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여성의 미래 없이는 국가의 미래도 없다

반여성적 정책 펼쳐온 정부는 ‘국민의 절반’을 껴안아야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는 성평등(gender equality)의 실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성평등이라는 단어가 여성가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라는 정부 부처의 이름 이외에 별 의미를 갖지 못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성평등이란 여성과 남성의 기회와 조건을 동등하게 맞추는 것을 넘어, 과거의 누적된 차별에 대한 시정을 포함하는 실질적 평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차별의 시정과 관련해 법과 제도를 만들 었을 뿐 그것들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다. 또한 이명박 정 부 이후 현재까지 그나마 법과 제도를 만드는데 협력해 왔던 여성운동 진영을 멀리함으로 써 “여성정책은 실종되었다”는 주장까지 대두 되었다. 출산율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그동안 여성에게 주어진 많지 않은 권한의 하나인 낙태를 금지시키는가 하면, 여성운동 경력이 거의 없는 단지 ‘생물학적 여성’을 여성정책 전담 부처의 수장으로 임명했다. 이런 최근의 사태를 두고 남성들조차 ‘여성에 대한 모욕’이라고 주장할 만큼 한국 정부는 여성정책의 이름 아래 반(反)여성적 정책을 펼쳐 왔다.

그리고 그 결과의 하나가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다. 10여년 이상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그다지 높아지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어린이집을 더 짓고 양육수당을 지급하면 아이를 더 낳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하지만, 계산 착오다. 출산 이전에 결혼부터가 문제다. 아니 결혼보다 여성들의 생존 자체가 문제다.

지난 5월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추모 참여자 인권침해에 대한 공동대응 기자회권을 갖고 있다. / 서성일 기자

막대한 예산 쏟아도 세계 최저 출산율
지난 10여년간 여성 노동시장의 동태를 정리한 필자의 연구 결과를 간략히 소개하면,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따라 사회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여성 고용이 확대 되었다. 그 결과 중간임금 계층이 확대되었 지만, 청소년층과 노년층 여성의 저임금과 성별 임금격차가 지속되어 왔다. 특히 기업 내부 노동시장의 장벽이 높아지면서 고임금 일자리에 대한 여성의 접근 기회가 줄고 비정규직 여성을 중심으로 30인 미만 영세기업에의 집중도 심화되고 있다.

<표 1>과 <표 2>에서 2004년부터 2014년 까지 연령별 여성 취업자의 임금구조 변화 를 살펴보면, 15~24세 여성의 경우 고임금층이 줄고 중간임금과 저임금이 늘었다. 또 25~34세 연령층도 중간임금이 늘고 저임금이 줄었지만, 고임금층이 줄었다. 결국 10대 부터 30대 중반까지 여성들의 노동시장 상황은 고임금층은 줄고 중간임금이 늘거나(20 대 중반~30대 초반), 저임금과 중간임금으로 집중(10대~20대 초반)돼 전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략 20대 중반 이후 30대에 여성들이 결혼을 생각한다면, 지난 10년간 이들은 점점 더 결혼하기 어려운 조건 쪽으로 이동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통념상 여성은 결혼 후 출산과 육아로 인해 일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그 결과 경력단절을 경험하며, 이를 회피하려는 심리가 저출산의 요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 다. 그러나 여성취업에 관한 많은 연구들은 경력단절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여성들이 아예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 내부 노동시장이 발달한 좋은 일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기업의 내부 노동시장은 승진 사다리를 포함해 높은 급여, 안정된 고용, 교육과 훈련 기회, 각종 휴가와 휴직 등의 복지급여에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지 만, 여성 채용을 꺼리기 때문에 불안정한 일자리를 떠돌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상황이 경력단절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 10년간 기업과 정부는 여성에게, 특히 2030세대 여성에게 해준 것이 없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성적 소비와 상품화의 대상이나 마케팅 전략의 표적으로 삼았고, 각종 미디어들은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화려한 싱글들(‘골드미스’ 등)로 재현해 왔다.(그들을 지탱해준 것은 ‘요양보호사’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로 들어가기 시작한 그들의 어머니 세대 5060 여성들이다.) 이런 사회에서 젊은 세대 여성들은 생존과 자존감을 지키고 사회적 낙인과 어두운 전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 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들의 분노 어린 싸움을 목격하고 있다.

여성들에 대한 좋은 일자리 진입 장벽
성평등 실현에서 우리보다 앞선 유럽연합 (EU)은 2000년대 들어와 노동(labor), 친밀성 (intimacy), 시민권(citizenship)을 중심으로 각 영역에서 성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해 왔다. 한국 사회에서도 일터와 가족, 사회 정책 전반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시정하고 수정해 나가야 한다. 채용과 배치, 승진, 교육훈련, 모성보호와 관련된 조직 내 제도에서 여성들이 불이익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차별을 행한 행위자나 집단을 엄중히 처벌함으로써 예방의 효과까지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 안 에서는 아직도 존재하는 부계 혈통 중심의 권위주의와 여성차별, 여성 의 돌봄책임 등 가 부장적 남성 생계 부양자 가족규범 을 해체해야 한다. 또 젊은 세대가 자유롭게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의 경직성을 완화해 가는 동시에, 사회규범과 사회적 시선도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누구의 간섭도 없이 사람을 선택하고 함께 살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될 때 친밀성의 욕구가 충족되고, 아이에 대한 소망도, 출산에 대한 의지도 싹틀 것이다. 시민권 역시 일터와 가족에서의 지위를 토대로 형성되기 때문에 여성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있다. 여성이 취업 여부나 혼인 여부 등 조건에 관계없이 시민으로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제 2030세대 여성들은 정치적 목소리를 지닌 주체로서 공공의 영역에서 자신들의 요 구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당분간 이들의 목소리가 평화보다는 갈등을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갈등을 두려워하면 변화도 없다’는 상식이 되어버린 진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 가 있다. 국가는 기꺼이 그 갈등을 껴안고 해결책을 찾아 현실에서 구현해 나가야 한다. 국민의 절반은 여성이 아닌가? 여성의 미래가 없이는 국가의 미래도 없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