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이라고요? 그 사람이 누군데요.”
2월 20일 기자와 통화한 한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이것저것 물어봤다. 한참을 대답하던 이 회사 관계자가 되물었다. “그런데 물어보는 목적이 뭔가요?” 뭐긴. 취재다. 이 코너에서 다루는 주제가 원래 이렇다. 돈 지는 꽤 된 사진인 듯한데 기자의 연락을 받고 처음 알았다는 반응이다.
전날, 하나의 사진이 한 유명 커뮤니티에서 주목을 받았다. 사진의 제목은 ‘고추절단.jpg’이다. 기계 사진이다. 녹즙기같이 생겼다. 그런데 정작 주목받은 것은 이 기계의 박스다. 심영산업이라고 적혀 있다. 누리꾼의 상상이 엉뚱한 곳으로 번졌다. ‘심영 패러디’가 등장한 건 벌써 10년 가까이 되는 것 같다. 김두한이 주인공인 드라마 <야인시대>의 한 에피소드다. 실제 인물이다. 해방정국에 월북한 인사다.
인터넷에 도는 심영산업의 ‘고추절단기’ 사진. 실제 기계를 생산하는 신영산업의 철자를 살짝 바꾼 것이다. | 클리앙
<야인시대>의 에피소드는 ‘고자라니’로 유명하다. 김두한 패들에게 총상을 입은 곳이 하필이면 ‘그곳’이다. 드라마에서 의사로부터 성불구가 되었다는 진단을 들은 그는 “내가, 내가 고자라니!”라고 절규한다.
총상은 실제 사건이다. 위키피디아 사이트 엔하위키에 가보면 당시 보도기사를 연결시켜놓았다. “[高協](고협, 심영이 운영하던 극단) 沈影氏(심영씨) 拳銃怪漢(권총괴한)에게 被襲(피습).” 1946년 3월 16일 동아일보 보도다.
어쨌든 진짜로 ‘심영산업’에서 고추절단기라는 기계를 팔고 있는 걸까. 전화해봤다. 회사의 이름은 심영산업이 아니다. 신영산업이다. ‘신’을 ‘심’으로 누가 바꿔놓았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고추절단기는 2004년부터 자체 기술로 개발한 것이다. 처음 모델 이름은 0404였는데 현재 모델명은 1103이다. 차이는 뭘까. “안의 칼날이 이전에는 한쪽만 있었는데 지금은 양날이거든요. 축이나 원판도 달라졌어요. 분당 회전속도가 이전에는 200 정도였다면 지금은 560 정도로 두 배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빨리 썰리죠.” 주 구입처는 식당이다. “왜 삼겹살집에 가면 그릇에 고추 슬라이스 해서 나오는 거 보셨죠? 그거 만들 때 쓰는 겁니다.”
혹시 엉뚱한 생각을 한 누군가 다른 ‘고추’를 기계에 넣었다가 사고가 나진 않을까. “아이고,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해도 넣을 수 없어요. 청양고추처럼 작은 고추 전용인 걸요. 절대 안전합니다.” 본의 아니게 상품 선전이 되어버렸다.
그나저나 진짜 월북 연예인 심영은 어떻게 되었을까. 북에 살다 내려와 작고한 김용균씨의 책 <시효인간>을 보면 그의 ‘마지막’이 묘사되어 있다. 273쪽이다. 북으로 가 공훈배우로 각광을 받았지만 1953년 남로당 숙청 때 걸려들었다 간신히 살아남았다. 1960년대 한설야가 숙청될 때 다시 사상검토를 받았다.
“공훈배후가 되었는데 20년이 넘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다가 1971년 결국 다시 숙청되어 평양에 소재한 삼신탄광 탄부로 떨어졌다고 한다. 탄부로 고생하다가 1973년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이 다음에 통일 되면 나를 서울에 가져다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고 한다. 물론 김씨의 증언이 정말 사실인지는 나중에 다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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