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와 롯데마트는 가습기 살균제 시장 점유율 70%가 넘었던 옥시 모방 제품을 구두약 만드는 용마산업사에 의뢰했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PHMG의 흡입독성에 관한 정보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난 6월 20일 이른 아침 충남 서산 수석농공단지 내 공장 건물 3개동에서 불이 났다. 유류와 화공약품을 보관한 창고에서 시작한 불은 인화성이 강해 3개동 전체를 태우고 3시간 만에 진화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화재가 난 공장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가운데 한 곳인 용마산업사(대표 김종군)였기 때문이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는 가습기 살균제 시장점유율 70%가 넘었던 옥시 모방 제품을 구두약 만드는 용마산업사에 의뢰했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PHMG의 흡입독성에 관한 정보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구체적인 매뉴얼도 없이 함량, 농도 등 용마산업사가 결정해서 제조했다. 옥시 제품을 베껴 만든 가습기 살균제는 2004년 ‘홈플러스 PB 가습기 청정제’와 2006년 ‘롯데마트 PB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로 판매됐다. 이 회사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검찰에 의해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공장 화재와 관련해 경찰은 방화 등의 연관성까지 수사하고 있다.
폐결핵·신종플루 의심했던 산모, 폐이식
1997년 삼성그룹의 삼성물산은 대구에 홈플러스 1호점을 개설했다. 1999년 영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유통회사인 테스코(TESCO)와 50대 50 합자 투자로 삼성테스코를 설립해 이후 매장 141개, 매출 11조원의 국내 2위 유통회사로 성장했다. 2011년 삼성은 지분을 테스코에 매각했고, 법인명을 삼성테스코에서 홈플러스로 변경했다. 2015년 테스코는 홈플러스를 7조2000억원에 MBK파트너스에 넘겼다. 홈플러스가 자체브랜드(PB) 가습기 청정제를 판매한 기간은 2004년부터 2011년까지다. 이 기간 홈플러스를 직접 소유하고 운영한 회사는 삼성테스코이며, 삼성물산과 영국 테스코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직·간접으로 책임이 있다. 홈플러스 PB제품으로 인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는 대형마트 PB제품 가운데 롯데마트 다음으로 많다.
이정화씨는 콜센터 슈퍼바이저로 일하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남편을 만나 2009년 봄 결혼을 했다. 그해 늦가을 자연분만으로 큰아들을 출산했다. 집안의 습도를 조절하려고 가습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홈플러스에서 세균으로부터 안전하다며 판매하는 PB제품인 가습기 청정제를 사왔다. 가습기 살균제는 겨울철만 사용했다. 2010년 가을 딸을 임신했다. 그해 겨울에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이씨는 2011년 3월부터 숨이 차는 증상이 있었다. 동네 산부인과에서는 임신 중에 그럴 수 있다고 해서 한 달을 버텼다. 4월 25일 가슴에 통증이 왔고 숨이 차서 일어나기조차 어려워져 대전성모병원에 갔다. 태아에게는 문제가 없었지만 검사를 하기 위해 입원을 했다. 폐가 좀 이상하다며 폐결핵을 의심해서 이틀간 독방에 격리돼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폐결핵이 아니라고 하더니 이번엔 신종플루 검사를 했다. 폐결핵도, 신종플루도 아니었다. 폐 이상을 확인하기 위해서 조직검사를 해야 했다. 뱃속 태아가 있어 검사를 할 수 없으니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그렇게 3일간 검사로 시간만 허비했다.
4월 28일 밤 구급차로 서울성모병원 중환자실에 이송됐다. 상황은 급박했다. 폐가 이상한 원인을 찾기 위해 기관지 내시경, 약물치료 등이 필요했다. 검사를 위해 뱃속의 태아 강제출산 이야기가 나왔다. 산부인과 협진 의사는 임신 31주라서 37주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고, 중환자실에서는 오늘 당장이라도 산모가 사망할 수 있다고 했다. 아기를 포기하는 각서를 쓰고 강제출산했다. 다행히 아기는 1.7㎏으로 태어났고,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이 지나 2㎏이 되어 퇴원했다. 무사히 아이는 출산했지만 이씨 몸에는 바로 인공폐(에크모)가 장착됐다. 인공폐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최대 20일이며, 그동안 폐이식밖에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친정아버지가 장기이식센터에 폐이식 대기자 등록을 했다. 3주를 버텨 공여자가 나타났다. 임신 전 63㎏이던 몸무게가 32㎏까지 빠졌다. 서울성모병원은 폐이식을 할 수 없어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다.
쌍둥이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5월 25일 폐이식 수술을 했다. 퇴원 후에도 1년간 매주 서울을 오가며 병원을 다녔다. 약이 몸에 적응하고 32㎏이던 몸무게가 40㎏이 되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동안 아들은 시어머니가 돌봐 주고 딸은 친정집에서 키워줬다. 지금은 몸이 좀 나아져 아이들을 데려와 네 식구 모두 함께 살고 있다. 몸무게는 41~42㎏에서 더 늘어나지 않고 폐이식으로 인해 약은 평생 복용해야 한다. 이씨 남편과 두 아이(딸 태아 노출)는 2015년 3차 피해신고를 해서 현재 정부 조사 중이다.
대전에 사는 김씨는 2003년 20대 후반에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다. 몇 년 후 대학교수로 발령 받았다. 결혼하고 보니 하는 일이 잘 풀렸다. 그런 부부에게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몇 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결혼 5년 만에 기다리던 아이가 생겼다. 그것도 쌍둥이였다. 무럭무럭 자라는 쌍둥이 형제는 부부의 즐거움이었다. 2009년 10월 첫돌이 지날 무렵 결혼하면서 선물 받은 가습기가 생각났다. 마침 TV에서 가습기 살균제 광고를 보았다. 집 근처 홈플러스에 들러 생필품을 사면서 진열된 가습기 살균제의 제품 표시를 꼼꼼히 살펴봤다. 홈플러스 PB제품인 가습기 청정제의 제품특징란에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하여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TV 광고는 아기에게 사용하는 제품으로 소개하고, 진열된 제품에도 안전한 성분을 사용했다고 표기돼 있어 아무런 의심 없이 구입했다.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를 사용한 지 다섯 달 됐을 때 쌍둥이 첫째가 기침을 하고 열이 났다. 동네병원 의사는 감기증상이라고 했다. 처방해준 감기약을 한 달 동안 복용했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급기야 첫째아이 입술이 파랗게 변하는 청색증이 나타났다. 그때서야 의사는 큰 병원, 대학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서둘러 대전 을지대학병원에 갔다. 검진 결과 폐 위쪽이 하얗게 손상돼 입원을 해야 했다. 열흘 입원했지만 생태는 더 심각해졌다. 의사는 서울삼성병원이나 아산병원으로 전원할 것을 권유했다. 김씨 가족은 그 길로 서울삼성병원으로 병실을 옮겼다. 다음날 의사가 회진을 왔다. 부부와 잠깐 대화를 나누던 의사는 쌍둥이 둘째를 보더니 상태가 이상하다며 응급실로 가보라고 했다. 둘째도 이미 폐손상이 진행 중이었다. 첫째아이가 더 심각해 고용량 스테로이드, 말라리아 치료제, 암 치료제 등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했다. 첫째아이는 중환자실에서 다섯 달을 버티지 못하고 2010년 9월 하늘나라로 갔다. 부부는 둘째아이 살리기에 매달렸다. 김씨는 다니던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김씨 아내는 육아휴직계를 냈다. 둘째아이를 3년간 병간호했지만 끝내 살릴 수 없었다. 둘째도 형을 따라 2013년 1월 하늘나라로 갔다. 그해 10월 부부에게 반가운 일이 생겼다.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또 올해 4월에는 여자아이도 태어났다. 부부에게 돌이켜보면 가습기 살균제는 너무나 황당한 제품이었다. 농약에나 쓰이는 살균제가 어떻게 구두공장에서 제조되고 흡입독성조차 확인을 하지 않고 대형마트 PB제품으로 판매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연년생 아들을 잃은 아빠 유전검사까지
지난 2월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피해자들이 형사고발한 사건과 관련해서 현장검증할 집을 알아봐 달라는 요청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입은 집에서 계속 살고 있는 가정을 찾고 있었다. 피해 시점이 최소 5년이 지났고, 사망자가 있는 가정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사례가 대부분이다. 형사고발에 참여한 가정을 일일이 연락하던 중 김씨 가족이 이사를 가지 않고 계속 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검찰에 김씨 집을 소개해주었다. 검찰이 참사를 일으킨 기업 관계자를 구속기소하고, 법원은 몇몇에게 실형선고했다. 당연히 김씨의 대전 집에서 현장검증을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검증을 못했다고 한다. 김씨는 홈플러스와 민사소송을 하면서 변호인이 현장검증이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했다. 김씨는 검찰에 현장검증 거부의사를 표시하고 민사소송을 마무리했다. 민사소송이 가해기업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 합의하고 소송을 취하했다. 당시 홈플러스 관계자는 구속기소되기 전이었다. 김씨는 현장검증을 못한 것이 자꾸 후회됐다.
경기 안산에 사는 안희준씨는 친구 결혼식장에서 만난 동갑내기와 2005년 결혼했다. 2007년 큰딸 혜림이를 낳고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홈플러스 세제코너에 진열된 가습기 살균제 가운데 홈플러스 PB제품이 다른 업체 제품에 비해 저렴해서 구입했다. 2009년 첫째아들 재범이를 낳았다. 혜림이 때 쓰던 가습기 살균제를 재사용했다. 재범이가 5개월쯤 지나 기침을 하고 힘이 없어 보여 동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의사는 큰 병원에 가보라고만 했다. 고려대병원에 입원했다. 폐섬유화가 돼 있다고 했다. 제대로 손도 못 써보고 재범이는 세상을 떠났다.
재범이를 가슴에 묻은 부부는 다음해 9월 둘째아들 서진이를 낳았다. 서진이가 3개월쯤 됐을 때 첫째와 똑같은 증상이 보였다. 이번에 바로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갔다. 수원 아주대학병원에서도 폐섬유화 진단을 했다. 둘째 서진이는 2010년 마지막 날 하늘나라로 갔다. 서진이를 화장하는 날 납골당에 안치한 첫째아들 유골을 동생 서진이와 함께 뿌려 줬다. 첫째아들은 5개월, 둘째아들은 3개월 만에 보낸 부부는 한없이 슬퍼했다. 연년생 아들을 잃은 부부는 원인을 알 수 없어 혹시 유전이 아닌지 해서 유전검사까지 했다. 검사 결과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 후로 아이를 낳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 또 아이들을 잃을 것 같아 불안하고 두렵기까지 했다. 방송에 폐손상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고 나오고 집에서 사용했던 홈플러스 제품을 보고 그때서야 두 아들을 잃은 원인을 알게 됐다. 안씨는 두 아들이 태어나 잠시 세상에 있는 동안 지하방 생활을 하면서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를 본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슬픔의 나날을 보내던 안씨 부부에게 반가운 일이 생겼다. 일란성 쌍둥이를 임신했고, 2013년 4월 다시 두 아들이 생겼다. 재범이와 서진이는 1차 조사에 각각 3단계와 4단계 판정을 받았다. 가습기 살균제 노출량이 비슷하고 폐섬유화 질환이 같았지만 판정은 달랐다.
<임흥규 환경보건시민센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