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교수 주승현의 ‘우리는 모두 조난자다’](3) 실업과 호구지책 사이-하나원 퇴소 후 나는 곧 잉여인간이 되었다

남한에서 처음으로 굶어봤고, 돈 벌기 위해 주유소에 찾아가 면접을 봤지만 퇴짜당하기 일쑤였다. 각종 구인 광고지는 집에 켜켜이 쌓여갔지만 탈북민을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나원(통일부 소속 탈북민 정착 지원기관)에서 운 좋게도 어마무시한 경쟁률을 뚫고 서울 변두리의 임대주택에 배정됐다. 대부분의 탈북민은 수도권 거주를 선호하는데, 그에 비해 임대주택은 매우 제한적이다. 때문에 수도권 지원 추첨에서 탈락하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산간오지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하나원 교육과정에서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승자 독식의 원리를 간접적으로 배웠다면, 거주지 선택을 통해 직접적으로 그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강한 희비가 교차하는 수도권, 혹은 산간오지라는 ‘복불복’ 대신 중간지대(도시)를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방편도 있다. 한때 주거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는 추첨제를 두고 탈북민을 원자화·분산화시키려는 정부의 의도적 정책이라는 음모론(?)도 제기됐지만 수도권 주택의 경우 선호도에 비해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탈북민이 자기들만의 게토(Ghetto)를 형성해 사는 것보다 더 많은 지역에 고르게 분포되어 뿌리내리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서울 변두리 임대주택에서 사회생활 시작

하나원에서 퇴소해 허름한 임대주택에 들어섰을 때, 나를 기다린 것은 먼지와 때가 가득한 작은 공간뿐이었다. 고립과 무기력감이 밀려왔지만 부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벗어나야 했다. 휴대전화를 개통하기 전이라 공중전화로 나를 담당한 경찰에게 전화를 했다. 은행에서 돈 찾는 법도, 마트를 이용하는 법도, 지하철 타는 법도 몰랐던 터라 수첩에 줄줄이 적어 넣고 물어보자 수화기 너머에서 조금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혼자서 40명의 탈북자를 담당하고 있는데, 그 중 어르신이 절반이다. 이번에 새로 온 어르신들을 또 담당해야 하는데, 너는 젊었으니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먼저 해봐. 나중에 들를게.” 나는 북한에서조차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다. 군부대 지역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비무장지대에서 군복무를 시작했고, 휴전선을 넘어서 이곳에 왔다. 다른 탈북민처럼 중국이나 제3국을 체류하거나 경유하면서 터득한 시장 경험도 없었다. 차라리 외계인에 가까웠던 나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홀로 절망과 싸울 채비를 해야 했다.

2009년 7월 탈북민 정착시설인 하나원에서 열린 개원 10주년 기념식 모습. / 연합뉴스

하지만 며칠 후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하나원에서 한동안 함께 지낸 형인데, 가깝게 지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걱정되어 찾아왔다는 얘기에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그는 다른 탈북민들은 중국에서 오래 체류해 한국의 사정에 밝고 나만큼의 어려움은 겪지 않는다고 했다. 구석구석 방 청소도 해주고, 가정용품도 사서 사용법도 일일이 가르쳐주는 그에게서 가족의 냄새가 났다. 허물이 없어지고 난 뒤, 브로커 비용이 부족해 중국에 있는 처자식이 입국하지 못한다고 울먹이는 그에게 얼마의 정착금이 들어 있는 통장을 선뜻 내어주면서 나도 설렜다.

그건 혈혈단신 무연고인 한국에서 어쩌면 가족이 생긴다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몇 달 후 그는 연락을 끊었다. 얼마 안 되는 정착금을 가져간 이는 같은 탈북민이었고, 그 기간 불량 휴대전화와 짝퉁 물건을 팔아 생계비마저 챙긴 이는 한국인이었다. 점점 알 수 없는 분노와 상대적 박탈감이 커져갔고, 동시에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하루하루 폐인이 돼 갔다. 수개월 만에 체중이 10㎏이나 줄었다. 몸서리칠 만큼 힘든 상황을 고함과 통증으로 읍소해도 누구 하나 따뜻하게 손 내미는 이는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난해 여름, 강화도에서 열렸던 탈북민 모임에서 그 형을 다시 만났다. 자신도 그 시절 너무나 힘들었다고 했고, 또 미안하다고 했다. 지금은 가족도 있고 직장생활을 접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 가족이 그때 중국에 있었던 가족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어뒀다. 다만 그를 아는 다른 사람이 얼마 전 그가 파산신청을 했으며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담당 경찰도 그간 열 번 가까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바뀔 때마다 매번 미안하다는 인사로 신고식을 한다. 형사라고 불리는 어감이나 경찰이라는 신분 때문에 탈북민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아무런 기반도 연고도 없는 이 사회에서 그들의 수고와 노력은 깊다. ‘정보과 형사’라는 이름보다는 전화라도 할 수 있는 유일한 남쪽 사람인 경우가 많다. 매번 바뀌긴 했지만 나의 학부 졸업식과 석·박사 졸업식 앨범에서 늘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한국 사회에 발 딛는 탈북민을 위한 정책도 시행됐다. 대한적십자사 등에서는 먼지가 쌓인 집들을 청소해주고, 지역 곳곳에 등장한 ‘하나센터’에서는 하나원에서 퇴소한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도우미 역할도 한다. 최근에는 입국과 동시에 실업자가 되어버리는 탈북민을 대상으로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다만 실제 취업은 별개 문제다.

목숨을 걸고 비무장지대(DMZ)를 넘어온 나는 곧바로 잉여인간으로 전락했다. 북한도 아닌 남한에서 처음으로 굶어봤고,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주유소에 찾아가 면접을 봤지만 퇴짜당하기 일쑤였다. 벼룩시장 등 각종 구인광고지는 집에 켜켜이 쌓여갔지만 탈북민을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북한군 출신의 날카로운 인상과 중국 동포보다도 더 어수룩했던 행동거지의 부조합이 추가돼 나는 번번이 호구지책에 실패했다.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집 근처의 꽃집 아저씨와 슈퍼마켓 아주머니를 도와 소일거리를 만들어 갔고, 군에서 배운 독도법(讀圖法)으로 취직자리를 알아보며 지리도 익혔다. 그러던 중에 종로에 있는 일식당에 취직했다. 내가 맡은 업무는 배달과 주방일이었다. ‘한국은 북한과 달라서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하나원의 교육을 믿고 열심히 일했다. 동료들이 8시간 일할 때 나는 12시간 일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던 배달과 주방일 외에도 일식집의 온갖 어려운 일을 도맡아 했다. 드디어 첫 월급봉투를 받은 날, 나는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동료들보다 더 일했음에도 월급은 그들보다 50만원 적었던 것이다. ‘노력과 대가는 대체적으로 비례한다’는 상식적인 논리조차 탈북민에게는 예외였다.

똑같이 일했지만 남한사람보다 적은 월급

2017년 현재 탈북민은 3만명을 넘어섰다. 내가 입국했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사정은 나아졌을까. 지난해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탈북민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에 비해 더 많지만 월 평균소득은 76만원 정도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에 비해 나아진 것이 아니라 더 악화된 것이다. 탈북민의 평균소득은 146만원으로 한국 출신 노동자 평균의 절반도 안 되며, 탈북민 실업률도 전체 국민 실업률보다 4배 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죽하면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탈출한 태영호 전 공사마저 최근 기자회견에서 “귀순 전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의 실업률과 평균소득을 보면서 과연 저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토로했을까. 물론 입국과 동시에 실업과 빈곤의 늪에 빠지는 보통의 탈북민과 다르게 북한의 금수저와 엘리트들은 국책기관 취직과 함께 더 호의적인 대우를 받는다. 태영호 전 공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뿐만 아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탈북민의 범죄 피해율은 24.3%에 달한다. 이는 한국에서 태어난 이들의 범죄 피해율 4.3%의 5배가 넘는 수치다. 사기 피해율도 탈북민 5명 중 1명꼴로 한국인 피해율의 43배에 달한다. 지난해 한국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7.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였으나, 탈북민의 자살률은 3배에 달하는 16% 이상으로 나타났다. 2012년까지 총 22명이 자살했고, 2015년 한 해에만 9명의 탈북민이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자살로 목숨을 끊은 5명 중 3명은 20대 청년들인데, 내 주변의 젊은 탈북인 2명도 자살했다. 이처럼 탈북민 자살자가 급증하는 것은 한국이라는 ‘따뜻한 남쪽나라’에서의 삶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고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죽하면 탈북민 5명 중 1명은 평소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지난해 3월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한 탈북민이 20.8%에 달했을까.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탈북민의 한국 사회 적응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탈북민 스스로의 의지, 탈북민 관련 정부 정책, 탈북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라는 3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한다고 본다. 대체로 동의한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는 탈북민의 의지는 과거에 비해 높게 나타나고 있다. 2010년 이전까지는 주로 정치·경제적 이유로 탈북했다면, 최근에는 보다 나은 사회에서 살겠다는 의지로 한국에 입국하는 이민형·목적형 탈북민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탈북민의 특성을 고려해 정부 정책도 지원형에서 자립형 정책으로 전환돼 왔다고 볼 수 있다. 하나원 교육프로그램의 다양화와 하나센터(탈북민 지역적응센터) 운영, 하나재단(탈북민 지원재단)을 통한 생활안정 지원 등 여러 가지 노력을 진행하고 있지만 실질적 개선은 여전히 답보상태다.

정작 탈북민이 가장 문제로 꼽는 것은 경제적 빈곤이나 정착 관련 정책보다는 탈북민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편견과 차별, 배제가 압도적이다. 이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배태하고 있는데, 첫 번째가 오랜 분단시대가 만든 적대와 대립의 아비투스(habitus), 즉 관습의 차원이다. 북한에 대한 반공·반북 의식은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탈북민에게까지 그대로 투영된다. 북한의 연평도 폭격이 있던 날, 어느 면접장에서 “당신네 북한은 왜 저러냐?”고 내게 묻던 면접관에게 배태적 타자성을 확인했다. 두 번째는 남북 체제경쟁 이후 나타난 우월적 인식에 기인한 태도 변화다. 못나고 가난한 아우를 바라보는 묘한 승리자적 감정이다. 미디어에서부터 일상적인 자리에서까지도 끊임없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 부정해야만 생존과 생계의 기회를 얻는 고향인들을 보노라면, 탈북민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는 사람들과 오버랩돼 늘 이질적이고도 불편하다. 세 번째는 무한경쟁사회가 만든 소외와 배제다. 탈북해 소외된 채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사회와 색안경을 끼고 이들을 배제하려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 북한주민 알까

탈북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과 차별, 그리고 배제에 대해 필자는 수년 전부터 우려를 표해 왔지만 크게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어쩌면 의도적인 외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 언론, 전문가들이 빼놓지 않는 단골 메뉴가 됐다. 일찌감치 도마 위에 올려놓고 관심을 가졌더라면 오늘처럼 공익광고나 대국민 캠페인을 통해 탈북민에 대한 작금의 사정에 대하여 떠들고 있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 실재하고 있는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 배제가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질까 하는 우려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북한 주민들은 당국의 선전을 통해서든 탈북민을 통해서든 한국이 지독한 경쟁사회임을 대부분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보다는 나을 거라는 희망과 한국 주민은 한 동포라는 믿음을 갖고 탈북한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한국 사회의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 배제라는 점이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북한 주민들이 안다면 친남한 감정은 고사하고 통일마저 거부할 수 있음을 지금이라도 아프게 생각해야 한다.

탈북 교수 주승현의 ‘우리는 모두 조난자다’

일식집에서 첫 월급을 받던 날, 나는 그때 처음으로 공부를 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자유가 존재하는 사회에 온 것은 맞지만 탈북민 출신도 똑같이 존중받고 살기 위해서는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아픔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평생을 열등한 타자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깨달음이기도 했다. 공부를 시작해도 늦지 않은 나이와 한국에 정착한 지 몇 달 안 되는 시기에 결심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얼마 전 지인이 입국한 지 몇 달 안 된 탈북청년 여럿을 데리고 나에게 온 적이 있었다. 대기업에서도 근무해 보고 박사까지 된 탈북 선배로서 그들의 학업준비와 직업진로를 상담해주라는 취지였다. 그런데 유독 한 친구만이 내내 고개를 떨어뜨리고 내 시선을 회피했다. 왜 그러냐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너무 힘들어서 그럽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뱉고 다시 머리를 푹 숙였다. 나도 모르게 와락 그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제했다. 문득 고통스러워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러대도 누구 한 명 손 내미는 이 없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이들에게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돌아서는 길은 이 생각 하나로도 충분히 힘들었다.

<주승현(전주 기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