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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 역행하는 외국인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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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과 어울려 산 경험 없어 ‘선입견’… 20~30 젊은층에서 부정적 시각 늘어

“무서워서 못살겠다.” “이 땅에 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박춘봉 사건’ 관련 뉴스 댓글을 보면 조선족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혐오의 강도가 세질수록 추천 횟수도 높다. 외국인을 혐오하는 댓글 중간중간에 이들의 ‘항변’도 섞여 있다. 혐오 범죄가 일어나는 서구 국가보다 외국인 차별이 거의 없다는 주장, 외국인 전체를 차별하는 게 아니라 외국인 범죄자만을 비판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외국인 차별 의식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 Survey)에 따르면, 한국인의 외국인 차별 의식은 동남아, 인도, 중동 국가들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 가치관 조사는 5년 단위로 진행되며, 같은 문항을 가지고 100여개국 국민들의 가치관을 비교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2015년 1월 현재 7차 연구가 준비 중이다. 한국에서는 이화여대 어수영 명예교수(76)와 사회과학 데이터센터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UN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인 2014년 3월 21일. 공익법센터 어필. 외국인 이주 노동운동 협의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한국 정부의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UN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인 2014년 3월 21일. 공익법센터 어필. 외국인 이주 노동운동 협의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한국 정부의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외국인 차별의식 세계 최고 수준
여러 조사항목 중 외국인에 대한 내국인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문항이 두 가지 있다. ‘다른 인종과 이웃이 되어도 괜찮겠느냐’, ‘이주노동자와 이웃이 되어도 괜찮겠느냐’는 질문이다.

한국인 1200명을 대상으로 한 6차 연구(2010년) 결과 타인종과 이웃이 된다는 것에 부정적으로 답한 사람은 34%, 이주노동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한 사람은 44%로 나타났다. 그나마 부정적인 응답이 50%를 넘어섰던 2차 조사(1990년)에 비해서는 개선된 수치다.

가장 최근에 실시된 5~6차 조사를 보면 아시아권에서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심한 인종차별 의식을 가진 나라로는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 등이 꼽힌다. 이들 나라는 오랫동안 식민지 경험이 있거나 외국의 침략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라크, 이집트, 리비아 등 오랜 분쟁을 겪은 나라에서도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았다. 북유럽, 서유럽, 북아메리카처럼 교육과 경제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비교적 타민족과 외국인에 대해 관대했다.

어수영 명예교수는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살았던 나라일수록 다른 민족에 대한 이해심을 쌓아온 기간이 꽤 길다. 한국인들은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단일민족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배타심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완 아시아이주문화연대 대표(42) 역시 오랜 단일민족의 경험과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연결지었다. 그는 “한국의 경우 다른 민족과 어울려 산 경험이 별로 없는 것이 독이 됐다. 경험이 없다 보니 외국인 범죄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등의 선입견이 오히려 쉽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어 명예교수는 “장기적인 추세를 보면 다문화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도는 점점 높아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점점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2006년 이후 한국에 들어오는 이민자 숫자는 매년 9.7%씩 증가하고 있다. 이미 2014년 11월에 90일 이상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만 136만명을 넘어섰다. 2030년쯤에는 총 인구의 10%가 이민자일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경제단체나 기업과 관련 있는 경제 싱크탱크에서는 잊을 만하면 저출산과 경제성장을 위해 이민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표지이야기]다문화 사회 역행하는 외국인 차별

이주민 확대, 예상치 못한 역기능도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다문화 사회로 가는 흐름에 역행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14년 2월 아산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67.5%로 여전히 높았지만, 2년 사이에 7%가 줄어들었다. 특히 연구원은 외국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비율이 20~30대 젊은 층과 여성들에서 높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청년과 여성의 실업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이완 대표는 “유럽에서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스킨헤드나 신나치를 보면 그 주축이 젊은이들인 경우가 많다.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를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면 그 화살이 외국인들에게 돌려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대표는 저출산 해결을 위해 이주민을 폭넓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부 경제단체의 시각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그는 “이주민이 늘어나면 분명히 순기능도 있지만 동시에 예상치 못한 역기능이 생겨나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맞을 제도적·정신적인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저출산 해결, 노동력 확충이라는 기능적 목적만 달성하기 위한 경제단체들의 주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역기능’ 중에는 일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혐오 범죄가 포함된다. 어수영 명예교수는 노르웨의의 사례를 들며 한국에서 외국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일어날 경우, 그 파장이 훨씬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 명예교수는 “노르웨이에서 백인 우월주의자가 테러를 일으켰을 때 대부분의 노르웨이인들은 ‘극소수의 난동일 뿐’이라며 외국인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외국인 차별에 반대하는 가치관이 공유되기 전에 노르웨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한국인들이 노르웨이처럼 성숙한 대응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외국인 차별을 줄이기 위해 정부의 다문화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현재의 다문화 정책을 “사회통합 없이 동화에 편중된 다문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연구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전국에서 시행되는 다문화 프로그램의 54.4%가 이주민을 ‘한국인’으로 동화시키는 내용이다. 한국 사회의 주류인 한국인이 이주민들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거나 한국인에게 이주민들의 문화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은 20%가 채 되지 않았다.

연구원은 “한국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외국인과 이주민, 그 가족을 한국 사회로 통합시키는 데 편중됐고, 자국민의 다문화 수용도를 높이는 데에는 소홀했다”며 한국인들의 인식 변화에 중점을 두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봤다.

이완 대표는 정부나 언론에서 이주민들을 우선 ‘인간’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이주민들의 기능에만 주목해 왔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4년 10개월 동안 ‘노동력’만 얻으려 했고, 결혼이주 여성을 적극 유치해 ‘저출산’을 해결하려 했다. 사람 1명이 모국을 떠나 외국으로 갈 때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와 언론에서 이주민들을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은데 외국인 차별이 어떻게 없어질 수 있겠나.”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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