으로 2기 활동이 시작됐다. 2기 활동 역시 힘들었다. 소라넷보다 규모는 작아도 역시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수가, 그리고 그 영상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20여명의 팀원 모두가 당시 모니터링에 뛰어들었지만 역부족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1기 때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팀원들의 심적인 충격이 너무나 컸다. 누가 봐도 초등학생인 아이가 나오는 영상부터 시작해 충격적인 영상들이 인터넷에는 수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다시 충격을 받았다. 왜 사람들은 이걸 음란물이라고 불렀단 말인가. 그건 그저 범죄 피해자들의 피해 영상이었다. 심지어 그 영상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에 의해 잊힐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수많은 피해자들의 현실이었다. 어떻게 그것을 음란물이라는 점잖은 단어로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음란하다는 외면하기 편리한 단어로 이야기해선 안 될,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그것들을.

영상들을 가해행위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을 시작하는 동시에 우리는 이것을 더 이상 리벤지 포르노라는 기존의 단어로 부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성범죄 영상의 제작이 곧 가해행위라는 인식을 고취하고 논점을 피해자에게서 가해자로 옮길 필요가 있었다. 현재 단체의 이름인 디지털 성범죄 아웃(DSO)으로 변화한 이유가 이것이다. 피해영상을 시청하는 것 역시 디지털 성범죄임을 알리는 프로젝트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3기로 분류되는 현재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영상의 삭제와 차단을 요청하는 것을 넘어서, 직접 경찰에 고발장을 넣는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트위터와 P2P 사이트를 포함한 국내 각종 사이트를 모니터링하며 증거를 수집해 그대로 경찰에 고발했다. 동시에 국회 토론회 등에 참여해 디지털 성범죄를 알리고 이를 제대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제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벽에 부딪쳤다.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경찰은 우리의 신고를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신고하면 경찰이 어련히 해주지 않겠느냐, 안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뿐이라는 몇몇의 비난이 차라리 현실이기를 바랄 만큼.

국내 200개의 사이트 중 5개 사이트에서만 430건의 실제 강간영상을 가지고 경찰서를 찾아갔다. 때는 12월 말, 남성 몸캠 유출사건이 언론에서 활발하게 언급된 다음날이었다. “피해자가 신고를 했겠지요. 이런 건 피해자가 신고를 해야지.”, “이게 실제 강간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저희가 업무가 정말 많아요.”, “방통위에 삭제 신고를 하면 되는 일인데, 왜?” 경찰의 업무과중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경찰이 그렇게만 소극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되는 것을 믿는다. 다른 일이 더 많다고, 확실하지 않은 것 같다고, 그런 식의 이유를 대며 결국 문제를 회피한다고 해서 정말로 피해자가 사라지는 마법 같은 일은 없다.

디지털성범죄아웃의 온라인 포스터 / DSO 제공

경찰 “실제 강간인지 어떻게 알아요?”

이후에도 지방경찰청의 자문을 통해 실제 강간영상 중 더 심각한 건만을 추려, 해당 사이트 주소지의 관할 경찰서를 찾아가 2개 사이트의 61명 가해자를 고발했다. 역시 되지 않았다. 2시간 동안 모든 수사관들이 하던 일도 멈추고 활동가 2명을 둘러싸 받아줄 수 없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증거자료의 미비를 트집 잡으며 할 수 없다고 말했던 그 시간 동안 경찰이 스스로 증거자료를 수집했다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우리는 아직도 한다. 경찰이 원한 증거 수준은 경찰이 해야 할 일이었다. 다른 일정도 취소하고 다시 처음부터 증거를 수집하고 43명의 가해자를 신문고에 접수했다. 고발인 조사로 다음달 경찰서를 방문했을 때 일이 많다는 이유로 무조건 반려 처리하는 것을, 다시 2시간의 설득을 통해 얻어낸 결과가 한 달에 10건씩만 신고하라는 것일 때의 참담함을 우리가 이제야 말한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며칠 전, 2017년 2월 28일 검찰청으로 넣은 10건의 영상은 다행히 경찰이 접수를 받아줄 것 같다. 그렇지만 3월에도 접수할 거라는 말에 우리 업무도 많다는 말로 경찰이 화를 내었으니 이번 달 역시 설득과 투쟁의 기간일 것이다. 지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일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 한 발자국을 걷는다.

만약 누군가 한국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대처나 해결 방면에서 묻는다면, 우리는 지금의 계절을 비유하겠다. 이제 딱 3월 초, 봄이다. 봄이어야 할 텐데 아직도 겨울 같은 계절이다. 이제야 사람들에게 이 현실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있는 문제 제기의 단계에 불과하다. 뚜렷한 대처와 해결로 나아가기도 전에 이것이 문제인 것을 알리는 기초 다지기에도 바빠 아직 갈 길이 한참이나 남았다. 경찰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 디지털 성범죄가 무엇인지, 왜 그게 범죄인지를 인지시키는 초기단계부터 우리는 한 발씩 딛고 있다. 그만큼 기초적인 인식도 없던 것이 이 바닥의 추운 현실이다.

그렇지만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가 있다면 한 번 더 말하고 싶다. 드디어 봄이다. 아무도 이게 왜 심각한지, 왜 범죄인지를 몰랐던 무지의 겨울을 이제야 지나고 있다. 단 한 명이라도 지금이 잘못됐음을 알게 된다면 분명 변화의 바람은 온다. 그래서 당신이 그만치나 막막하고 힘들었을 것을 이해하게 된, 당신을 서슴없이 지지할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과거에, 혹은 지금, 아니더라도 미래에 이 글을 떠올릴지도 모르는 당신에게 말하겠다. 함께 싸워봅시다. 봄바람은 매서워 그리 호락호락하게 꽃을 허락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한겨울 홀로인 것보다야 함께 싹을 틔울 수 있는 봄이 덜 외롭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계속 도전하고 또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 믿자. 함께 괜찮아지자, 그러자.

<아뵤·에본 디지털성범죄아웃(DSO)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