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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 외국인은 노조 설립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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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서 심리 시작… ‘국적’ 이유로 노동자 권리 제한받는 외국인 노동자 61만명

장면 1.
일본 패전 직후인 1947년 5월 2일 일왕은 마지막 칙령을 발표한다. 마지막인 이유는 다음날인 5월 3일부터 일본국 헌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칙령을 통해 식민지 시절부터 일본으로 건너와 살고 있던 조선인들의 일본 국적을 모두 박탈한다. 이렇게 일본이 조선인을 외국인으로 만든 이유가 있다. 새로 효력을 발휘할 헌법의 주어가 국민이었기 때문이다. 당초 전승국인 연합국 군총사령부(GHQ)가 만든 초안에는 미국 헌법과 똑같이 인민(people)이 주어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국민으로 고친 다음 조선인을 외국인으로 만들었다. 오래전에 일본으로 건너갔고 앞으로도 일본에서 운명이 정해질 사람들을,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고 고통을 줬다.

장면 2.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대한민국 건국헌법의 초안도 인민이 주어였다. 유진오 등이 기초한 제2장의 제목은 ‘인민의 권리의무’로 기본권의 주체를 ‘모든 인민’으로 했다. 하지만 당시 인민이 공산주의자들의 용어라는 이유로 막판에 국민이 됐다. 하지만 많은 헌법학자들은 우리 헌법의 이념을 보면 상당수 기본권의 주체는 인민이 되어야 한다고 해석한다. 지난해 국회와 헌법학자들이 만든 헌법개정안에는 주어가 국민이 아닌 ‘사람’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이라고 강력하게 제한하기도 한다. 이순신 전문가로 유명하고 애국심을 강조하는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우리 헌법상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임기 내내 고수했다.

2006년 미얀마 산업연수생 100여명이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줄지어 앉아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출입국관리법을 어기고 도망다니는 한국의 시민이 되어 있을까. 노동착취의 대명사이던 산업연수생 제도는 2007년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등으로 폐지됐다. / 김정근 기자

2006년 미얀마 산업연수생 100여명이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줄지어 앉아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출입국관리법을 어기고 도망다니는 한국의 시민이 되어 있을까. 노동착취의 대명사이던 산업연수생 제도는 2007년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등으로 폐지됐다. / 김정근 기자

국적은 하늘이 내리는 고정불변의 표지가 아니다. 국적법에 따라 얻거나 잃을 수 있고, 복수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가변적인 국적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고 지배할 수 있을까. 적어도 70년 전에는 그랬다. 특히 국가주의를 표방한 일본과 똑같은 논리를 답습한 한국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2015년 현재는 어떨까. 무엇보다 대부분 사람들의 핵심 정체성인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국적을 이유로 제한되거나, 출입국관리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없어질 수 있을까.

이런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결론이 조만간 대법원에서 나온다. 대법원은 지난 1일 불법체류 노동자의 노조 설립이 가능한지에 관한 사건과 관련,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심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가 외국인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이정표가 될 판결이다. 대법원 최장기 미제사건으로도 유명하며, 2007년 2월 상고돼 8년 3개월째 심리 중이었다.

참고로 이 최장기 미제사건은 노동과 국적의 관계를 겨냥하고 있지만 너무나도 함부로 다뤄져 왔다. 대법원은 지난 8년간 결론을 내지도, 변론을 열지도 않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장본인은 현재 한양대 석좌교수로 있는 양창수 전 대법관. 그는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재심 개시 여부 사건도 3년 1개월간 미루다가, 강씨가 암투병을 호소하고 시민들의 비난이 들끓자 결정한 바 있다. 서울대 교수 출신의 양 전 대법관은 자신의 입장과 다른 결론이 예상되는 사건은 캐비닛에 넣어놓고 무작정 미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사건도 양 전 대법관 한 사람 때문에 우리 사회가 토론할 시간을 10년 가까이 빼앗긴 셈이다. 양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지방법원 부장판사 시절 대학교 시간강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던 권순일 대법관이 전원합의체에 보내면서 늦게나마 논의가 시작됐다.

[포커스]불법체류 외국인은 노조 설립 못하는가?

근무지 세 번 이상 옮기면 출국해야
아무튼 이 사건의 경우 당사자들이 그냥 외국인도 아니고 불법체류자여서 복잡한 느낌이 든다. 외국인의 문제가 아니라 불법체류의 문제라는 것이다. 헌재 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해고된 교직원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법외노조로 통보했고, 전교조가 반발해 재판 중이다. 옳고그름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어쨌든 전교조 문제는 노동자의 지위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불법체류 노동자라는 이유로 노조원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불법체류에 의한 강제출국 대상인지는 출입국관리법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지 여부는 노동관계법에서 다룰 별개 문제다. 불법체류자 노조 결성 금지는 전과기록이 말소되지 않았다고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다는 것처럼 논점이 어긋나 있다.”

이 사건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1심에서 패소하고 2심에서 승소했다. 1심 판결 이유는 이렇다. “불법체류 외국인은 출입국관리법상 취업이 금지되어 있고 장차 적법한 근로관계가 계속될 것임을 전제로 지위 향상을 도모할 지위에 있지 않으므로, 노동조합 가입이 허용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노희범 변호사가 지적한 대로다. 하지만 2심 판결은 달랐다. “출입국관리법은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의 고용이라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뿐이지, 이미 근로를 제공하는데도 고용계약을 무효라고 하거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조 결성까지 금지하지 않는다.” 사실 1·2심 판결을 내린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 판결문은 간단하다. 앞에 정리한 것 이상의 내용도 없다.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논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행사에 참석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철회와 이주노조 합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행사 첫 순서로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희생자 위로글을 읽었다. 국적은 외국이지만 한국 사회의 슬픔을 같이 나누는 시민이다. / 강윤중 기자

지난해 4월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행사에 참석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철회와 이주노조 합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행사 첫 순서로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희생자 위로글을 읽었다. 국적은 외국이지만 한국 사회의 슬픔을 같이 나누는 시민이다. / 강윤중 기자

출국해야만 퇴직금 받을 수 있어
“이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우리 대부분 한국 국적자여서다. 불법체류자에게도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있는지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법체류자들의 권리는 곧바로 나의 고용문제와 직결된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의 설명이다. “유럽 등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내국인보다 하락하지 않도록 보호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내려가고 근로조건이 나빠지면 곧바로 내국인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쁜 조건에서 일하는 똑같은 노동력이 있는데 내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동조건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절반의 권리만 가진 외국인 노동자가 내국인 노동자의 환경을 끌어내리는 것처럼, 더 나쁜 상황의 불법체류자가 다시 합법체류자의 노동조건을 위협하고 있다. 2015년 3월 현재 우리나라에서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외국인은 통계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61만여명이며 이 가운데 15%가량이 불법체류자다.

합법체류 외국인들에 대한 대표적인 제약은 근무지를 세 번 옮기면 출국해야 한다는 것과 외국인 근로자는 출국해야만 퇴직금을 주는 제도다. 이들 사건과 함께 대법원에서 심리를 시작한 불법체류자 노동조합 결성문제가 ‘외국인 노동자 3대 사건’으로 불린다. 우선 ‘세 번 옮기면 출국해야 하는 제도’는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정책이 노동허가제가 아니라 고용허가제여서 그렇다. 헌법재판소가 2011년 합헌을 결정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외국인 근로자의 무분별한 사업장 이동을 제한함으로써 내국인 근로자의 고용기회를 보호하고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효율적인 고용관리로 중소기업의 인력수급을 원활히 하여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라고 했다. 이 결정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각종 폭행과 욕설, 임금체불에도 쉽게 항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출국해야 퇴직금 지급’ 사건은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사용자는 퇴직금 대신 출국만기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법으로 강제돼 있다. 그런데 외국인 근로자가 출국하기 전까지는 출국만기보험금을 못 받는다. 세 번까지 가능한 직장을 옮기는 경우에도 못 받는다. 따라서 새로운 사업장에 입사해서 첫 월급을 받을 때까지 수입 없이 살아야 한다. 외국인들이 열악한 조건에서도 직장을 옮기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는 일시적으로 대한민국에 생활의 터전을 마련한 것이기 때문에 금전이 없이는 숙식을 해결할 수 없다. 윤지영 변호사는 “출국만기보험금은 퇴직 근로자와 가족의 생계 보전이라는 퇴직금의 목적과 기능을 무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시민으로서 권리 주자’ 논의 시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국적에 의한 차별과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최근의 시도가 시민권 논의다. 한국 국적자는 아니라 해도 한국 시민으로서 권리를 주자는 것이다. 20년째 한국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와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분명히 한국의 시민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생활기반이 필리핀이 아닌 한국에 있고, 아이들의 경우 한국어가 모국어인데 비국적자라는 이유로 권리를 주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다혜 서울대학교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현대사회는 이주가 크게 늘면서 국민과 시민이 일치하지 않는 상태가 됐다. 이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시민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 시민권은 아직 확립된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권을 ‘국적자’가 아닌 ‘공동체 구성원’에게 주는 것은 서구에서는 흔한 일이다. 이것을 시민권으로 본다면 이미 많은 나라에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학자들이 얘기하는 노동시민권의 핵심은 세 가지다. 시민으로 정착한 사회에서 사업장을 이동할 권리, 거주를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 노동자로서의 권리다. 이 가운데 첫 번째는 헌법재판소가 부정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헌재와 대법원이 관련 사건을 위해 토론 중이다. 일부에서는 불법체류자에게 단결권을 인정할 경우 이를 빌미로 노동자로서의 체류자격을 협상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이런 우려가 불법체류자에게는 노동자의 권한 자체를 인정하지 말자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대법원은 조만간 노동자의 권리가 어떤 것인지 선언하게 된다. 인간의 권리인지 국민의 권리인지, 국경을 뛰어넘는지 넘지 못하는지.

외국인 노동자 지원 단체 “근무지 변경제한 개선해야”

1980년대까지는 외국인 노동자를 규제하는 제도가 없었다. 거의 대부분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일했고, 불법체류 신분이었다. 하지만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고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점에서 노동자였다. 이들의 실체가 노동자라는 법원 판례에 따라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을 받았다. 체류의 합법 여부는 상관없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관리가 시작된 것은 노태우 정부 시절이던 1991년이다. 산업기술연수생 비자를 만들고, 이들을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1994년 중소기업협동중앙회 주관으로 아시아 11개국 27개 송출업체를 통해 외국인력 도입을 본격화했다. 형식적으로는 연수생이라는 신분이라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이들에 대한 소규모 업주들의 노동력 착취가 사회문제가 됐고, 사업장을 이탈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그러자 1995년 정부가 폭행금지 등 근로기준법 8개 조항과 최저임금제를 적용하기로 발표했다. 이후에도 산업연수생 제도는 논란 속에서 명맥을 이어가다가 2003년 현재의 고용허가제로 바뀐다. 4년 정도 함께 유지되던 산업연수생은 2007년 폐지됐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자의 편의를 강화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바뀌었다. 가령 사업자가 외국인 고용허가를 받으려면 내국인 구인 시도를 해야 하는데, 처음 1개월에서 현재 3일로 줄었다. 그 밖에 각종 절차를 간이화했다. 반면 노동자에게는 노동자를 구하는 회사 명단을 제공하지 않게 바뀌었고, 회사를 바꿀 수 있는 경우도 복잡하고 까다롭게 했다. 근무회사도 세 번 이상 바꿀 수 없다.

이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 지원단체에서는 고용허가제가 아닌 노동허가제를 주장한다. 외국인들이 근로계약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국한 다음 회사 상황을 살펴보고 취업하도록 하자는 것. 이렇게 되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저항하거나 벗어날 수 있고 숙련공으로 자리 잡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사업자나 대한민국 경제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노동허가제에 반대하는 논리는 내국인 노동자 보호다. 내국인 노동자들의 취업 기회가 확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같은 사업장의 한국인보다 고학력인 경우가 많아,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해 체류기간을 늘려주면 외국인들이 장기 체류하면서 사회통합에 들어가는 비용이 증가한다는 이유도 있다.

이에 대해 외국인 노동자 지원단체들은 백 번 양보해 당장은 고용허가제를 유지하더라도 사업장 변경 제한 등 독소조항은 반드시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국인 노동자의 지위도 같은 임금노동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비슷하게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결국, 내국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외국인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움말=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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