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빈곤층의 ‘고난한 일상’

노인층과 청년층 소득·자산 불평등으로 하위계층 규모와 이질성도 더 커져

정모씨(65)는 지난해까지 ‘급식 도우미’로 일했다. 초등학교 급식시간에 학생들에게 배식을 하는 일이었다. 만 64세까지로 연령이 제한된 탓에 올해부터는 일자리 신청자격이 안 되어 다른 일을 전전했다. “‘할머니’ 하고 부르던 애들을 못 보니 한동안 눈앞에 아른거리기도 했는데, 그보다는 당장 한 달에 40만원 돈이 안 들어오니 형편이 영 안 좋아졌어.” 다행히 최근 연령이 더 높고 몸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는 ‘알바’ 자리를 얻었지만 수입은 급식도우미에 비해 훨씬 적다. 정씨는 “전에는 한 번씩 반찬가게 들러서 좋아하는 젓갈도 한 번씩 사먹는 게 호사였는데, 이젠 주머니가 단출하니까 그것도 못하지”라며 “그나마 남는 도시락으로 점심이랑 저녁까지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노인세대 상대적 빈곤율 50%에 육박
현재 정씨는 도시락 배달 일로 버는 돈과 아들이 부쳐주는 용돈으로 생활한다. 임대아파트 관리비와 가스요금 등 공과금, 쌀값과 반찬값 등 식비를 제하면 크게 들어갈 곳도 없지만 쪼들리는 형편이라 매달 적자 내지 않고 버티는 것이 전부다. 그나마 이웃의 또래 노인에 비하면 몸이 건강한 정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나야 아직 생생해서 일도 하고 그러지만 옆집 사는 할머니나 도시락 배달 가서 만나는 어르신들 보면 아예 푼돈 벌 만큼도 거동을 못하는데 약값만 꼬박꼬박 나가니까 오죽하겠어.” 정씨는 아파서 병원에 갈 정도면 부자 노인, 약 받으러 보건소라도 제발로 가면 중간, 아파서 문 밖에 못 나갈 정도면 가난한 노인이라고 설명했다.

‘노인이 가장 가난한 나라’라는 오명을 듣고 있는 한국 사회 안에서도 각자의 처지마다 빈곤을 경험하는 지점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특히 다른 세대에 비해 노인들의 상대적 빈곤율은 50%에 육박하고 있을 정도다. 국민연금연구원 이순아 박사가 발표한 ‘노인가구의 소득수준과 공적 노후소득보장의 국가 간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폴란드, 네덜란드, 독일,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대만, 한국 등의 노인가구 소득수준을 비교 분석한 결과, 65세 이상 노인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한국이 46.9%로 조사대상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 한 자릿수대를 기록한 노르웨이(1.5%)·덴마크(1.7%)·네덜란드(3.6%)는 물론 미국(19.3%)·대만(26.6%)에 비해서도 크게 높은 수치였다.

홀몸노인을 위해 복지관에서 배달된 도시락을 받은 한 노인이 식사를 남겨 놓은 채 앉아 있다. / 서성일 기자

상대적 빈곤율은 전체 인구를 소득 순으로 줄 세웠을 때 정확히 중간에 서게 되는 사람의 소득액인 중위소득에 절반도 못 미치는 소득을 버는 인구의 비율을 뜻한다. 2015년 기준 중위소득인 201만4933원의 절반인 100만7466원보다 소득이 낮은 노인들이 전체 노인의 절반가량이라는 의미가 된다. 한국 노인들은 소득 구성 자체가 복지가 발달한 나라들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일해서 번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 등을 제외하고 이전소득만 놓고 봤을 때 한국 노인의 이전소득 비중은 48.6%였다.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는 이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70% 이상이었다. 특히 네덜란드 등 서구의 복지국가에서는 사적 이전소득은 0.1~0.4%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부분이 연금, 노년수당 등 공적 이전소득이었다. 반면 한국의 사적 이전소득 비중은 19.8%였다. 복지의 결과로 받는 공적 이전소득은 적고 가족 등이 부담해야 하는 사적 이전소득의 비중만 높은 것이다.

연금 못 받는 노인 경제사정 더 심각
게다가 연금 등 공적 이전소득마저 받기 어려운 형편인 노인들의 경제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통계청은 5월 27일 전체 가구의 소득분배가 개선되는 추세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통계청이 밝힌 가계동향조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가처분소득 기준 전체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지난해 13.8%로 떨어져 2012년의 14.6%보다 0.8%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상대적 빈곤율도 2012년 47.2%에서 2015년 44.8%로 역시 낮아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소득분배가 개선돼 소득불평등이 줄어든 모양새를 띤다.

그러나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한 상대적 빈곤율을 보면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시장소득 기준 전체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2012년 17.6%에서 2015년 18.6%로 오히려 1%포인트 올랐다. 노인인구에서도 같은 기간 60.3%에서 63.2%로 상대적 빈곤율이 높아졌다. 노인인구를 중심으로 소득 불평등이 더욱 심화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는지를 알아보려면 가처분소득과 시장소득의 개념을 알아보면 된다. 시장소득은 단순히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사적 이전소득을 더한 것이다. 가처분소득은 시장소득에 연금 등 공적 이전소득을 더하고 세금 등 공적 이전지출을 뺀 소득이다.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으로 시장소득에서의 불평등을 개선한 소득이 가처분소득이 되는 셈이다.

원래대로라면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소득분배가 개선됐으니 그래도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고 볼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2012년까지는 가처분소득과 시장소득 두 가지 기준에 따른 상대적 빈곤율 변동 추이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데 비해, 2013년부터 특기할 만한 현상이 나타났다. 가처분소득 기준 상대적 빈곤율은 낮아진 반면 시장소득 기준 상대적 빈곤율은 반대로 높아져 기준에 따라 변동 추이가 정반대로 움직였던 것이다. 간단히 이유를 정리하면 문제는 연금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있었다. 연금을 받아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는 집단에서는 소득 불평등이 줄어들었지만, 연금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의 집단에서는 반대로 소득 불평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의 ‘공적연금제도와 고령자 고용정책의 보완적 발전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 연금을 받는 65세 이상 노인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35.5%인 데 비해 연금을 받지 못하는 같은 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60%에 달했다. 공적연금을 받는 노인은 230만여명으로 전체 노인의 37.6%다. 나머지 62.4%의 노인들은 연금과 같은 사회안전망의 혜택을 입지 못해 더욱 심해지는 소득 불평등에 고스란히 노출된 셈이다.

소득이 적고 공공영역으로부터 지원을 받기 어려울수록 상대적 빈곤율이 높아지고 소득 불평등을 체감하는 정도는 높아진다. 이와 같은 모습은 노년층과 함께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세대인 청년층에서도 나타난다. 차이가 있다면 노년층에서는 일해서 번 돈인지, 가족에게 받은 돈인지, 연금 같은 공적 이전소득인지에 따라 소득 구성의 면에서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 이에 비해 청년층에서는 소득 구성보다는 소비·지출 구성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취업준비생 김모씨(27)는 고시원에 산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을 중퇴하기 전부터 시험을 준비했지만 4년이 가까워지도록 아직 합격하지 못한 탓에 집에서 받는 지원도 줄어들어 고시원 방도 가장 좁은 곳으로 옮겼다. 당연히 모든 것이 공용이다. 화장실은 물론 세탁기와 냉장고, 다리미와 헤어드라이어까지, 그나마 갖춰지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하지만 냉장고가 공용인 탓에 우유 한 통 사놓기가 쉽지 않다. 넣고 돌아서면 누군가의 손을 탄 우유가 어느새 확 줄어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몇 번 당하고 나니까 아예 냉장해 놓아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절대 안 사게 된다”며 “집에 있을 때는 혼자서 다 먹을 수 있거나 방에다 보관해도 괜찮은 편의점 도시락이나 라면밖에 먹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편의점을 찾은 시민이 도시락을 고르고 있다./연합뉴스

고시원에서 하루에 한 번씩 밥솥에 밥을 해놓지만 김씨가 학원에서 늦게 돌아오면 밥이 남아 있을 때가 거의 없다. 애초에 냉장고에 넣고 먹을 밑반찬조차 없으니 밥이 남아 있어도 기껏해야 라면을 끓일 때 말아먹는 방법뿐이다. 김씨는 “대학 다닐 때 작은 원룸에서 혼자 살 때에 비해 삶의 질은 훨씬 떨어졌다”고 말했다.

김씨와 달리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에서 서울 노량진 학원가로 왕복하는 허은규씨(28)는 식비와 방값으로 나가는 지출의 비중이 크지 않은 대신 교통비와 독서실비의 비중이 높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학원까지 오고가야 하는 탓에 걸리는 시간이 아까워도 당장 수입이 없으니 방도가 없다. 부모님의 도움이 없으면 독서실조차 다니지 못한다. 출신 대학은 공부하러 가기엔 너무 멀고 공공도서관은 공부할 여건이 좋지 못하다. 허씨는 “예전에 아르바이트로 벌어뒀던 돈을 일찌감치 다 까먹어서 수입이랄 게 없으니 집에선 눈치가 보여 나오고 싶긴 하다”면서도 “고시원 방 하나 잡으려면 생활비까지 해서 하루에 알바로 7~8시간을 보내야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배려’ 차원에서 빈곤문제 풀어야
상대적 빈곤이 개인의 상황과 소득·소비 구성에 따라 점차 다변화되는 양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빈곤문제를 ‘사회적 배제’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배제라는 개념은 1989년 유럽사회헌장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된 이래 시기별·국가별로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빈곤의 다차원적이고 상대적인 측면을 보다 강조한다. 기존의 빈곤 개념이 물질적인 측면에 집중한 것과 달리 비물질적인 측면에서도 문화·정서적으로 사회의 주류 질서로부터 이탈된 결과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 경우 사회적으로 배제된 청년층이나 노인층 등에 대한 해법은 주거상태나 건강, 교육기회, 사회적 관계망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자원과 기회가 박탈되는 상황을 개선하는 쪽으로 넓혀진다.

한국 사회에서 빈곤과 사회적 배제가 미치는 영향과 그 대처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선 사회지출을 확대하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남시의 청년배당과 같은 정책이나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기초연금 확대 등 사회지출 확대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주하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일자리 창출이 여전히 매우 중요한 정책수단이지만,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은 어느 정도 한계점이 있다”며 “한국의 경우 서구 복지국가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될 만큼 공적 이전급여 관련 지출이 크지 않으므로 공적 이전급여와 같은 전통적인 소득지원정책이 빈곤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하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