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등교 늦추면 수업 집중ㆍ이해도 높아져”

국내외 연구팀 연구결과 “수면부족-우울-스트레스 악순환 이어져”

청소년에게는 얼마만큼의 잠이 필요한가. ‘9시 등교’ 논쟁의 중심에는 한국 청소년들의 수면과 휴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반면 현실과는 달리 잠을 충분히 자야 주의력과 집중력은 물론 학업 성취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 연구진은 등교시간을 늦춘 5개 학군 9000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등교시간을 늦추면 학업성취도도 높아지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변경 전 등교시간이 오전 7시30분일 때보다 등교시간을 1시간에서 1시간30분 늦춘 결과 오전 시간대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 및 이해도 평가 점수가 모두 올라간 것이다. 연구진은 등교시간이 늦춰져 8시간 이상의 수면시간을 확보한 학생들의 비중이 33%에서 61%로 두 배 가까이 높아진 것이 주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 경향신문

등교시간을 늦춘 효과가 학생들에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청소년기의 뇌와 수면주기가 성인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면시간을 포함한 뇌의 1일 활동주기가 성인의 경우 24.2시간인 데 비해 청소년기에는 아직 25.3시간이어서 지구 자전주기와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아침잠이 많은 것도 양 주기 사이의 불일치 폭이 크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는 전체 수면시간에서 아침잠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적 크기 때문에 등교시간을 늦추는 정책이 효과를 보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잠을 충분히 잤을 때의 긍정적 효과를 명확하게 집어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잠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다양한 부정적 결과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청소년기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인 중에는 수면 부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올 8월 강승걸 가천대 의대 교수팀과 이유진 서울대 의대 교수팀이 중·고등학생 4145명을 대상으로 수면시간과 정서적 건강상태의 관련성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잠이 부족할수록 우울감을 느끼거나 자살 생각을 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 교수는 “깨어 있는 시간 동안 경험했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우울한 감정을 회복시키는 일은 깊이 잠들어 있을 때 일어난다”며 “잠이 부족하면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아서 더욱 우울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여만 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교수팀의 연구에서도 이런 악순환은 다시 확인됐다. 잠이 부족해 무기력한 상태는 인터넷 중독이나 과도한 TV 시청과 상관관계가 있고, 자기주도적인 학습에는 소극적으로 임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때도 정서적인 불안상태와 낮은 학업성적은 다시 수면 질 저하와 수면시간 부족으로 이어지게 된다. 홍 교수는 “수면부족이 오래될 경우 집중력과 기억력, 판단력 등 인지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되어 학습능력은 물론 학교 성적도 떨어진다”며 “자정을 넘어서까지 공부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