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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부추기는 ‘원전 안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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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지진에도 “영향 없다”는 발표 불구 국민들 좀처럼 안심 못해

지난 8월 원자력문화재단은 원자력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소가 ‘안전하다’는 의견은 38.0%에 불과했고, ‘안전하지 않다’는 57.5%였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있기 전인 2010년에는 응답자의 71%가 ‘안전하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는 2011년 3월 11일 이후 역전된다. 같은 조사에서 원자력 정보에 대한 정보제공자 신뢰도도 물었다. 복수의 응답을 허용한 질문에서 응답자들이 가장 신뢰할 제공자로 꼽은 것은 ‘전문가(58.5%)’였다. 환경단체는 38.6%, 국제기구 35.3%가 뒤를 이었다. 반면 정부 관계자는 12.3%에 그쳤고,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등 원자력 규제기관은 11.1%에 그쳤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 안전신화는 무너졌고, 원전이 안전하다는 일관된 정부의 홍보를 대부분 신뢰하지 않았다.

지난 9월 12일과 19일 경주에서 각각 규모 5.8, 4.5에 달하는 지진이 발생했다. 경주 인근에는 월성원전 1~4호기가 운행 중이다.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한 당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다음과 같은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2016년 9월 19일 오후 8시33분쯤 경주 남남서쪽 11㎞ 지점(규모 4.5)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발전소 안전운전 영향은 없었고, 이번 지진으로 경보용 지진감지기는 동작하지 않았다. 다만, 경보용으로 사용되지 않는 고리발전소 건물 외부에 설치된 신호기록용 지진계 1개에서 0.0119g이 기록되어 관련 절차에 의해 발전소 설비점검을 수행하였으며 그 결과 이상 없음을 확인하였다.” 원안위도 같은 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금일 9월 19일 20시33분쯤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11㎞ 지점에서 발생한 규모 4.5의 여진 관련, 원전의 운전에는 영향이 없음을 확인함. 원안위는 이번 여진의 영향으로 원자력발전소에서 관측된 최대 지진값이 0.0137g로 관측되어 설계지진값인 0.2g에 못 미친 것으로 확인되었음”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모두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원전 안전신화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수원과 원안위의 발표는 시민들을 안심시키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시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일방적인 홍보가 아닌 정보제공과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의 말이다. “한수원 측에서 거듭 안전하다고 말하고, 시민들은 이를 믿지 못하는 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단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단순히 정보를 안다, 모른다의 문제가 아니다. 민간 혹은 외부의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요구하면 크로스 체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그런 게 전혀 안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불안감만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단순하게 안전하다고, 점검했으니 괜찮다고 한다면 현재의 혼란을 막을 수 없다.”

부산 앞바다에 위치한 고리원전. / 연합뉴스

부산 앞바다에 위치한 고리원전. / 연합뉴스

원전에 대한 정보는 국가안보, 사회적 파장 등의 이유로 좀처럼 공개되지 않았다. 원안위 위원마저 정보 접근에 과도한 제한을 받고 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의 말이다. “원안위 위원조차 전문가를 대동하고 자료를 볼 수 없다. 오직 본인만 열람할 수 있다. 복사도 못한다. 원전을 지으려면 부지조사보고서를 작성하게 돼 있다. 원전부지 320㎞ 반경 이내 광역조사, 40㎞ 이내 조사, 8㎞ 이내 조사 등 원전을 지으려는 지역에 지질, 단층, 활성단층 등이 어떻게 돼 있는지 평가한 보고서다. 이를 바탕으로 내진설계를 어떻게 했는지까지 나와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이 전부 다 비공개다. 원전과 관련해서는 전문가가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정부의 보고서를 볼 수 있는 정부 용역 전문가다. 이들은 보고서를 열람한 내용을 외부에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각서를 쓴다. 다른 전문가들은 자료가 비공개이다 보니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추정하면서 이렇지 않을까, 저렇지 않을까 계속 추측해나가는 부류다.”

내진 설계 내용은 전부 다 비공개
정보는 불투명하고 때로는 왜곡된다. 양이원영 처장의 설명이다. “정부 쪽 관계자의 말을 국민들이 신뢰하지 못한다는 게 유감스럽다. 정부의 이야기가 정보가 아닌 홍보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원전과 관련해 정부 측 입장을 대변하는 과학자가 과학자답지 않게 말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러니 불신이 쌓이게 되고, 모든 게 정보 투명성에 대한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원안위에 지질 관련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는 한 교수는 2015년 2월 노후원전인 월성1호기 수명연장 토론회에서 “국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대 지진 규모가 ‘진도 6’ 정도인데 전문가들은 ‘진도 7’까지 예상해 보수적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교수는 이번 지진 이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규모 7.0에 육박하는 지진도 계산이 가능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굉장히 많은 지진피해 기록이 남아있고, 그 중 일부 지진에 한해서는 규모 7에 육박하는 지진피해에 해당되는 것들이 나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6.5를 넘는 지진이 희박하다는 기상청의 말은 크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며 입장을 바꿨다.

정부, 산업, 학계 등 폐쇄적으로 결합한 카르텔 때문에 원전 안전신화가 형성돼 왔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한수원을 규제한다며 출범한 원안위는 한수원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고 비판받아 왔고, 원자력문화재단은 막대한 홍보비를 쏟아부어 일방적으로 원전을 미화한다고 지적돼 왔다. 원자력 안전규제 전문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도 원자력 안전신화를 홍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후쿠시마 사고로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던 2011년 3월 18일 윤철호 당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은 국회에서 열린 원전 관련 정부 부처 상황보고회에 참석해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의 내진 성능은 설계조건이 되는 지진 규모(6.5)보다 갑절 이상의 충격이 와도 견딜 수 있는 수준”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폐쇄적인 카르텔이 만든 원전 안전신화야말로 갑작스런 재난 앞에 무엇보다 위험한 요소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100시간을 기록한 <관저의 100시간>(기무라 히데아키·후마니타스)은 원전 카르텔이 재난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사고 이후 보도를 통해, 숨겨졌던 진실이 하나씩 밝혀졌다. 원전의 안전 심사를 맡은 내각부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들은 원자력 업계의 기부금을 받는 데 매우 익숙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원 및 비상근 심사위원이었던 89명 중 마다라메 하루키 위원장 등 24명이 2010년도까지 5년간 원자력 관련 기업 및 업계 단체로부터 총 8500만 엔을 기부받은 사실이 알려진 것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였다…. 보안원은 원전사고에 대응하는 방재지침을 국제기구에 맞게 개정하는 데 강력히 반대했고, 기존 원자로의 안전성 의혹이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원전 중대사고 대책을 연기했다.”

원전 수소폭발로 폐허로 변해버린 후쿠시마 원전 1호기. / AP연합뉴스

원전 수소폭발로 폐허로 변해버린 후쿠시마 원전 1호기. / AP연합뉴스

원안위 출범 이후 부결 단 1건도 없어
지진 발생 이후, 원전 안전신화를 지탱해 왔던 정보 은폐와 내부 카르텔에 대한 새로운 의혹들이 다시 하나씩 제기되고 있다. 9월 21일 소방방재청(현 국민안전처)의 보고서가 논란이 됐다. 2012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작성한 이 보고서에는 고리원전에서 직선거리로 5㎞ 떨어져 있는 일관단층과 월성원전에서 직선거리로 12㎞ 떨어져 있는 울산단층이 모두 활성단층이라고 분석했다. 그 결과 최대 진도 8.3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예측이었다. 이 보고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한수원이 보고서를 알고도 이를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소방방재청이 용역을 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활성단층 지도 및 지진위험지도 제작 연구개발 용역’에 참여한 적이 없고, 자료 비공개에 따라 연구 결과를 알 수도 없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은 한수원과 원안위의 카르텔 의혹을 제기했다. 고 의원에 따르면 2011년 원안위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원안위는 총 58회의 회의를 개최해 167개의 안건을 상정했는데, 이 중 부결 건수는 단 1건도 없었다. 147개의 안건이 가결됐고, 19건은 계속 심의, 1건은 철회됐다. 고 의원은 “부결이 단 1건도 없고, 찬성률이 100%라는 점은 원자력에너지 사용의 안전 및 규제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수렴하는 원안위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원안위 전문위원들은 600억원에 달하는 원자력 관련 정부기관 연구용역을 수탁한 것이 확인돼 논란을 빚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의 ‘원안위 전문위원 원자력 이용 및 진흥기관 연구용역 수탁 현황’ 조사 결과, 전·현직 원안위 전문위원 32명이 수행한 연구과제는 모두 84건이며, 연구용역 계약금액은 571억8215만원이었다. 전문위원 1인 평균 2.63건의 연구를 진행했고, 1인 평균 연구용역 계약금은 17억8694만원이었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의 저자 강은주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에서 원전을 최초로 도입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원전은 원전 내부의 이해관계를 동력으로 그들만의 안전신화를 만들며 소통 없이 폐쇄적으로 진행돼 왔다고 말했다. “박정희 정부가 최대 치적 중 하나로 꼽았던 게 고리1호기다. 한국 최초의 핵발전소인데, 1972년 4월 착공해 1977년 완공했다. 이 과정에서 고리 주민들에게 어떤 설명이나 해명도 없었다. 주민들은 한국전력이 고리에 커다란 ‘전기공장’을 짓는다고만 알고 있었기에 오래 살던 마을에서 쫓겨나야 했다. 발전소가 들어서고 6년이 지난 1983년 자꾸 기형 미역이 채취되자 어민들은 기형 미역을 들고 한국전력에 갔지만, 한국전력은 쓸데없는 소리로 치부하며 어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결국 주민들이 당시 7만원의 조사비를 들여서 인근 수산연구원에 연구를 의뢰해 기형 미역이 핵발전소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단 이때만의 일이 아니다. 이후에도 원전과 관련해 이러한 은폐, 불통은 계속됐다.”

강 연구위원은 지금 한국에는 무엇보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란 위해(risk)에 대해 위해 평가자, 위해 관리자, 소비자, 업체, 학계 및 타 이해관계자 간에 의견을 지속적으로 주고받는 과정을 의미한다. “정보 없이 안전하다고 믿으라는 것은 무당이나 점쟁이의 역할이다. 안심과 안전은 다른 문제다. 안전은 기술의 영역이자 소통의 영역이다. 공론의 장을 만들어 정치가 원전을 둘러싼 갈등의 이면을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n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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